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선교와 교회
선교는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엄하게 명하신 사명이다. 교회의 역사는 곧 선교의 역사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신약 성경은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전개된 선교사역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는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사명을 다하기 위해 흘리는 땀과 피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선교는 복음을 드러내는 활동이다. 성령이 주도하시며 십자가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바울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많은 것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부족하고 작은 자라는 진심어린 고백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역현장에서 생생하게 복음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 사명을 다 하기까지 복음의 능력에 붙들려 쓰임을 받았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선교사명을 감당할 오고가는 모든 세대의 교회가 무엇을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인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조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미약하게 시작되었다. 사회적 변화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초기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전도를 받은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으며 1970년대부터 급성장하여 교회의 대형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한국교회가 선교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하였을까? 장로교는 1907년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로 파송하였으며, 감리교는 이미 1902년에 인천 내리교회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들을 위해 선교사를 파송한 바 있다. 그 후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향한 선교를 간헐적으로 시도하였지만, 1970년대까지는 해외선교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79년에 단지 93명의 선교사들이 26개국에서 활동할 정도로 미비하였다.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세계선교에 눈을 뜬 것이다. 각 교회와 교단, 그리고 선교단체가 활발하게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994년에는 3,272명의 선교사들을 119개국으로 파송하였다. 그 후 계속 그 수가 증가하여 2013년에는 무려 25,745명의 선교사들을 169개국으로 파송하였다. 2020년에는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2,259명의 선교사들이 168개국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는 평신도들의 수를 포함시키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해외에서 복음전파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아무쪼록 외국 선교사들의 복음전파에 의해 출발한 한국교회는 현재 복음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선교 강대국의 위치로 탈바꿈을 한 상태이다.
선교하는 교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비대면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향후 어떤 모습으로 선교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선교학자들과 선교에 경험이 많은 목회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선교사역이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번 기회에 놓치지 않아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이 있다. 80년대 이후 대폭 관심이 증가되어 현재 교회 전체 사역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분야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기본지식과 함께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작업이다. 선교 전체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 범위를 일반 성도들도 잘 알 수 있는 사항으로 대폭 축소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선교를 위해 재정을 많이 사용하면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재정에서 선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반드시 그 교회가 선교지향적인 교회라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교회지도자 또는 일부 관계자들만 선교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인들 전체 사이에 선교사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만일 선교에 대한 열정을 지닌 소수가 선교를 주도하지만 전체 교인의 호응을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도와 선교의 강조점은 동일하다. 교회가 속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되는 복음과 외국 땅으로 나가서 전해지는 복음이 결코 다르지 않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도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해외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외국에 살고 있는 자들을 전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교회공동체가 복음전파 사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헌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해외 선교사역과 지역전도, 그리고 구제사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격을 갖춘 선교사들을 배출하는 일과 그들을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보내는 선교사의 사명이라는 혹자의 표현에 동감한다.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와 재정 후원은 물론,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가 요구된다. 특히 온 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해 보내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는 복음전파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 침례교선교사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에 의해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1세기 앞서 독일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모라비안 교도들은 선교의 사명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였는데, 케리는 물론 감리교회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이들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일부에서는 독일 경건주의신학과 모리비안 교도들의 선교방식을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이 시대 교회가 배울 수 있는 좋은 영적유산을 남겨준 것도 사실이다.
모라비안 교회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진젠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t, 1700-1760)는 당시 경건주의 신학의 산실이었던 할레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비록 변호사가 되어 사회경력을 시작하지만 학창시절 학교를 방문하였던 인도 최초 선교사의 간증을 듣은 이후 줄곧 선교에 대한 열망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계선교를 꿈꾸며 독학으로 성경과 신학 공부에 몰두하였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6세기 종교개혁 이전부터 체코에서 교회의 개혁을 외쳤던 순교자 존 후스(John Hus, 1369-1415)를 추종하던 ‘보헤미안 형제단’에 속한 성도들이 가톨릭교회의 핍박을 피해 독일로 피신하여왔다. 진젠도르프는 자신의 영토에 그들을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운 것이다.
모라비안 교회의 해외선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50년 동안 165명의 선교사를 세계 전역에 파송하였다. 그들은 매우 단순한 동기로 선교에 임하였는데,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이때 그들이 가장 중시하였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올바로 전하는 것은 지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려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사함을 받는 은혜를 전달자 자신이 먼저 체험하고 그 놀라운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선교는 복음 드러내는 활동...성령이 주도하시며 십자가 능력 드러내
전도, 구제와 함께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
이들은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선교지에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원주민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섞여 삶을 나누는 것만큼 그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을 중시하였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떤 선교전략을 세우느냐에 앞서 성령이 주도하는 선교를 지향하였다. 성령이 계획하시고 실행해가시며 필요에 따라 선교사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확신 속에 사명을 감당하였다.
윌리엄 케리는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였다. 그 당시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시민혁명 등 정세에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성경과 함께 탐험과 역사에 관련된 독서를 통해 세계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가 18살이 되었을 때 커다란 신앙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 영국 국교회의 전통적인 신앙행습에 묶여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비국교도에 속한 친구로부터 체험적인 신앙에 대해 듣게 되었고, 결국 복음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케리는 근대 선교신학의 기초를 놓은 자이다. 세계의 종교상황을 파악하고 여러 자료들을 모아서 보다 체계적인 선교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선교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가 가장 중시하였던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의 능력은 개인은 물론 나아가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확신을 지녔었다. 선교사명은 복음을 전파하여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온 성도의 사명
과거 1997년에 닥쳤던 IMF 경제위기는 한국교회의 선교 물량주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초기 한국교회 선교사들이 시행하였던 네비우스 선교방법이 지향하였던바 십자가 복음에 뿌리를 내린 현지인들을 자립시키는 선교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어 안정을 되자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선교가 교회의 자랑거리 또는 교회간의 경쟁도구로 전락되기도 했다.
한국교회가 선교에 관심이 증가되었던 1980년대는 한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던 시기였으며,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해외선교가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은 아니다. 선교는 재정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는 선교사들의 생활과 사역을 위해 물질적으로 돕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정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는 재정지원 이상이다. 온 교회가 함께 선교사역에 구체적인 관심을 지니고 기도후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지니고 있다. 선교는 전도와 구제와 함께 주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 중의 하나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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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