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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8) - 이삭의 하나님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이삭. 그는 이스라엘의 세 족장 중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창세기 22장에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를 모리아산 제단에 올려놓은 사건, 또 창세기 27장의 자신의 쌍둥이 아들들의 이야기 속에서 큰아들 에서를 편애하다 결국 작은아들 야곱에게 속는 장면으로 더 잘 알려진, 그래서 어느 주석가의 말처럼 성경에 “조연”으로 캐스팅된 인물이라는 평가가 안성맞춤인 사람이다.

그런 조연과 같은 인물인 이삭에게 전적으로 할애된 한 장의 성경이 있다 – 창세기 26장. 이 장 안에서 이삭은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스포트라잇을 받는데, 그렇게 조명된 이삭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조연으로 캐스팅된 사람이 창세기 26장을 통해 주연이 된 사람

이스라엘의 세 족장 중 하나님이 지시한 땅을 떠나지 않은 사람

이스라엘의 세 족장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의 리브가와 산 사람

 

첫째.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개렛(D. Garrett)이 살핀 바와 같이 창세기 26장에 묘사된 이삭의 삶의 다섯 사건은 아브라함이 겪은 다섯 사건과 내용적으로, 순서적으로 유사하다: 1. 부르심과 약속(창 26:2-6; 12:1-3); 2. 아내-누이 사건(창 26:7-11; 12:10-20); 3. 다툼과 양보(창 26:14-22; 13:1-12); 4. 확신과 제사(창 26:23-25; 15:1-21); 5. 브엘세바에서 맺은 아비멜렉과의 계약(창 26:26-33; 21:22-24).

특히,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듯이(창 12:10), 이삭의 삶 역시 “흉년”이 그 시작을 알렸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창 26:1).

창세기 26장에서 이렇게 아브라함 때와 유사한 사건들을 맞고 있는 이삭을 대하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삶을 이끌어 가실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브라함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의 삶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리라는 믿음의 지식.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은 바로 그 면을 일깨워 이삭에게 확신을 주신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창 26:24). 

아브라함이 안 하나님을 그 아들 이삭이 이제 알아가고 있고, 지금도 그 때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동일하다는 창세기 26장의 증언은 이를 읽는 모든 이에게 동일한 믿음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둘째.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그러나 이삭의 삶이 단순히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답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와 “계약”, 즉 불가침조약을 맺고자 브엘세바로 찾아온 아비멜렉은 이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창 26:28). 이는 전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했던 말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 21:22).

그런데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더한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9). 여기서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는 원문상에서 연계관계로 표현된 것인데 이를 조금 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자면 이렇다: “너는 이제 여호와의 복받은 자니라”. 다시 말해, ‘복받은 자’라는 뜻과 아울러 ‘여호와께 속한 자’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비멜의 눈에 비친 이삭은 그 부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이 그 삶 가운데 성취된 여호와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약속이 아브라함 당대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창 24:1). 하지만 그 복의 구체적 면모는 이삭의 때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때에 백배나 얻었고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창 26:12-14).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긴 했지만 그가 농사를 지어 백배나 얻었다는 기록은 없다. 유목민들이 목축을 기반으로 사는 것과 달리, 농사는 한 땅에 기반을 두고 정착해 살아야 가능한 경제 활동인데, 이삭은 목축뿐 아니라 농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더구나 “흉년”이 든 땅에서 말이다(창 26:1). 

이렇게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이삭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흉년을 피하고자 애굽으로 가지 아니하고 지시받은 땅에 계속 거주했기에 성취된 약속의 복이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 26:2). 그래서 이삭은 세 족장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그 땅에서 살며 하나님의 복의 성취를 받아 누린 족장이 되었다.

 

셋째. “그의 아내”

 

그렇게 큰 복을 받아 누린 이삭에게 닥친 가장 큰 위험은 아마도 리브가와 관련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창 26:7).

이 역시 이삭과 그 부친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 관찰되는 유사점들 중 하나인데, 아브라함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 없이 아비멜렉이 나서서 그 사태를 수습하게 된 경우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리브가가 이삭의 유일한 아내였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라 외에 첩 하갈(창 16:3)과 후처 그두라(창 25:1)가 있었고, 야곱에게는 레아(창 29:3), 라헬(창 29:30), 빌하(창 30:4), 실바(창 30:9) 네 아내가 있었다. 이에 반해 이삭은 오직 리브가 만의 남편으로서, 이스라엘의 세 족장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의 삶을 산 사람이었다.

 

넷째. “너와 네 자손”

 

마지막으로 창세기 26장은 “너”와 “네 자손”이란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26:3);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 때 ‘이스라엘’은 야곱에게 주어진 새 이름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라 함은 아울러 야곱의 후손이라는 의미를 같이 갖는다. 그래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그래서 자칫하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삭의 후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26장은 이삭을 이스라엘의 족장으로 바르게 인식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장이 된다. 아브라함이 족장으로서 약속받은 땅에 이름을 붙였듯이 이삭 역시 족장으로서 “에섹”, “싯나”, “르호봇”(창 26:20-22) 등 새 지명을 만들고, 그 아버지가 “브엘세바”라 부른 우물(창 21:31)이 위치한 성읍 전체에 “브엘세바”라는 이름을 붙임을 보여주고 있다(창 26:33).

자칫 “조연”처럼 보이는 이삭.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족장이었고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실 때 이삭의 이름을 꼭 밝히셨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spark4@gordonconwell.edu

10.0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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