시애틀 임마누엘장로교회 원로목사
처음 유학길에 오를 때, 저에게 유학가라고 말씀하시고 유학길에 오르도록 저를 위해 길을 열어주셨던 저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스승, 김호식 박사님께서 제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제게 해주셨던 말씀입니다.
"가서 공부할 때 혹시라도 식사 초대를 받거든 가서 대접받는 것에 취해있지 말고 식사를 끝내고 망서리지 말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설거지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하도록 해. 그러면 반드시 부르고 또 불러 줄거야."
스승께서 해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부엌의 주인되는 그 가정의 아내되는 분은 물론이지만,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해야 하는 남편되는 분이 얼마나 좋아하고 행복해 하던지, 정말 자주 불러줘서 좋은 시간들을 갖고는 했던 기억이 지금도 저의 마음에 좋은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그렇게 대접을 받으러 가서 설거지를 즐겁게 했던 저의 마음에는 이기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해서 저에게 저도 모르게 자리잡은 것은 설거지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한국을 방문하면 형수들 설거지를 해서 형님들이 저를 나무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기회 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가 하는 설거지를 형님들이 설거지를 하신다고 부엌엘 들어가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보스턴에 가서도 아들 집에 21 일을 머물며 종종 기회를 만들어서 설거지를 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성화를 하고 아내가 나서서 말리지만 "밥 먹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소화도 되지 않는데 이렇게 움직이니 운동도 되고 소화에 도움이 되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아주 즐겁게 설거지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설거지를 한 것은 어떤 기대가 제 마음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제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했습니다.
그런 지난 21일 간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시애틀 집으로 돌아와서 한밤을 지내고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준비한 것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 제게 이런 생각이 다가왔습니다.
“삶이 짧던지 길던지 함께 하며 섬길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의 삶이다.”
이런 생각에 취해 있는 제게 하나님은 이렇게 다가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11.16.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