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미국 개혁주의신학의 역사 (2)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언약(covenant)개념을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설명하였다.

청교도 신학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수단으로 신구약에 나타난 언약개념을 채택했다. 언약 안에서 율법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은혜는 율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킨다. 죄로 인해 영적으로 무능력해진 인간은 “행위언약”에 명시된 하나님의 의의 표준(the standards of God’s righteousness)에 따라 살 수 없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율법을 어긴 인간의 죄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자기가 담당하시고 언약을 어긴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과 은혜언약을 세우셨다. 이제 구원의 조건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이다.

청교도 언약신학은 율법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의 문제, 즉 전적 타락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고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지킨다. 율법을 지킴으로 사람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지킨다.

청교도들은 언약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함으로 율법주의(legalism)를 비판하였고,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을 강조함으로 율법폐기주의(Antinomian Controversy)를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초기 보스턴에서 율법폐기주의(Antinomian Controversy) 논쟁이 크게 일어났다. 결국 앤 허친슨(Ann Hutchinson)이 1637년 Massachusetts Bay Colony에서 추방이 되었고 로드아일랜드에 정착하였다(나중에 뉴욕으로 이사했다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죽었다). 

앤 허친슨은 영국에 있을 때 링컨셔(Lincolnshire)에서 존 코튼(John Cotton)의 설교를 즐겨 들었다가 코튼이 보스턴으로 오자 남편 월리암을 설득하여 코튼이 있는 보스턴까지 오게 된다. 앤 허친슨은 보스턴의 목사들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고 율법(당시의 언어로 행위언약)만 강조한다고 당시 보스턴 설교자들을 비판하였다. 보스턴 목사들은 행위의 죽은 사역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남편의 동생인 존 휠라이트(John Wheelwright)와 존 코톤(John Cotton)만이 진실된 복음을 전파한다고 주장했다. 

 

청교도 언약신학은 율법의 위치 유지하면서 하나님 은혜 강조
미국 대각성운동의 대표 조나단 에드워드는 ‘참된 덕’ 주장

 

당시의 보스턴 지도자들은 앤 허친슨의 이러한 주장은 보스턴 사회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판단하였고 사회적 안전에 큰 위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이 사건은 Edmund S. Morgan, The Puritan Dilemma, 1958, and Visible Saints: The History of a Puritan Idea, 1963) 책에 자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심문과정에서 앤 허친슨은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했다. 존 윈스롭을 비롯한 보스턴의 지도자들은 앤 허친슨을 율법폐기주의자(Antinomian)로 규정하여 보스턴 사회를 흔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인물임으로 규정했다. 앤 허친슨에게 끝까지 동정적이던 존 코튼도 더 이상 앤 허친슨을 도울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튼이 앤 허친슨 편에 있으면 자신의 위치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존 코튼의 설교 중에는 성령의 직접 사역을 매우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있었는데, 앤 허친슨이 이것을 오해했다. 존 코튼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말했지만 그러나 앤 허친슨은 율법폐기주의(antinomianism)적이며,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했고 그녀는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 1637년 앤 허친슨은 Massachusetts Bay Colony서 추방되었다.   

당시 Massachusetts Bay Colony의 General Court에서 앤 허친슨의 사상을 검증하는 기준은 칼빈주의 언약사상이었다. 언약사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하여 율법주의(Legalism)로부터 교회를 보호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강조하면서 율법폐기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했다. 

초기 뉴잉글랜드 청교도신학은 철저하게 칼빈주의이며 정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칼빈주의 정통 개혁주의신학이 점점 희석되어져갔다.

보스턴의 사무엘 윌라드(Samuel Willard)의 책, “The Compleat Body of Divinity”은 그가 죽은 후 1726년 출판, 청교도의 조직신학 책으로서 언약신학을 근거로 한다. 사무엘 윌라드는 하나님의 주권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을 잘 설명하며 이 언약의 입장에서 성화를 설명한다. 그는 쇠퇴해지는 칼빈주의 개혁주의신학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또한 코튼 매더(Cotton Mather)도 뉴잉글랜드 초기 청교도신학인 칼빈주의 정통 개혁주의신학을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코튼 매더의 신학은 그의 저서 “Magnalia Christi Americana”, 영어로는 “The Glorious Works of Christ in America”(“미국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일들”) 의미이다.

이 책에서 코튼 매더는 뉴잉글랜드의 영광스런 과거의 역사를 생각하며 초기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했는지를 적고 있다. 그리고 코튼 매더는 당시의 뉴잉글랜드의 과제는 새로운 과학에서 인과관계(cause-and-effect relationships)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며 현재의 삶에서 경건을 회복해야함을 강조했다(당시 유럽에서는 물리적 세계의 법칙을 연구한 아이삭 뉴튼과 마음의 법칙을 연구한 존 로크 사상이 유행했다. 이 사상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코튼 매더는 자기의 꿈과 비전을 수행할 좋은 제자도 없이 사망했지만 그의 노력 즉, 교리적 정통과 성경적인 경건생활을 융합하려는 매더의 노력은 18세기 뉴잉글랜드 지방의 대각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윌러드와 매더의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뉴잉글랜드는 초기 칼빈주의 사상이 많이 쇠퇴해졌다. 당시 유럽에서 출현한 이신론(Deism)이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고 의문을 제기함으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는 매우 불안해했다. 그리고 또한 당시에 알미니안주의가 청교도 사회에 증가하고 있었다. 젊은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일부 사람들은 정통적 청교도신학을 비웃고 있었다.

18세기 초의 뉴잉글랜드 청교도신학은 점점 더욱 현대화되는 세계가 요구하는 변화와 타협의 요구에 직면하였다. 그러므로 초기 청교도들이 세웠던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은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와 타협과 영적 침체가 급속히 일어날 때에 하나님께서는 뉴잉글랜드와 뉴저지 지역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하셨다.  

 

영적 대각성 운동(1730-1770)

 

대각성 운동은 초기 청교도들의 칼빈주의신학의 원칙을 바꾸지 않았고 당시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법과 긴급한 메시지로 교인들을 일깨웠다(Renovation이 아니라 Innovation).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들을 보면 중부 뉴저지의 화란 개혁교회 목사인  데오드르  프렐링후이센(Theodore J. Frelinghuysen, 1691-1747)과 장로교회 목사인 길버트 테넨트(Gilbert Tennent, 1703-1764)이다. 

뉴저지 주 라리탄(Raritan)에 있는 네덜란드개혁교회는 1720년에 새로운 목사 데오드르 프렐링후이센(Theodore J. Frelinghuysen) 목사를 청빙했고 그는 유럽 경건주의의 중심지에서 훈련받은 사람이었다.  

프렐링후이센 목사는 신앙의 공식적인 정통성(formal orthodoxy)보다 마음의 태도 (attitudes of the heart)를 더 중요시했다. 그는 교인들에게 하나님과의 마음이 따뜻한 관계(a warmhearted relationship with God)를 추구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장로교 길버트 테넨트(Gilbert Tennent, 1703-1764) 목사는 프렐링후이센의 이웃인 뉴저지 뉴브론즈윅(New Brunswick)에서 목회했는데, 매우 강한 언어로 교인들에게 회개를 외쳤다. 그의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는다”와 같이 매우 강력한 회개를 외쳤다.

이 시기에 매사추세츠 노스 햄튼(Northampton)에서 회중교회에서 목회하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매우 능력 있게 연속해서 설교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에게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가 모호했다. 그러므로 조나단 에드워드는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확신했고 연속적으로 설교했다.

사실 18세기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은 조나단 에드워드였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당시의 발달된 사상의 정교한 범주 속에서 기독교적 행동의 본질을 칼빈주의신학을 기초로 해서 연구하였다. 에드워드의 “의지의 자유”(Freedom of the Will, 1754)에서 인간의 본성과 구원의 근원에 대한 전통적인 칼빈주의사상(Traditional Calvinistic ideas)을 새롭고도 힘 있는 언어로서 표현하였다.

에드워즈는 “사람 안에 의지와 같은 실체가 없고,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Rather, people willed to do something in accordance with the strongest motive within themselves)에 따라 무엇을 하려고 한다(will to do)”, 다시 말해서 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하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내적 본성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people always act in a way that is consistent with their internal character: good trees do not produce bad fruit, nor bad trees good) 의지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람의 본성을 바꾸시지 않는 한, 죄로 부패한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는다(not will to do)는 것을 강조한다. 죄의 본성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따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죄인을 변화시켜야 한다.

신학적 용어로 에드워즈는 “중생(하나님의 행위)이 회심(회개와 믿음, 우리의 행위)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에드워드에 의하면 중생이 회심(믿음과 회개)보다 앞선다(Regeneration precedes faith and repentance). 이것은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이다.

에드워드의 인간론(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과 부패)에 대한 반대자들에 대해서 에드워드는 “원죄”(Original Sin, 1758) 책을 통하여 반대자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교리를 방어했다. 이 책에서 인류 전체(human as a whole)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할 때에 그곳에서 아담과 함께 범죄하여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은 모두 모든 행동을 할 때에 죄로 기울어져 있다고(toward sinning) 주장한다. 이것은 전통적 칼빈주의 사상, 인간의 전적타락의 교리이다.

특별히 조나단 에드워드는 그의 책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 1746)을 통해서 크리스천들의 신앙체험(religious experience), 혹은 신앙적인 감정을 매우 정교하게 분석하고 성경적으로 설명한다(지금까지도 조나단 에드워드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됨).

“신앙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은 영적 감정의 양이나 혹은 그 강도가 아니다”(It is not the quantity of religious emotions or their intensity that proves their reality).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 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하는 변화된 마음에서 출발한다”(It is rather that they originate in a heart that has been changed to love God and seek His pleasure)“

이 변화된 마음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변화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힘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결과가 흘러나온다. 에드워드는 성화의 기초는 중생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1765년 에드워드의 사후에 출판된 “참된 미덕의 본질”(The Nature of True Virtue)에서 “참된 덕은 존재를 합당하게 사랑하는 것”(love to Being in general)이라 했다. 

에드워즈는 진정으로 선한 모든 것은 (가장 순수한 존재로서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물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까지) 진정한 가치에 따라 대우하는 것이 “미덕”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인간처럼 취급하는 것(to treat God like a man), 혹은 인간을 하나님처럼 취급하는 것(to treat a man like God)은 참된 덕을 어기는 일이며 그것은 곧 죄의 방향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구속주, 섭리주로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경배를 받는 것이 곧 미덕이며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경외하는 일이 곧 미덕이다. 인간의 귀중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인간의 귀중성이 존재한다. 

“참된 덕은 존재를 합당하게 사랑하는 것”(love to Being in general)이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이러한 시도는 매우 철학적이며 논리적인 동시에 그의 사상의 기초는 정통적인 칼빈주의이다. 그의 사상체계의 범위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논리학, 심리학, 물리학, 미학, 천문학 및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에 확장되어있다.

KHL0206@gmail.com

01.29.2022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