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경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관한 글들
IV.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삶
1.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들
칼빈의 말하고자 하는 성경의 질서는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우리 마음 속에 의를 사랑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결코 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분명한 질서를 제시함으로 우리가 이리저리 방황하거나 우리의 삶을 잘못되게 세우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은 우리가 선한 일을 사랑해야만 하는 탁월한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가 되는 첫째는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훈계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선한 행위의 기초가 어디 있겠는가? 사도는 베드로전서에서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14-16)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기에 주님은 또 하나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우리들도 길을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양 떼들처럼 미궁과 같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불러 모아 자신과 연합하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와 하나님과 연합되었다고 하시면서 이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띠는 거룩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물론 우리 자신의 거룩이 공로가 되어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거룩은 그 성질상 죄악과 부정함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닮아야 마땅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르게 반응한다면 우리의 소명의 목표이며 우리가 항상 바라보아야 할 것이 거룩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평생 동안 더러운 오물 구덩이에서 뒹굴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 구덩이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만일 하나님의 백성과 계속하여 교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여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친다(시 116:19; 122:2-9). 그 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성별된 성이기 때문에 부정하고 속된 거주민들로 인하여 더럽히거나 오염되어서는 안된다. 흠없이 행하며 정직한 삶을 영위하는 자만이 주의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다.
2)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행위 때문이다
(1) 성경은 철학자들의 교훈과 비교할 수 없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셨으며 또한 그분 안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양식이 어떤 것이며 의지해야 할 후원자가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고후 5:1). 이제까지 철학자들이 윤리적인 교훈을 바르고 적절하게 다루어 왔는가? 그 철학자들이 이런 거룩과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대해서 제시해주고 있는가? 철학자들은 모든 힘을 다해 우리에게 덕을 가르칠 때, 그들이 말하려는 요점은 우리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훨씬 더 훌륭한 근원으로부터 우리를 위한 훈계를 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 전체를 그 삶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과 연관시킬 것을 명령한다. 또한 우리가 피조물의 참된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음을 경고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성부 하나님에게 화목시킴으로서 순결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2) 우리가 주의 삶을 본받지 않는 것은 매우 불경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삶을 본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고 효력이 있는 것이 있겠는가? 이것 이상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낼 것을 것을 조건으로 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는데, 만일 우리가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며 우리 구주를 거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과 우리의 구원의 모든 부분들에 근거하여 성경은 우리를 훈계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부로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들답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친 불만을 표현하는 것임을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대표격인 제사장들이 그분의 이름을 멸시한다고 말씀하신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엡 5:1).
(3) 우리는 거룩을 지향해야 할 책임으로 부름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보혈의 피를 통하여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세례를 통하여 이 정결함을 나누어 주셨는데, 우리가 또 다시 오물 속에서 뒹군다면 그것은 참으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히 10:10), 주님은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엡 5:26). 바울 사도는 우리를 향해 권면하면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몸에 연합시키시고 접붙이셨다면 그의 지체들인 우리가 마땅히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엡 5:22-33; 요 15:3-6). 이에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고 도전한다. 우리의 머리이신 그분이 하늘로 올리워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세상적인 애착을 떨쳐 버리고 전심으로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갈망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1-3)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로 땅의 지체를 죽이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
(4)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를 성별하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으시도록 주의해야 하며, 우리는 자신이 오염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전 3:16; 6:19). 바울 사도는 출애굽기, 레위기, 에스겔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고 하셨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는 불멸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썩지 않는 그의 영광의 면류관을 유업으로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벧전 5:14), 우리는 그것을 주님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 없이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살전 5:23; 빌 1:10). 바로 여기에 우리 삶의 선하고도 적절한 토대가 있다. 이와 같은 토대는 인간의 자연적인 존엄성만을 보여주는 철학자들에게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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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