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usa Pacific University교수)
지금까지 다니엘서 6장까지 논의하였다. 다니엘서 12장은 전반기 1-6장과 후반기 7-12장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1-6장까지는 시대적 순서로 나열되었지만 7장부터는 그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중심으로 더 세밀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시간적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필자는 15세 정도에 붙잡혀온 다니엘이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왕조를 거치면서 최고봉에 도달하게 비결과 그의 신앙 성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제 후반기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정리를 하고 다음해부터 후반기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는 이미 다니엘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 바 있다. 첨과 끝이 같은, 죽으면 죽었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 아름다움의 비결은 무엇일까?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건 교육의 힘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부모 교육의 힘이요, 조기 교육의 힘이요, 신앙 교육의 힘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렇다. 교육은 그저 산다는 사람들의 풍월을 읊는 놀이기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좀 부족해도 부모님들의 뚜렷한 가치관과 열정이 있다면, 부모의 올바른 믿음과 신앙적 세계관이 있다면 다니엘과 같은 자녀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허황된 이야기일까? 아니다.
Thomas Edison은 어릴 때 지적 능력이 부족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선생님이 낙인을 찍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를 품고 격려하였기에 그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발명가가 될 수 있었다.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기에 다신교가 횡행했던 이집트 궁궐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바로 다니엘이 그랬다. 바벨론, 페르시아에서 주위에 온통 그를 시기하는 자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하나님을 적대시한 그런 영적 환경에서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부모 교육의 힘이요, 조기 교육의 힘이다. 어릴 때의 교육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최근에 4-14 Window(4살부터 14살 사이에 아이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자) 개념이 등장하게 된 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꼭 짚고 갈 것이 있다. 바로 조기교육의 내용이다. 어떤 부모님들은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예체능, 언어, 다양한 학습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에, 조기교육의 핵심은 인격 교육, 신앙교육, 가치관/세계관 교육, 태도와 인성 교육이다. 조기 교육은 기본 교육이지 테크닉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부터 테크닉을 가르치고, 기술을 습득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조기교육은 기본기 단련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교육을 통해 개인이 변화되고 세계가 바뀌어 진다고 굳게 믿는다. 필자가 예수님의 교육 사상과 그의 가르침을 가장 황홀하게 받았던 계기가 바로 마태복음 26:55말씀을 읽었을 때이다. 바로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유대 제사장과 장로들로부터 보냄을 받은 군사들이 가롯 유다와 함께 그를 체포하려 한 순간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무슨 말인가?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주님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죄악에 빠진 이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택하신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가르침(teaching)이다. 필자는 여기서 감격한다.
주님은 3년 공생애 동안 가르치셨다. Preaching과 healing 역시 teaching의 일환이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3년 동안 무식했던(행4:13) 열두 제자들을 끊임없이 가르치셨고 그들이 이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은 순간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모든 그 이후의 일들을 제자들에게 맡겨 놓은 채 승천하셨다. 그리고 남아있는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권능에 힘입어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진리와 복음, 구원과 은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르침의 역사로 어두워졌던 세계가 구원의 등불로 밝혀지기 시작했고 그 어디에서도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가르침의 역사가 바로 지금 우리까지 이어오고 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기억해보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이 가르침의 역사의 최고봉이 바로 다니엘이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바로 부모이다. 바로 다니엘의 부모처럼, 모세의 부모처럼. 모든 아이들의 가르침은 부모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현재 교육제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 책임을 기꺼이 지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다. 부모의 교육권을 확립해야 한다.
자녀 교육의 주 담당자는 바로 부모이다. 교회나 학교는 바로 보조 역할이라는 것을 부모님들은 알았으면 좋겠다. 자녀의 교육을 학교에 맡겨서 그 뒤에 숨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학교 제도와 교육내용을 비판하면서 학교가 무슨 악한 영의 지배하에 있는 것처럼 오도한다.
조기교육의 핵심은 인격, 신앙, 가치관 등 기본 교육
공립학교 크리스천 교사는 선교사, 상담가, 비저너리
예전에 미국 정부가 Common Core State Standards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교사 교육에 전담하고 있는 필자는 몇몇의 크리스천 학부모님들로부터 이상한 항의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바로 이런 새로운 제도가 비기독교적인 내용을 학교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사탄의 공격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 시각으로 학교 교과과정과 행정을 매우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마디로 우리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매우 위험하며 하루 빨리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빼내오는 것이 그들을 어두운 영적 생활에서 해방시켜준다는 이론이다(물론 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유사 이래 학교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오지 못했다. 자본주의 폐해가 극심했던 1970-1980년대에는 학교 교과 과정이 자본가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는 시녀에 불과하다면서 학교는 지배계급을 양산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이론이 있었다. 학교가 아이들의 배움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배운 지식의 80%는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학교는 이미 그 기능을 잃었다면서 학교를 철폐해야 한다는 이론이 생겨나기도 했다(Ivan Illich가 지은 Deschooling society 혹은 Everette Reimer가 지은 School is dead라는 책을 읽어보라).
미국에서 한창 이민자들이 증가했을 때 학교는 이민자들에게 미국의 가치를 우월한 것으로 이민자들의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면서 학교 커리큘럼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휩쓸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원래 홈스쿨이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한 당시 공립학교 커리큘럼에 반대한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자유주의적 교육을 실시하려고 시도한 것인데, 지금은 그 반대로 공립학교가 반 기독교적 가치로 편향되어 있다면서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더 많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학교는 항상 외풍에 시달려왔다. 특히 민주주의의 다양한 견해를 용납하는 미국에서 더 그랬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부모들과 쓰면 안 된다는 부모들의 양극단의 견해에 어디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정녕 학교는 폐쇄되어야 하는 것인가? 공립학교를 죄다 부수고 교회마다 학교를 건립해야 하는 것이 능사인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학교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지켜 나가야 한다. 학교에는 하나님의 고유한 창조의 원리가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학교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관심 있는 분들은 Albert Wolters가 지은 Creation Regained 책을 읽어 보시기를 권면한다).
필자는 학교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미국에는 현재 350만명의 교사가 있다. 그중에 많은 선생님들이 크리스천들이고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처럼 교사양성대학에서 미래의 교사들을 양육하는 교수들 대부분들도 역시 크리스천들이다. 그들은 미래의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훈련한 후에 각종 공립학교로 파송하고 있다. 그들은 곧 선교사들이요, 상담가들이고 비저너리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오늘의 공립학교는 미래가 있다.
필자의 두 자녀들도 모두 공립학교를 나왔고 딸은 지금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만약 필자에게 또 다른 자녀가 생긴다면 필자는 그를 공립학교로 보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학교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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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