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경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관한 글들
III. 칼빈의 신앙의 핵심
2. 우리들 자신에 관한 지식
어떻게 하면 우리들 자신에 관하여 확고한 지식에 도달 할 수 있을까?
4) 그 악함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약간의 선함을 보여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때도 마음은 여전히 내적인 더러움 속을 뒹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마음의 비밀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응시하신다. 아무리 현란해도 우리가 보여주는 거룩의 외양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위선과 가증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외양 뒤편에는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사고가 잠복해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공급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인 우리는 그의 존귀와 영광을 섬기며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들이다
가난에 몰린 채무자들과 같이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을 갚을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를 묶고 있는 죄악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일어나 선을 행할 수 있는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끊어버린다(요 8:34-38; 롬 7:15-25). 하나님은 범죄에 대해 정당하게 보응하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저주를 받고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의 의무를 행할 수 없으며 행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와같이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들”이라고 호칭한다. 우리는 죽음과 파멸을 향하여 돌진하는 자들이다(엡 2:1-3; 롬 3:9-20)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의 의, 권능, 생명, 구원 등 그 어느 것도 추구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분리된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 안에서 다만 불행, 연약함, 악함,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 안에 지옥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호 13:4-9).
3. 기록된 율법
1) 율법을 주신 이유
이런 사실들을 잊어버린 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율법을 새겨두셨다(롬 2:1-16).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증거하는 증인은 우리의 양심이다. 양심은 우리 앞에 선과 악을 제시한다. 양심은 우리를 송사하고 때로는 저주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시행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교만함과 야망에 잔득 부풀고, 자기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도 없고 우리 자신에게로 내려 갈 수도 없고(자아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죄악된 상황을 폭로하는 것에 대한 칼빈의 표현, 『기독교강요』 1.1.2; 2.8.3; 3.20.6; 4.17.20), 우리의 불행을 고백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완전한 의가 무엇이며, 그 의를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굳게 서서 다만 그분만을 응시해야 한다.
2) 우리의 모든 사고와 열망과 행동과 말은 그분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옳은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이 의의 가르침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모든 약속과 저주는 이 목표를 바라본다. 이것들은 율법 그 자체 안에 우리를 위해 제시되어 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명령받은 것을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성취할 수 있다면, 그는 영생의 보장을 받을 것이다(레 18;5).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완전한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 의이다. 이 의는 다만 하나님과 관련시켜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들 중에서 진정 의로운 존재가 있다면, 그는 그 같은 보상을 받기에 합당할 것이다. 반면, 율법에 나타난 모든 의로움을 완전히, 그리고 예외 없이 지키지 않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저주를 선언하시며 영원한 죽음이라는 심판을 내리신다(신 27:26; 갈 3:10).
3)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모든 인류는 이 같은 하나님의 형벌 때문에 분명히 긴장감을 느낀다. 율법을 범하지 않은 자라면 한 사람도 그 같은 긴장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이 뜻을 성취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우리가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롬 3:19; 7:7-25).
율법은 하나의 완벽한 의의 거울이다(『기독교강요』 2.7.7; 3.18.19). 우리가 거울을 통하여 우리 얼굴에 있는 흠집을 보듯이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죄와 저주를 분별해내고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이 기록된 법은 사실상 자연법의 증인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된 법은 우리의 기억을 일깨우며 우리 안에서 자연법이 우리에게 충분히 가르쳐 주는데 실패한 내용들을 정선하여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법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주시요 아버지이심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영광, 존귀, 그리고 사랑은 오직 그분의 덕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런 의무들을 완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저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야만 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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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