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청교도 신앙 회복 및 부흥(復興)”(25)

김경일목사

남가주 청교도 이주 400주년 기념 책자 저자
남가주행복찬교회담임

 

3)성경적 예배(Biblical Worship)  회복(回復)과 부흥(復興)을 위한 가정(家庭)의 중요성 

(1) 주일성수(Observe holy Lord’s Day)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기독교(基督敎)는 예배(禮拜)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拘束)함을 받은 성도(聖徒)들의 모임인 교회(敎會)에 주어진 가장 큰 사명(使命)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이다. 청교도(淸敎徒)들은 신약교회의 예배원리(原理)인 ‘영과 진리(‘in spirit and truth)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回復)하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정착(定着)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노력(努力)에 의하여 성경(聖經) 중심적(中心的)인 예배, 형식(形式)과 의식(意識)을 배제(排除)한 단순하고 영적인 면을 강조(強調)하는 예배 전통이 개혁주의(改革主義, Reformation) 안에 뿌리를 박게 되었다.

예배의 어원 출처(出處)를 살펴볼 때도 예배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경배(敬拜)의 대상인 것과 그 사실을 인식(認識)하는 모든 인간(人間)이 마음과 행동으로 그 분 앞에서 굴복(屈伏)하여 그 분을 지극히 높이는 표현의 행위(行爲)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는 마땅히 받으셔야 할 경배와 찬양과 존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피조물(被造物)의 특권(特權)이자 임무(任務)인 것이다. 주일성수(主日聖守)는 리차드 벡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의 자서전(自敍傳)에서 입증되듯이 안식일(安息日)의 엄숙(嚴肅)한 준수(遵守)는 사실상 청교도(Puritan) 활동 중 가장 우선적(優先的)이고 두드러진 특징(特徵)이며, 개신교의 주일성수 개념에 지대(至大)한 영향(影響)을 끼쳤다. 더 나아가 고국(故國) 한국교회의 부흥(復興)과 발전(發展)의 핵심(核心) 원동력(原動力)이었다. 

청교도들은 주일(主日)을 영혼(靈魂)을 위한 장날이요 단체(團體)의 찬양(讚揚)과 기도(祈禱)로 천국(天國) 잔치에 참여(參與)하는 날로 생각했다. 뉴잉글랜드(New England: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 버몬트주, 메인주, 뉴햄프셔주의 6개 주)의 청교도(淸敎徒)들은 주일을 구약(舊約) 전통의 안식일로 지켰다. 그들은 주일이 예배(禮拜)와 묵상(默想)을 위해 구별(區別)된 날이라고 믿었다. 

평균적으로 청교도는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3시간을 사용했다. 좁은 다리로 본토와 연결된 보스턴(Boston) 시는 토요일(土曜日) 일몰(日沒)부터 말 그대로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단절(斷絕)되어 주일 해질 때가 되어서야 이 마을로의 사람과 물건의 자유로운 출입(出入)이 재개(再開)되었다. 주일에는 물건(物件)을 사는 것이나 육체(肉體) 노동(勞動)을 할 수 없었고, 주일 여가(餘暇) 활동들도 역시 금지(禁止)되었다. 이 주일 활동들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態度)는 뉴잉글랜드 일부 지역에서는 극히 최근(最近)까지 지속(持續)되었고, 다른 지역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교계(敎界)의 주일 활동들에 대한 접근(接近)이 매우 다양(多樣)하지만 한 주간의 첫 날이 “주님의 날...귀하고 거룩한 날...”이라는 청교도(淸敎徒)의 견해(見解)는 지금도 계속적으로 그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使)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 왕 제임스 1세(James 1, 1603-1625)는 1617년 ‘스포츠(sports) 선언(宣言)’이라는 칙령(勅令)을 공표(公表)한다. 스포츠 선언은 교인(敎人)들이 주일 오후에 각종 스포츠나 오락의 취미(趣味)를 종교적(宗敎的)인 이유로 금지시킨 교회의 가르침을 전면적(全面的)으로 반대(反對)한 것이었다. 제임스 1세는 주일예배를 마친 후 스포츠, 악기연주, 댄싱 등을 얼마든지 즐겨도 된다고 공표한 것인데, 나중에는 술잔치, 가면무도회 등으로 확대(擴大)를 허용(許容)하였다. 당시 영국(英國) 상황을 리처드 벡스터는 ‘기도나 찬송하는 시간에 거리에서 계속 피리소리와 북소리와 고함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와 우리 귀를 괴롭혔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임스 1세에 이어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 역시 ‘스포츠 선언’을 재천명(闡明)하고 더욱 더 확대(擴大)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信仰)의 자유(自由)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1620년 최초(最初)의 이민선(移民船)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항해하면서도 매 주일마다 항해(航海)를 멈추고 영(靈)과 진리(眞理)’으로 전능(全能)하신 성삼위(聖三位) 하나님께 주일예배를 드리며 온전히 주일성수를 했던 것이다. 

사실, 청교도들이 스포츠나 신체 단련(鍛鍊)을 반대(反對)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들로 인해 쾌락주의(快樂主義)에 빠져 신자로서 경건(敬虔)의 의무 태만(怠慢)을 경계(警戒)하여 악(惡)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이런 퇴패(頹敗)적 시대(時代) 상황 속에서, 1643-1647년 크롬멜 청교도 혁명(革命) 중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 118문, 117문 안식일 즉 주일이 그들의 주요(主要)한 의무(義務)임과 구체적(具體的) 내용을 제시(提示)했다. 

제118문: 왜 가족(家族)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라는 명령(命令)이 특별히 주어졌습니까? 대답: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에게 안식일을 지킬 의무(義務)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솔(統率)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며, 그들 자신의 일로 아랫사람들의 안식일을 방해(妨害)하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입니다.”

제117문: 안식일 혹은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까? 대답: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온 종일 거룩히 쉼으로 할 것이며, 언제나 죄악(罪惡)된 일을 그칠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合黨)한 세상일이나 오락(娛樂)까지 그만 두어야 하며, 부득이한 일과 자선(慈善) 사업에 쓰는 것을 제외(除外)하고는 그 시간을 전적(全的)으로 공사간 예배하는 일에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準備)할 것이며,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히 절제(節制) 있게 배치(配置)하고 적절히 처리(處理)하여 주일의 의무에 보다 더 자유로이 또는 적절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하나님 임재 강하게 나타나며 주일에 신앙생활의 활력 얻어

한 주의 첫날 주일은 영혼 위한 장날, 찬양과 기도로 천국 잔치 참여해

 

더 나아가 그들은 주일성수에 방해(妨害)가 되는 것들을 금지(禁止)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명시(明示)하고 있다. 그렇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십계명(十誡命) 제 4계명에서 금지한 것들은 이행(履行)하지 않는 것과 모든 부주의(不注意)와 등한함, 또 게으름과 세속적(世俗的)인 일과 오락(娛樂)에 대하여 필요 없는 일, 말, 생각들을 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 또한 창세(創世)로부터 예수님 부활(復活) 이전에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 예수님 부활 이후부터 세상 끝날까지 일주일의 첫째 날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청교도의 주장(主張)은, 후에 미국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에게까지 계승(繼承)된다. 그는 “안식일(安息日) 제도의 목적과 내용이 신약(新約)의 주일제도(制度) 안에서 완성(完成)되었다”고 한다. 청교도들은 주일예배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나타나며, 주일은 모든 신앙생활의 활력(活力)을 얻는 날이라고 믿었다. 데이비드 클락슨(David Clarkson, 1622-1686)은 “주님께서 공적(公的) 예배에 의해 더 많은 영광(榮光)을 받으신다.” “공적 예배에는 주님의 임재가 더 많다”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청교도들은 주일성수를 의무(義務)로 여기며 철저하게 지킨 좋은 전통(傳統)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필자(筆者) 역시 이에 적극(積極) 동의(同意)한다. 실제로 리처드 벡스터(Richard Baxter)가 사역하던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의 변화(變化)된 주일성수의 모습에 대해 “주일날 거리에서 전혀 무질서(無秩序)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거리를 지날 때 수많은 가정(家庭)들이 찬송가(讚頌歌)를 부르고 설교(說敎)를 되풀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토마스 부룩스(Thomas Brooks, 1608-1680)는 영국 교회의 경건(敬虔)의 능력이 쇠퇴(衰退)하는 원인(原因)이 주일을 엄숙(嚴肅)히 지키지 않고 있음을 지적(指摘)했다. 이와 같이 그동안 미주 한인교회가 강성(強性) 발전(發展)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일성수, 즉 주일예배를 통한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 의식과 설교 말씀을 통한 삶의 지침(指針)이 확실(確實)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COVID 19으로 말미암아 주일성수의 전통적(傳統的) 가치관(價値觀)과 개념(槪念)이 무너진 현재, 다시 한번 청교도적(淸敎徒的)인 주일성수(主日聖守)의 개념으로 회복(回復)과 부흥(復興)이 되어야만 한다.  

kimjoyh@gmail.com

10.31.2020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