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usa Pacific University교수)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온 지 35년 정도가 지나 다니엘 4장에서는 이제 50대 중년이 된 그를 발견한다. 이때는 대략 기원전 570년 정도에 일로써 느브갓네살 왕 통치(694-562 BC) 마지막 시기에 해당된다. 이방 땅에서 살아온 날이 조국에서 살아온 날보다 많은 이 시점에서 그는 가는 곳마다 큰 성공을 거두어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혹은 직업적으로 이때 그의 인생의 최고조에 도달하게 된다.
한마디로 그는 탁월하여 바벨론에서 그는 초특급으로 승진(그는 이미 박수장, the chief of the magicians이 되었음을 상기해보라, 단4:9)하였고 바벨론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가 감히 느브갓네살왕에게 충고하는 모습을 보라(단4:26-27). 즉 견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왕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자연스럽게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길 수 있다고 왕을 가르친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중년의 기독교인들이 지녀야 할 가치와 자세를 배우게 된다.
중년기는 인생의 황금기이다.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이 시기를 생산성 대 침체성 (generativity vs. stagnation)의 싸움이라고 보았다. 간단히 정리하면 결국 누구를 위해 살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황금 같은 중년기에 자신을 위해 살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지혜와 지식, 귀한 경험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것이냐의 싸움이다. 바로 후자의 자세를 생산성이라 한다.
이는 자신이 가진 지식, 경험, 능력을 총 동원하여 연륜의 지혜를 창출함으로 차세대를 위해 귀한 자산을 물려주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지속함으로 정작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을 남겨 놓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곧 자신의 침체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는 영성의 발달 단계에서도 증명된다.
영성의 발달을 연구한 James Fowler는 중년의 신앙단계를 접속적 신앙(conjunctive faith)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문제가 있을 때 갈등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대화와 조정을 통해 자신의 신앙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면서도 공동의 선을 추구함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헌신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황금의 시기, 중년기에 고민해야 할 인생의 과제는 나의 축적된 지식과 자산을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 이다. 바로 다니엘 4장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주제인데 여기에는 2가지 입장이 대립되어 있다. 바로 다니엘의 태도와 느브갓네살 왕의 태도이다.
중년은 접속적 신앙, 공동의 선 추구로 자기 집단에 헌신
생산성 있는 중년, 자녀에게 거룩의 위대한 유산 물려줘야
느브갓네살은 바로 최고의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이를 자신의 권력 추구, 이기적 욕심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결국 그는 가진 것 같으나 다 잃어버리고, 성취한 것 같으나 모래알 같이 흩어져 버린 전형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이었다. 다니엘 4:4을 보자.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 그는 자신의 안락과 부유를 나타내는 것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다.다니엘 4:30에 이렇게 말한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 아니냐?” 모든 초점을 자신에게 맞춘다. 결국 이는 교만이다. 예나 지금이나 교만은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게 막는 최대한 걸림돌이다.
그러나 다니엘을 보자.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이 예전처럼 충만하였다.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었고(단4:8, 18), 그 지혜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단4:9,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라).
다니엘은 한 번도 자신의 지혜와 탁월한 능력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아니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목표가 자신의 삶 속에 투영됨을 알았고 자신의 지혜와 총명은 곧 하나님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과감하게 느브갓네살왕에게 하나님의 의도를 가르쳤고,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믿음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기독교 역사상 찬란하게 빛이 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다니엘은 어렸을 때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고 청년기에도 역시 God First의 삶을 증거한 사람이었고 중년기에도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을 과감히 드렸던 사람이었으며 노년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삶을 마친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였던 중년의 시절에 그 자신의 욕구와 세상의 출세의 목적을 위해 살지 아니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드렸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메시아의 도래를 그는 믿고 꾸준히 이를 가르치고 기록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죽은 지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가 기록한 성경구절을 통해 인간 문명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그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한다. 다니엘, 참 아름다운 사람!
지금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는 중년들에게 질문을 해본다. 무엇으로 인생의 중년을 채울 것인가? 옛날 학교에서 잘못 배운 부분 하나가 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때 필자의 중학교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어록이라 하시면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하셨고 중요한 말씀이라 하시면서 외우라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틀렸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부모의 위대한 유산은 거룩이다. 지금 삶의 황금기인 중년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생의 황금시기에 무슨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우리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원한다면, 부모 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정직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일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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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