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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6) - “네 사랑하는 독자”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아들을 제물로 삼으실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음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되실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송명희 시인이 작시한 위의 찬양 가사는 골고다 산상에 올려진 성자 하나님과 그 독생자를 대속물로 주시고 또 받으셔야 하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담고 있다.

“가라”(창 12:1)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작한 여정의 끝 자락에서 아브라함이 다다른 곳은 바로 이 제단의 성역이었다. 장차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이를 사이에 두셔야 할 그 성역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올랐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려가 모리아 땅으로 가라. 그리고 내가 네게 일러 줄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히브리어 원문을 따라 다듬어본 창세기 22장 2절 말씀이다. 

‘데려가라’, ‘가라’, ‘번제로 드리라’ – 세 개의 명령형 동사가 축을 이루는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아브람이었던 시절, 이민자의 삶을 시작하며 받았던 말씀과 같은 “가라”를 포함하고 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가라”(leḵ-ləḵā)는 말씀을 받은 창세기 12장의 아브람은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이르러 살며 “제단을 쌓”은 바 있다(창 12:5-9). 창세기 22장의 세 동사가 말하는 내용이 창세기 12장에도 이미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 그 때 식솔을 이끌고 가는 것, 그리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 

이런 세 사항은 창세기 22장에 이르러 아주 구체화된다: 12장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22장에서 “모리아 땅으로 가라”로; 12장의 사래, 롯, 모든 소유, 모든 사람은 22장에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으로; 그리고 12장의 제단 쌓음은 22장에서 “내가 네게 일러 줄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로. 특히, 22장에서는 “가라” 뿐만 아니라 “데려가”, “번제로 드리라”는 사항이 직접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가라”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한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은 “가라”, “데려가라”,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대한 구체적 순종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이 창세기 25장 8절에 이르러서야 “열조에게로 돌아가”지만, 22장 이후의 기록은 사라를 앞서 보내고(23장) 이삭을 분가시킨 후(24장) 그가 생을 마감하는 내용을 담은 트랜지션 대목이기에, 실제로 아브라함이 그 후손에게 남길 신앙의 유산 쌓기는 22장에서 마감한다고 보아야 한다.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창세기 22장의 내용은 장차 자신들이 당면할 과제와 맞물리게 된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신 12:10-14).

가나안에 거하는 동안 여러 곳에 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예배했던 아브라함에게 한 곳을 택해 주시며 그 곳에서 번제 드릴 것을 명하셨듯이, 장차 이스라엘 역시 오직 여호와께서 택하실 한 곳에서 번제를 드려야 할 것을 지시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스라엘과 그 후손에게는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주시는데(신 12:28), 이 또한 창세기 22장에서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6-18)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대기의 저자는 창세기 22장의 “모리아 땅… 내가 네게 일러 줄 한 산 거기”이 신명기 12장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과 같은 곳이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 3:1).

성전, 즉,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신 12:11)이 바로 “모리아 산”이었다는 것이다(대하 3:1). 오직 창세기 22장과 역대하 3장에만 언급되는 모리아, 그래서 이 지명의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올린 곳(창 22), 하나님이 예배처로 택하신 곳(신 12),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대하 3)이 모두 동일한 장소임을 유추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리아가 가리키는 예루살렘에서(대하 3:1, “예루살렘 모리아 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지신다.

학자들 가운데 더러는 창세기 22장의 모리아가 역대하 3장의 예루살렘 모리아와 같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역대하 3장 본문이 다윗의 제사는 말하면서 아브라함의 제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과연 예루살렘이었으면 희귀 지명인 모리아 대신 창세기 22장이 14장에서처럼 “살렘”이라는 지명을 사용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윗의 유산을 말하는 역대하 문맥에서 아브라함이 언급되어질 이유가 없고, 모리아가 희귀 지명인것 만큼 살렘 역시 희귀 지명임을 고려할 때, 창세기 22장의 모리아와 대하 32장의 모리아가 서로 다른 지역이라 볼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보여 진다. 

이 모리아에서 우리는 세 부자의 역사를 접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22장의 기록은 이 중 아브라함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순종과 더불어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함께 보게 된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들, 그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대속물로 내 주신 성부 하나님의 마음. 우리의 증언은 이 마음에 대한 지식을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spark4@gordonconwell.edu

09.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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