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청교도들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음을 주장한다. 이 개인 언약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나갔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학적인 기초가 된다. 청교도들의 개인 언약은 그들의 교회 언약, 그리고 사회 언약 (혹은 국가 언약) 의 사상적인 기초가 된다. 청교도들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개인 언약의 관계성 속에서 교회 언약 및 사회 언약을 맺게 된다.
영국에서 언약 사상을 신학 전체에 조직적으로 체계화 시킨 사람은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 이다. 일반적으로 퍼킨스를 청교도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퍼킨스의 유명한 책 <금사슬> (Golden Chain)이 있다. <금사슬, 1592년>은 언약 신학을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퍼킨스의 언약 사상은 정치적인 요소가 없고, 순수한 성경적인 언약 신학이다. 예를 들면 크리스토퍼 굿맨 (Christopher Goodman)의 언약 사상은 메리 여왕의 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적인 사상이 굿맨의 언약 사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윌리엄 퍼킨스의 언약 신학은 전적으로 성경에 기초한다.
청교도 지도자들, 국민들의 개인적 신앙과 경건한 삶을 통해
영국의 종교개혁 단행, 청교도 개인 언약 사상이 크게 발전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과 동시에 언약의 조건을 강조
영국 교회의 존 위트기프트 (John Whitgift 1583-1604 캔터베리 대주교) 그리고 리처드 뱅크로프트 (Richard Bancroft 1604-1610 켄터베리 대주교) 감독은 청교도들에게 심한 탄압을 가했다. 이 시기에 청교도들은 영국 교회 정치 체제의 비판은 좌절되었다. 윌리엄 퍼킨스는 영국 교회 정치제도의 비판보다는 개인의 경건생활과 가정의 신앙생활에 더 많은 촛점을 맞추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1640년까지 영국 국교에 대항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영적 생활과 경건 생활을 강조했다. 그들은 영국의 권력자들에 의한 탄압을 피해서 개인적 주일 성수, 개인적 경건 생활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의 경건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영국 국가에 대한 투쟁을 중단하고, 국민들의 개인적 신앙과 개인의 경건한 삶을 통해 영국의 종교 개혁을 단행하려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인 환경 속에서 청교도 개인 언약 사상이 크게 발전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의 박해로 제네바에 망명해 있던 크리스토퍼 굿맨 (Christopher Goodman)은 국가 (사회) 언약을 근거로 해서 메리 여왕에 대한 반역과 혁명을 정당화하는 글을 1558년 썼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에드워드 더링 (Edward Dering)은 국가 언약 혹은 사회언약을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의 잘못과 감독들의 부패 및 권력남욕 등을 지적하면서 영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특히 더링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다윗을 예를 들면서 영국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당시 영국 교회는 영국 국가와 분리할 수 없었다. 더링은 왕의 역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링의 국가 언약의 메시지는 전혀 열매가 없었다. 왕이 듣지 아니했고, 영국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또한 영국의 장로교회의 아버지라 칭하는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영국 교회 개혁을 제안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토마스 윌콕스(Thomas Wilcox)와 존 필드 (John Field)는 영국 교회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렇게 청교도들의 국가 (사회) 언약에 근거해서 영국 교회 정치 제도 개혁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렇게 되자 청교도들은 교회 및 사회 언약의 기초가 되는 개인 언약에 집중하게 되었다. 개인 언약 사상에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다. 단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적 생활과 경건 생활을 언약 개념을 통해 발전시켰다.
청교도들이 언약 사상의 방향을 교회 혹은 사회 언약에서 개인 언약 사상으로 전환 시킨것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내린 전략적인 방향 전환인가? 아니면 당시 교회 및 사회 개혁을 시도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기에 그들이 개인 언약에 집중한 것인가? 이 문제는 역사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가 있다.
왜냐하면 몇 십년 후에 영국에는 시민전쟁 (English Civil War, 1642-1651)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개인 언약 사상의 기초가 잘 훈련되었기 때문에, 사회 (국가) 언약의 사상의 발로가 되는 시민전쟁이 발생했다. 영국의 시민전쟁은 왕당파와 의회파 간 사이의 내전이다. 1651년 9월 3일에 우스터 전투로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의회파의 대다수는 청교도들이었다. 청교도와 왕정 (영국 국교) 사이의 전쟁에서 청교도들이 승리했다. 이 시민전쟁의 결과로 왕 찰스 1세는 처형되었고, 찰스 2세는 추방되었다. 의회파는 잉글랜드 연방을 구성하였고, 1653년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을 호국경 (Lord Protectorate) 으로 선출하였다. 크롬웰에 1658년까지 실제적으로 영국을 통치했다. 크롬웰은 철저한 성경중심의 청교도 사상을 실천한 지도자이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보면 영국의 개인 언약 사상이 나중의 (약 40-50년후) 사회 및 국가 언약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의 신학적인 기초는 칼빈주의이다. 청교들의 개인 언약 사상은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청교도들의 개인 언약 사상에는 크게 두 줄기가 있다. 먼저는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는 일방적 (Unilateral) 인 언약 사상이며, 그리고 불링거의 언약 사상인데 이것은 쌍방적 (Bilateral) 인 성격이 강조된 언약 사상이다.
청교도들의 영국에서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칼빈의 주권적이며, 일방적인 언약의 성격만을 강조하면 인간의 책임을 등한히 여길 수 있고, 개인 경건과 영적인 개혁의 동력이 너무 약했다. 그렇다고 청교도들이 불링거 사상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결국 청교도들은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1584) 언약 사상을 받아드렸다. 토마스 카트라이트, 윌리엄 퍼킨스, 로버트 롤락 등과 후의 많은 청교도들은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율법을 통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며, 그리고 삼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수단과 방식, 즉 믿음을 제시하여 믿도록 하며, 나아가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청교도 개인 언약 사상에서는 십계명을 중요한 방편으로 주장한다. 당시 청교도들의 판단에서는 영국 국민들 가운데 거듭난 자는 소수이며,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이 많았다. 믿지 아니하는 영국 국민들은 행위 언약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격려하며, 이미 믿는 국민들은 (당시 청교도들에 의하면 이들은 은혜 언약 가운데 있다) 행위 언약의 율법 (주로 10계명)을 통하여 자신의 경건과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서의 책임을 다함으로 자신이 은혜 언약 가운데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는 칼빈의 예정론을 굳게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사상을 통해 인간의 능동적으로 성도의 삶의 경건과 거룩을 유발시키려했다. 그는 언약 사상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다. 퍼킨스에 의하면,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편이다. 일반적으로 율법의 용도는 죄를 깨닫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성도들에게 율법의 용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로 인도하여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한다. 그리고 퍼킨스는 언약 신학을 통해 칼빈의 주권적 일방적인 예정론과 더불어 성도들의 삶에서 경건과 거룩에 이르게 하는 성화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청교도들의 시각에는 영국 교회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적인 경건과 윤리적인 거룩함 그리고 성경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퍼킨스는 개인 언약의 개념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을 시도했다.
철저한 칼빈주의 입장에서 성도들의 경건과 거룩한 삶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개인 언약의 개념을 사용한 경우는 퍼킨스뿐만 아니라, 리차드 십스, 존 프레스톤, 존 다우네임 등 많은 청교도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과 동시에 언약의 조건을 강조하면서 성도의 언약적인 책임과 임무를 강조하였다. 이들의 개인언약 사상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인간과 언약을 세우셨고, 그 언약 관계에서 인간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응답하기를 원하신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동시에 그 은혜에 대한 반응과 책임을 대단히 강조했다.
청교도 개인 언약 사상은 알미니안 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인간의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양면성이 있다 (이 주제는 John von Rohr의 The Covenant of Grace in Puritan Thought에 매우 잘 설명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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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