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St. John’s UMC)
밤새 '안녕'이라더니,,,
국민엄니로 큰 사랑을 받았고, 남다른 음식솜씨와 넉넉한 베풂으로 동료 연예인과 특별히 후배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던 '일용엄니' <김수미>씨의 소천 소식을 미국에서 나 또한 자고 난 후 접했다. 많은 유명인의 부고 뉴스를 들을 때 그저 안타까운 소식이었다면, 이번 고 김수미씨의 죽음은 뭔가 맥이 탁 풀리며 나에게도 큰 충격으로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요즘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누구보다 혼자 신나서 들뜨고 흥분하며, 가족들에게 엄마도 한강은 못돼도 한 컵은 되어보겠다며 한창 글쓰기 의지를 다시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을 타는 건가? 의사 말 대로 갱년기 때문에 그런가? 여름에 한국에 다녀와서 그런가?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박완서님의 책을 펼쳤다. 책장마다 연필로 언제 그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페이지를 넘긴다. 읽을 때마다 새로 쌓이는 밑줄은 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어도 항상 다른 감동과 생각을 주는 좋은 글의 신비함을 느낀다.
10년 전 참척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중략)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중략)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은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나를 닮은 목소리로> 박완서/문학동네
나의 어려움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어려움 당한 소식,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소식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항상 속이 꽉 막히는 듯 깊고 답답한 '왜?'였다. 책을 읽으며 그 해답 중 하나를 또 깨달았다. 그런 마음은 모두 작가의 고백처럼 터무니없는 교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 자녀인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결코 나 혼자 감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라는 걸 믿고 살지만 녹록지 않은 인생의 힘듦에 넘어지고 혼자 눈물을 흘릴 때는 얼마나 많았던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말씀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데 예레미야애가서의 말씀에 다시 연필을 들고 밑줄을 긋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고생과 근심을 알고 계시고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으로 정확하게 응답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어리석고 교만한 나를 회개한다.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예레미야애가 3장 32절~33절)
11월 Thanksgiving Day의 풍성한 축복과 감사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기도한다.
'왜?'라는 의문으로 고생하며 근심 중인 많은 이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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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