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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신서 (3)

김덕수 목사

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기록한 고린도전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배경

2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은 고린도에서 철수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후에 홀로 예루살렘교회를 거쳐서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돌아옵니다. 3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반드시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바울의 전략과 의지가 보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도착하기 전까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열심히 사역을 하는 중에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북단의 유명한 대도시)에서 태어난 유대인 아볼로라는 사람을 만납니다(행18:24-28).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힘 있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양성하여 고린도교회로 파송을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아볼로는 고린도로 파송을 받아서 사역하고 있고,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거쳐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복귀하여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행18:22) 3차 선교여행을 떠나(행18:23) 에베소에 도착을 합니다(행19:1). 이런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보이시죠?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복귀하였습니다. 복귀의 이유는 아마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린도교회에서의 사역이 버거웠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 고린도교회에서는 교회 안에 만연되어있던 문제들을 편지에 적어서(고전7:1)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고전16:17) 이 세 사람을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파송합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답변으로 써준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바울의 목소리로 들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내용

나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인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고전1:1). 교회 안에서 ‘바울편, 아볼로편, 베드로편, 그리스도편’ 등으로 파벌이 나눠졌다(고전1:12)고 들었습니다.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는가’하는 것이 분쟁의 원인이라고 들었습니다(고전1:13). 나 바울은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 가족 정도에게만 세례를 주었는데, 왜 세례문제 때문에 파벌이 생겼는지 안타깝습니다(고전1:14).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중요합니다(고전1:17).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지혜있다고 말하는 헬라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해 보이지만, 실상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며(고전1:18), 하나님의 지혜(고전1:24)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고전2:2). 

그런데 복음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다투고 있으니, 당신들에게는 내가 아주 쉽게 말해주겠습니다(고전3:1). 바울파, 아볼로파 등으로 나누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동역자들로서 각자 사명을 감당한 것뿐입니다. 이루어가심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복음의 씨앗을 받은 밭이고, 하나님의 집(성전)입니다(고전3:6-9). 그러니 성전된 당신들 안에는 아볼로나 바울같은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님께서 계셔야 되지 않겠습니까?(고전3:16). 성전된 당신들은 사람(바울, 아볼로, 게바 등)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들입니다(고전3:23). 

그러니 제발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꾼일 뿐입니다!(고전4:1-2)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신들을 부끄럽게 할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자녀에게 대하듯 하는 말입니다(고전4:14). 이번 일 때문에 디모데를 보냈으니, 디모데를 통해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고전4:17). 

그리고 내가 들으니, 교회 안에서 당파의 문제뿐만 아니라 음행과 법정 송사의 문제들(고전 5-6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회중에서 쫓아내야 합니다(고전5:1-2). 왜냐하면 누룩이 새 반죽덩어리에 들어오면 거기에 누룩이 퍼지는 것처럼(고전5:7), 죄가 교회에 퍼지기 전에 그들을 쫓아내어야 합니다(고전5:11-13).  

또한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마세요. 교회 안에서 벌어진 일을 왜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불의한 세상 사람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합니까?(고전6:11)  교회가 세상을 판단해야 하는데, 교회가 세상의 판단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고전6:2)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실패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속아주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고전6:7)  

고린서전서: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기록

교회안 당파, 음행, 송사, 우상숭배, 덕 세우기 등 권면

이제 여러분들이 나에게 적어서 보낸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에 관해서 답변을 해주겠습니다(고전7:1). 결혼에 대하여서는 ‘독신’이 좋습니다. 그러나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고전7:1-2, 8-9). 그리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고전8:8). 다만 우상에게 바친 제물 먹는 것을 다른 형제들이 보고 시험을 든다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고전8:9). 만일 내가 우상의 제사에 쓰였던 고기를 먹는 것을 누군가가 보고, 그 일로 그 사람이 시험에 든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입니다(고전8:13). 

사도들의 권리에 대하여서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에 전념하며 교회가 섬기는 것으로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우리 사도들을 위한 말씀입니다(고전9:4-10). 사도들이 신령한 것을 뿌리고, 성도들에게 육적인 것을 공급받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닙니다(고전9:11). 그러나 나 바울은 당신들에게 공급해 달라고 말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가 자랑하는 복음을 오해할 것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고전9:15).

여러분들은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전10:7). 어려운 일과 시험을 당했을 때도 우상숭배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10:13-14). 

교회 안에서는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여성들의 머리는 남성이며, 남성들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11:3).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동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고전11:11-12).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거룩한 선물로서 은사를 주시는 것은 교회의 공적인 유익을 위함입니다(고전12:4-7). 은사는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주십니다(고전12:8-11). 그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잘 세우기 위함입니다(고전12:12-30). 그런데 더욱 큰 은사를 말해줄까요?(고전12:31)

가장 큰 은사는 다름이 아니라 ‘사랑’입니다(고전13장).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1-2). 사랑하면 이런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인내하고, 온유하고, 시기와 자랑과 교만과 무례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13:4-6). 그런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그 사랑으로 하는 방언과 예언이 의미가 있는 것인데(고전14:1), 방언과 예언은 반드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고전14:3-5).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고전15:3-4). 그 부활에 우리도 참여시켜 주셨습니다(고전15:22). 그러므로 그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승리입니다(고전15:55-58).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잘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고전16:1-4).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고전16:21-24).    

dsukim@gmail.com

04.0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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