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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7) - “이스마엘의 족보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구약의 족보는 종종 읽는 이로 하여금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과 어떻게 연결지어야 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 “모든 성경은… 유익하니…”

창세기 25장에 등장하는 이스마엘의 족보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창25:13-15절).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열 두 아들의 이름만 열거한 것이다.

본 글에서 필자는 이 족보가 우리에게 주는 어떤 “유익”이 있을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1. 약속의 성취

 

이스마엘의 족보가 주는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은 사래의 몸종으로서 아브람의 아이를 가진 후 사래의 학대에 못 이겨 도망하던 중 여호와의 사자가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났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10)는 말씀을 따라 여주인에게 돌아가 낳은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스마엘에게서 열 두 족속이 나오기에 이르고, 창세기의 저자는 그 이스마엘의 족보를 창세기 25장 12-18절에 담아 기록하는데, 이 일곱절 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부분을 들어 창세기 전체를 구성하는 열 개의 ‘톨레돗’(역사, 족보, 대략…)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그만큼 짧지만 비중이 있는 대목인 것이다.

한 조상에서 비롯된 열 두 족속. 과연 하나님은 하갈에게 하신 이스마엘에 대한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셨다. 족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약속의 씨인 이삭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이스마엘을 비롯한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의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2. 실제 역사

 

족보의 또 다른 유익은 이를 통해 우리가 실제 역사를 배운다는 점이다. 비록 간추린 이름에 불과하지만 그 족보는 하나님이 행하신 실제 역사의 한 면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스마엘의 열 두 족속의 경우 최소한 여섯에 대한 역사 자료가 존재한다:

느바욧. 후대 앗수르 문헌에 ‘나바야티,’ 기념 명각(graffiti)에 ‘나바얏’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에돔 동편에 정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사야는 이들을 양치는 족속으로 묘사했다(사 60:7).

두마. 후대 앗수르 문헌에 ‘아두마투’로 표기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기록에서 이들이 차지한 지역을 “아랍인의 요새” 그 왕을 “아랍인의 왕”이라 할 만큼 이들이 차지한 지역은 북 아라비아의 요지였고, 주 무역로가 그리로 지나갔다.

게달. 북 아라비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족속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사야는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를 언급한다(사 21:17). 예레미야서에서 게달은 “동방 자손들”(렘 49:28)로 일컬어지며(아마도 이들 중 동방박사가 나왔을 것이다), 에스겔서에서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고관”(겔 27:21)이라 한 표현은 게달이 당시 아랍연맹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헌에서 발견되는 앗수르와 게달 사이에 있었던 지속적인 충돌은 앗수르가 이런 게달을 계속 견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앗브엘. 후대 앗수르 문헌에 ‘이디바일루’로 등장한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4-727)에 의해 정복되어 앗수르와 애굽 사이의 경계를 이루었다. “서쪽”이라 불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시내(Sinai) 반도 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맛사. 앗수르 문헌에 “맛사인들이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느바욧과 함께 앗수르를 맞서 싸웠던 내용 또한 남아 있다. 잠언 30장에 아굴의 “잠언”(1절), 그리고 31장에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1절)이라 할 때 ‘잠언’으로 번역한 단어는 사실 ‘맛사’다. 여기서 ‘맛사’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고유명사로 읽는다면 아굴과 르무엘은 둘 다 맛사 족속의 왕이 된다. 

데마. 고대의 오아시스였던 데마가 그 영토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심 무역로에 자리한 요지로 욥기 21장 19절에 언급된다. 맛사와 마찬가지로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이사야는 데마가 오히려 그 침공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난민을 위해 물과 떡을 나눠줘야 할 것을 말했다(사 21:14). 후에(주전 552년) 나보니두스(Nabonidus)는 데마를 바벨론의 수도로 정하고 그의 통치 기간 12년 가운데 10년을 데마에서 보냈다.  

 

그 외 여섯 족속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여둘’은 신약시대에 ‘이두래’(눅 3:1)로 불려진 것으로 보이며, ‘밉삼’과 ‘미스마’는 이스라엘의 시므온 지파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대상 4:24-27).

이상의 자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마엘 족속을 태동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역사를 최소한 이스라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지속시켜 주셨음을 보여주는데, 이런 방대한 내용을 족보라는 간추린 정보로 받게 하신 것은 우리 성경 독자를 위한 성령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3. 시각의 교정

 

앞에서 살폈듯이 성경의 이스마엘은 이스라엘과 역사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대부분 유지했다. 심지어 그들에게서 잠언이 나오고, 그들의 일부가 시므온 지파로 영입되며, 그들에게서 동방박사가 나왔을 가능성마저 있다. 그런 그들이 차지하고 산 땅을 포괄적으로 서술하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창 25:18)고 말할 수 있다. 

이때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로 번역한 표현이 창세기 16장 12절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한글개역개정은 거기서 이렇게 옮긴다: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어떻게 같은 표현을 한 곳에서는 “맞은편에”로, 다른 곳에서는 “대항해서”로 옮기게 되었을까? 혹, 번역에도 편견이 작용할까? ‘이스마엘’ 하면 왠지 거북하고, “대항해서” 사는 것이 맞게 보이는 편견이 혹 우리 가운데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스마엘’은 참으로 복된 이름이다. ‘이스라엘’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이 친히 지어주신 이름이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을 담은 이름. 이런 패턴의 이름이 후대 이스라엘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 첫 모델이 이스마엘이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 얼마나 귀한 이름인가! 사실 이 이름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기도 전이다. 더군다나 그 아이가 출생하기도 전에 그 어머니에게 고지하신 이름이다: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 16:11).

이렇게 출생 이전에 이름이 고지되는 경우 유대 랍비 전통에서는 이를 ‘의인’의 출생으로 본다. 다시 말해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선대하시고 랍비들이 ‘의인’으로 본 아브람의 아들이다. 그런 이스마엘을 회교도들의 조상으로 삼은 것은 후대의 일이다.

이스마엘. 그는 하나님이 귀 기울이신 하갈이 낳은 아들이었고, 하나님이 약속을 이행하심으로 아라비아에 정착해 큰 민족을 이루기에 이른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이스마엘을 이스마엘로 아는 것. 그렇게 우리 시각의 교정이 일어난다면 이 역시 성경의 족보가 주는 유익일 것이다. 

spark4@gordonconwell.edu

09.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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