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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올바른 습관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의무

이희갑 목사

(Azusa Pacific University교수)

이제 다니엘 6장으로 넘어가 본다. 사실 성경 총 1,189장중에 가장 인기 있는 장중의 하나가 바로 다니엘 6장일 것이다. 주일학교시간에 거의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바로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 던져졌지만 드라마틱하게 살아난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설명했듯이 다니엘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이후 공직에서 떠나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게 멸망을 당한 이후 고레스 왕에 의해 다시 한번 수석총리로 임명이 된다.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은 같은 사람이며, 역사가 Archer에 따르면 다리오는 왕의 타이틀이라고 보았다(마치 로마황제를 시저라고 하고 애굽왕을 바로라고 하듯이). 성경학자들은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세 초반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미 은퇴를 하고도 남을 백발이 성성한 이방인 노인을 다리오 왕은 왜 중용했을까? 단6:3에 중요한 힌트를 찾게 된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마음이 민첩했다’(distinguished himself)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즉 다니엘은 최고의 학식과 영리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대학교수들 중 어떤 분야의 최고봉에 이른 사람들을 우리는 석좌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라고 한다. 다니엘은 그의 학식과 지식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말이다. 그 뿐인가? 그에게는 최고의 영성(extraordinary spirit)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성경(KJV)은 기록한다. 그는 지식뿐 아니라 자질, 소양이 당시 모든 리더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다시 말하면 영성, 지성, 그리고 인격적인 면에서 그는 당대 최고였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 하나가 있다. 크리스천들은 모든 부분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다니엘은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사회에서 출세하면 안 되고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또 그것이 사실인양 취급한다. 즉 믿음과 출세를 적대적인 관계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이 사회에서 성공과 잘 되는 것을 원하신다. 바로 다니엘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뛰어나고 학식으로도 충만해서 이 세상의 리더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다니엘은 정말 털어 먼지 하나 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탄의 공격은 믿음 있는 사람을 모함하고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인데 당시 다니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랬다. 당시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다니엘을 고발하려고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그가 아무 그릇됨이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니라”(단6:4). 

그렇다. 크리스천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다니엘의 믿음생활을 공격한다. 다니엘 몰래 그들은 왕을 만났고 조서를 발표하게 한다. 곧 이제부터 한 달 동안 누구든지 왕 이외 어떤 신이든지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곧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단6:7) 조서였다. 여기서 다니엘은 일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는 이때 혼자였다. 그의 세 친구들은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연로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다리오 왕 역시 조서가 이미 공표된 이상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루 3번 기도하던 다니엘은 습관의 힘으로 위기 앞에 감사해 

기도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찬송 봉사하는 습관 길러줘야

 

위기의 순간이 오자 그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필자가 성경을 통하여 가장 감명 받은 구절이 바로 다니엘 6:10 말씀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세 단어에 주목하자.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그리고 “감사하였더라.” 그는 왕의 조서가 곧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대항하지 않았고,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으며, 변명하거나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 생각해보자. 조서는 한 달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다니엘은 지방순시를 떠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 달 동안 그는 사람들이 보지 않게 문을 잠그고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한 달만 조용히 지나가면 그대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평소 하던 대로 똑같이 행했다. 문을 열어 놓고 무릎을 꿇고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은 자세로 기도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단 말인가?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절박한 위기 속에서 과연 감사의 단어가 그의 입에 나올 수 있었을까? 그는 달랐다. 그래서 필자는 그를 초지일관, 표리일체, 시종여일의 대명사로 부른다. 

 

무엇이 그를 위기의 순간에 담대하게 만들었을까? 그건 습관의 힘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세 번 꼭 기도하였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는 80여년을 살아가면서 영적인 거장이 되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이란 책에서 평소의 습관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고 역설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를 칭찬한 이유도 그는 어릴 때부터 믿음이 그 속에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딤후1:5-6). 사무엘이 위대한 선지자가 된 이유도 그가 기도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실행해왔기 때문이다(삼상12:23). 

예수님의 습관을 생각해보자. 그분은 습관을 좆아 늘 하시던 대로 기도하러 산에 가셨다(눅22:39). 주님은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성경을 읽으셨다(눅4:16). 그분은 늘 하시던 대로 무리를 만나 가르치셨다(막10:1).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습관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부지런히 닮도록 기도하는 습관, 성경을 읽는 습관, 찬송하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을 가르치자. 어릴 때부터 남을 부지런히 섬기도록 하는 습관, 예를 들면 사랑으로 교제하는 습관,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는 습관, 헌금을 드리는데 인색하지 않는 습관 등을 가르치자. 다니엘 6장의 이야기는 다음호에서도 계속된다. 

hlee04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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