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의 리처드 십스 (Richard Sibbes, 1577-1635)는 윌리엄 퍼킨스의 제자인 폴 베인즈 (Paul Baynes; 1573년-1617년)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다. 그리고 십스를 통해 회심한 청교도들은 존 카튼, 리처드 백스터, 존 프레스턴 등이 있다. 십스는 프레스턴과 함께 설교 사역을 통해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 십스는 영국 국교들의 많은 박해 속에서도 칼빈주의와 퍼킨스 전통을 청교도 신학에 확고히 심어주었고, 특별히 개인 언약을 통해 영적 개혁 운동을 확산시켰다.
십스는 개인 언약을 설명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강조했다. 17세기 화란에서 시작된 알미니안 사상에 대한 논쟁이 매우 치열했다. 1618년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가 소집되어 칼빈주의 사상을 확인했지만 알미니안 사상의 논쟁은 영국에서도 계속되었다.
십스는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다 (“All is of grace, and all cometh from Him.”) 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중보자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죽게하심으로 언약의 기반으로 삼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십스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언약의 반응은 인간 스스로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신 결과이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반응은 우리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다” 주장한다. 십스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반응하는 신앙의 열정에는 성령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십스는 성령께서 항상 우리에게 “아멘”으로 화답하게 한다 (“The Spirit always stirs up an Amen on our parts). 그러므로 성령께서 “아멘, 그렇게 될지어다” 하시면, 우리의 영혼은 “아멘, 주여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응답한다. (“When the Spirit saith Amen, it shall be so, then the soul saith, Amen, Lord, let it be so”).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움직이시고, 언약관계로 이끄신다. 나아가서 성도들의 성화로 인도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십스는 개인 언약 사상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성화의 삶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다. 십스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에 대한 우리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Though God’s grace do all, yet we must give our consent). 물론 이 동의는 인간의 공로를 의미하지 아니한다. 인간의 공로가 된다면 알미니안 사상이 되는 것을 십스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의 동의지만 이 동의는 인간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주셔서, 그 결과로 우리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지적 동의로 나타난다. 십스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인간의 논리로 설명하지 아니하고, 성경의 논리를 적용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교리는 옛날이나 지금도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십스는 “언약에 대한 응답은 인간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한다” 주장한다. 은혜에 대한 응답의 준비도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온다.” (“all preparations are from God. We cannot prepare ourselves or deserve future things by our preparations; for the preparations themselves are of God”).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항상 뜨거운 논쟁의 주제였다. 교부시대에는 이 문제는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해서 정리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로마 캐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합동하여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소위 반펠라기우스 주의 (semi-Pelagianism)가 되었다. 그러나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캐톨릭의 반펠라기우스 주의가 성경적이 아님을 주장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후예로서 하나님의 주권 사상에 굳게 서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개인 언약 사상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성화를 이루게 했다.
청교도 지도자 가운데 존 카튼 (John Cotton, 1582-1652)은 인간의 책임과 의무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카튼은 영국의 박해를 피해 1633년 뉴잉글랜드 (보스턴)로 이주했다.
카튼은 케임브리지에서 퍼킨스의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고, 리처드 십스를 통해 회심의 체험을 했고, 그의 사역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존 카튼은 퍼킨스, 십스, 프레스톤, 그리고 보스턴에서 사역한 카튼과 동일한 시기에 뉴잉글랜드 (코네티컷 주를 세웠다)에서 사역한 토마스 후커 (Thomas Hooker;1586-1647)와 다른 각도에서 은혜 언약에 대한 강조했다. 동시에 카튼은 성화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카튼의 은혜 언약의 개념은 1636-37년 사이에 보스턴에서 있었던 “반율법주의 (Antinomianism)” 논쟁을 살펴보면 매우 명백하게 나타난다. 1634년 카튼을 따라 영국에서 보스턴으로 이주한 앤 허친슨 (Anne Hutchinson)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앤 허친슨은 1636년 가을,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들이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개인의 선행에 의존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 청교도 목사들은 개인의 선행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회심과 구원의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허친슨의 비난을 부인했다. (Good works are evidence of conversion and salvation, not the grounds of salvation).
앤 허친슨은 보스턴 청교도 목사들은 율법주의적 도덕과 윤리를 마치 구원의 근거처럼 설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매사추세츠주 (Massachusetts Bay Colony)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인 존 윈드롭 (John Winthrop)은 앤 허친슨의 주장을 비판했다. 결국 앤 허친슨은 매사추세츠 법정에서 (General Court)에서 재판을 받았고, 1637년, 그녀는 “반율법주의자( Antinomian)라는 유죄 판결을 받고 매사추세츠에서 공식적으로 추방 (banishment) 당했고, 보스턴 교회에서 파문 당했다.
앤 허친슨은 이 재판에서 청문회 둘째 날,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she claimed on the second day of her hearing that she possessed direct personal revelation from God) 그리고 “매사추세츠에 심판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she prophesied ruin upon the colony).
매사추세츠 법원(General Court)과 보스턴 교회에서는 앤 허친슨이 반율법주의(혹은 율법폐기주의)자로 정죄하였고, 결국 그녀는 추방되어 로드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앤 허친슨의 영국에서 보스턴까지 이주한 이유도 존 카튼의 신학과 설교 때문이었고, 반율법주의 논쟁에서도 허친슨이 존 카튼의 설교를 많이 인용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존 카튼 목사도 반율법주의자라고 오해를 했다. 그리고 허친슨이 보스턴 청교도 목사들이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설교하지 아니하고, 율법 중심의 행위언약만 설교한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존 카튼의 말을 많이 인용했다.
존 카튼은 “은혜 언약의 조건성과 성화 (율법 중심의)를 통한 구원의 확신의 강조는 은혜 언약의 중심인 그리스도로부터 중점을 놓친다” 했다. 그러나 앤 허친슨의 반율법주의 논쟁을 겪으면서, 존 카튼은 은혜언약에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의 입장을 바꾸게 된다. 카튼은 자기의 입장을 더욱 명확하게 정리했다. 그는 “은혜 언약에 있는 성도들은 율법의 언약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지, 율법의 명령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다.” (“The children of the covenant of grace are free from the covenant of the law but not from the commandment of it”). 존 카튼의 이러한 진술은 지금까지의 청교도들의 개인 언약 사상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존 카튼은 은혜언약의 중심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전에는 은혜의 조건은 있을 수 없다. 믿음을 갖기 전에는 어떤 은혜의 조건이나 자격이 있을 수 없다.” (“For by faith of dependence it is, that we first received union with Jesus Christ, But there be not gracious conditions wrought in us before we received union with Jesus Christ). 당시의 청교도들은 은혜를 받기 위한 인간의 준비에 대해 많이 설교했다. 그러나 존 카튼은 인간적인 준비를 인정하지 아니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은혜언약의 핵심으로 가르쳤다.
물론 다른 청교도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성화를 보고 자신이 은혜 언약에 있음을 확증하라고 주장했는데, 존 카튼은 인간에게 나타난 성화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화도 명확하지 못하고, 우리의 성화가 하나님께 합당한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화가 어디서 오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율법에 순종하려는 나의 공로와 노력의 성화인가? 물론 다른 청교도들도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은혜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에 많은 청교도들이 은혜 언약의 중심에서 성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카튼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오는 복음적인 성화와 자신의 힘으로 나오는 율법적인 성화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카튼은 율법적인 성화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카튼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증거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확신이 우리에게 더 근본적이고 확실한 구원의 증거가 된다” 주장했다. 그리고 “나의 성화를 가지고 내가 은혜속에 있다고 증명할 수 없다. 내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의의 은혜를 주셨음을 믿지 못한다면, 나의 성화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성화가 될 수 없다.” (“I cannot prove myself in a state of grace by my sanctification: For while I cannot believe that my person is accepted in justification, I cannot believe that my works are accepted of God, as any true sanctification”).
존 카튼이 다른 청교도들과 신학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사상은 칼빈, 퍼킨스 그리고 다른 청교도들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카튼은 다른 청교도들보다 은혜언약의 일방성(unilateral) 과 주권성(sovereignty)을 더욱 강조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 인간의 행위로 나타나는 성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언약의 핵심에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둠으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강조했다. 은혜언약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자신의 성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근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했다. 자신의 성화를 바라보라고 하면 자신의 공로와 업적을 바라보라고 오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되 존재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카튼의 이러한 주장 때문에 앤 허친슨이 “반율법주의 논쟁 (Antinomian Controversy)”에서, 보스턴의 다른 청교도 목사들은 은혜 언약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중심의 행위언약을 전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보스턴의 청도교 목사들은 영국의 신앙의 박해속에서 개인 언약을 강조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도록 힘을 주면서 설교했다. 그러나 청교도 목사들이 율법주의적 행위언약를 전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강조점이 달랐다. 존 카튼은 성화를 통해 자신이 은혜안에 있다는 증거는 율법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복음적인 성화를 강조했다. 그리고 성도들이 자신의 성화를 바라보기 보다는 성화의 근원이 되며, 성화를 가져다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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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