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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28)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X. 종말론 (4)

 

F. 지옥 (2) 

 

제칠일 안식교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불신자들의 사후 의식 상태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부인한다. 이들은 불신자들은 사후에 “무존재 상태” (they no longer exist) 라고 주장한다. 즉 영혼소멸설, 혹은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을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악인들은 얼마동안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존재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영혼 소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1) 빌립보서 3:19; 살전 5:3; 살후 1:9; 벧후 3:7에 나오는 “멸망” (destruction) 이라는 단어를 지적한다; 그리고 2)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들이 의식 상태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은 모순 (inconsistency)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3) 현세에서 행한 죄와 영원한 형벌사이에는 불균형 (disproportion)이 있다고하며; 나아가서 4) 하나님의 우주에 악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지옥의 존재)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우주의 완전성에 위배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적인 대답은 1) “멸망” 의 구절들은 반드시 존재의 중단(cessation of existence)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항상 무존재 (non-existence) 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맥들을 살펴보면 “멸망” 이라는 표현은  불신자들이 당하게 될 심판의 극심한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다. 2) 만약 악한자들의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의 정의는 없을 것이다. 3) 현세에서 행하는 죄의 크고 중함은 우리가 판단 할 영역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4) 처벌되지 않은 악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은 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지옥에서 불신자들이 당하는 영원한 심판은 의식상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옥의 교리를 우리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상식으로 이해하지 말아야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어야한다. 오직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곧 진리요 생명이다. 물론 우리 인간의 생각과 논리와 상식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논리와 생각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가르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야한다. 이것이 곧 믿음이다.

요한 계시록 19장은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임을 가르쳐준다.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G. 천국

 

최후 심판후에 신자들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 존전에서 충만한 기쁨과 영광을 누리면서 영원히 산다 (계 22:3-5).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복된 장소 일것이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천사들과 생물들,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들이 영원토록 성 삼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곳이다.

최후의 심판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단순히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장소이다 (Heaven is a place, not just a state of mind). 복음주의 신학자인 도날드 거쓰리 (Donald Guthrie)는 그의 책 신약신학 (New Testament Theology, p. 880)에서 “바울은 천국을 장소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임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Paul does not think of heaven as a place, but thinks of it in terms of the presence of God, New Testament Theology p. 880)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국은 상태 뿐만 아니라, 장소를 의미한다. 

성경은 천국이 특정한 장소임을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때에 특정한 장소로 올라 가셨음을 말한다 (행 1:9; 눅 24:51). 스데반의 순교의 사건을 살펴보면 (행 7:55-56), 스데반이 단순히 어떤 존재의 상태의 상징을 본 것이 아니다 (He did not see mere symbols of a state of existence). 우주의 어떤 공간에 존재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자세한 내용들은 그루뎀의 조직신학 15장을 참고할 것).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천국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제한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것도 모두 우리를 위함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천국은 훨씬 복된 처소일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묘사의 한계를 벗어나는 영광의 나라일 것이다. 

 

그리고 요 14:2,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볼때도 천국은 상태가 아니라 특별한 장소이다. 그러나 그 장소가 어디인지, 어떠한 장소인지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것 만큼은 알 수 있다.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제한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것도 모두 우리를 위함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보다 천국은 훨씬 복된 처소일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묘사의 한계를 벗어나는 영광의 나라 일 것이다. 

계시록 21, 22장을 보면, 천국은 거룩한 성 (21:2)이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 곳”(21:4) 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게 될것이며,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밝은” (21:11) 도성이며, 그 치수는 엄청나게 광대한 곳이다 (21:16). 그리고 천국은 여러 색깔의 보석들로 되어있다 (21:18-21). 거기에는 악이 없다 (21:27).

천국에는 너무나 큰 기쁨과 즐거움과 영광과 아름다움이 있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보다 더욱 복된 것은, 그곳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와 예배와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구약 다윗이 그렇게 사모했던 일,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라고 소원했는데, 그 소원이 천국에서 다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토록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하나님께 찬송드리며, 큰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지낼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다. 그 때를 위하여 지금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담대하게 인내로서 달려야한다.

‘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을 애독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에는 ‘청교도들의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을 연재하겠습니다.

KHL0206@gmail.com

08.2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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