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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40)

부제: 교회사가 가르친다!(26) - 종교다원주의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종교적 관용

 

한 교회를 담임하고 기독교 학교에서 기독교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개신교 목사가 절을 찾아가 불상 앞에 절하는 모습이 공영 TV에 방송되었다. 2003년에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런 모습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개신교 관계자들이 이는 우상숭배 행위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러자 그는 개신교가 결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며 관용과 조화를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나아가서 그는 기독교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틀 안에 신을 가두어 욕망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라고 답하였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해직되었다. 그의 태도가 창학 이념인 기독교정신에 어긋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한국 종교계 전체가 들썩거린 큰 문제로 확산되었다. 보수적 개신교계에서는 그의 해직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이에 맞선 소수의 진보적 신학자들과 여러 불교 및 가톨릭 단체들은 그를 지지하여 복직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기독교는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으며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매우 전투적이었다. 기독교를 ‘개독교’로 비하하는 매우 언짢은 호칭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했다. 결국 그는 법정싸움에서 승리하여 복직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강의와 저술활동을 통해 노골적으로 비전통적인 종교관을 드러냈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론의 구조가 서로 통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찰을 찾아가 불상을 부수거나 땅 밟기를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대할 때가 있다. 종교인들은 타 종교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혐오감과 불쾌감을 주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상식 밖의 행동으로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만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언급하면, 즉각 기독교는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는 자들이 무척 많다. 이는 기독교의 핵심사상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벅차게 느껴진다. 개신교와 타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예 관심을 꺼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길이 지닌 유일성을 부정하고, 타 종교에도 근본적으로 같은 동일하게 주어졌다하며 ‘종교의 일치’를 주장할 때에도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특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관계에 대하여, 서로 다른 교회 제도를 가졌지만 구원에 관한 교리는 동일하기에 얼마든지 한 몸으로 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타종교와 대화(종교적 일치)는 불가능 

교회 일치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구교와 신교

 

10월 31일 종교개혁일이 되면 개신교 교회 강단마다 16세기 개혁자들이 로마가톨릭교회를 대항하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비록 한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가톨릭교회가 지닌 근본적으로 다른 신학과 전통으로 인해 함께 한 길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신교 성도들 가운데 구교와 신교 사이에 다른 것을 있지만 매우 경미하며 도리어 이웃사촌과도 같은 신앙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2000년의 교회의 역사 중 초대교회부터 중세교회까지 약 15세기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 타 종교에 배해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 예로, 가톨릭 성도가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면 그가 받았던 영세의 유효성을 인정하여 다시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 입교 예식을 통해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적 가톨릭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개신교 신학자들보다 성경의 권위와 인정할 뿐 아니라 그 해석이 전통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교인들이 구교의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 생길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1960년대 이후 가톨릭교회 안에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가톨릭교회가 의도적으로 자신들이 지녔던 과거의 도도한 이미지를 포기하고, 더욱 친근하게 세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23세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모였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정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선포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하나였으나 분열된 상태에 머물러있는 동방교회 및 개신교가 한 분의 그리스도를 공유하기에.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일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해나갈 의지를 보인 것이다. 가톨릭교회를 방문하거나 미사를 참석한 경험이 있는 개신교 성도들은 그들에게서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 부르는 찬송을 개사하여 미사 도중에 사용한다. 일반성도로 구성된 찬양대가 미사에 참여한다. 신부들은 강설시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심지어 평신도 주일을 설정하고 교회의 중요 구성원이 사제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들은 매우 적극적이며 의도적으로 개신교 교인들에게 다가 오고 있다. 

 

타종교와의 대화 

 

한편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향후 타 종교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개신교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계기가 된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들이 결정한 교리적 구성 중 제2장 ‘하나님의 백성’ 항목 16조에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배정된다는 사실을 결정하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 원하는 분이시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라도 영원한 구원을 획득하게 하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매우 충격적이다. 비그리스도인조차도 성실한 마음과 양심을 가지고 바르게 살면 영원한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유일한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을 무용지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가톨릭교회는 ‘타 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란 이슬람, 불교, 유대교 등의 타 종교인들과 함께 자리를 하여 좋은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대화란 이는 근본이 다른 종교이나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종교적 일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가톨릭교회가 타 종교가 제시하는 ‘구원의 길’도 하나님께 인도한다고 인정하기에 이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의미만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힘을 입어 종교다원주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들은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갈래가 있기에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처럼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하나같이 궁극적인 실재인 하나님이란 정상에 오르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고 해석한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 간의 갈등을 회피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오직 예수를 주장하는 자들을 배타주의로 몰아세운다.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우월감에 빠져서 자신들의 교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숙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한다. 종교적 독선을 버리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라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기독교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들 중에 하나로 간주하는 종교다원주의는 성경과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 종교들의 영향을 받은 편집된 문서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대한 기록은 그를 신화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한 의도에 의해 작업된 작품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독일 루터교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성경의 비신화화를 시도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신화적인 이야기를 모두 삭제해야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폴 틸리히(1886-1965)는 문화와 종교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근거로 기독교인은 타종교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동양종교는 기독교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비록 종교다원주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서구교회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지만 향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1886-1968)가 있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고 있기에, 복음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 즉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중에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익명의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였다. 

영국의 신학자 존 힉(1922-2012)은 칼 라너의 그리스도중심 신학을 비판하고, 기독교 신앙은  ‘신중심 신학’을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동일한 신을 섬기지만 사실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서 모든 종교들이 기독교가 제시하는 동일한 구원에 이른다는 종교다원주의 교리가 완전하게 정착하게 되고 향후 발전되었다. 힌두교 아버지와 가톨릭 어머니를 둔 라이문도 파니카(1918-2010)는 모든 종교들의 인간 안에 내재하는 로고스를 반영함으로 종교적 경험이 일치하기에 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로고스는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석가, 마호메드, 공자, 라마 역시 보편적 그리스도로 나타난 역사적 인물이다. 뉴욕 유니온신학교의 폴 니터(1939- )교수는 기독교를 상대적 종교로 이해하였다. 모든 종교가 초월자에 대한 인격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신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변신환 교수가 1980년대에 그와 유사하게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신중심’ 신학에 입각하여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선언을 하였다. 결국 그가 속하였던 감리교단은 동양종교에 심취하여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불교와의 대화를 시도하였던 그를 목사직에서 면직시켰다.  

 

유일한 구원종교

 

현재 종교 간의 대화가 날로 많아지고 있다. 비서구권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반서구 감정이 높아지면서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종교 간의 대화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WCC가 종교다원화의 촉진제 역할을 담당하여왔다. 

교회의 일치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타 종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하면서 타 종교를 수용하는 일은 어떤 형태라고 거부되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세계평화를 성취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타락한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평화의 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이다.  

covenantcho@yahoo.com

08.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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