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영적각성은 하나님 관점에서 세상 보는 성경적 세계관 회복하는 것
모든 시대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하나님 섭리 가운데 이뤄져
예수님의 도전
“이 시대를 분별하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떤 의미일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여 세상 읽기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라는 분부이다.
지금은 정보시대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삶의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곳에서도 손에 들린 작은 기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눈과 귀를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정보로 인해 마음이 분주하다.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각성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을 회복하는 것이다. 생각의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조용한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성경이 가르치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으로 시작된다. 창조 이전에는 영원히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셨으며,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시간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의 개념, 즉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생각을 교정해 준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시간을 매우 중요시 여기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시간이란 굴레에 얽매인 분이 아니시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시간이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시간 밖에 존재하시면서, 시간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하시며 이끌어가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
이 세상의 역사는 시간의 연속이다. 이미 창조와 함께 출발되었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까지 한 직선을 그리며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와 미래라는 두 공간이 만나는 교차로와 같다. 그러므로 이 시대 자체가 과거라는 시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미래라는 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적 관점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려면,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분명한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과거를 만나게 된다. 창조 이후 주후 1세기까지의 길고 긴 역사 속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미래를 접하게 된다. 성경은 종말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벌어질 일들과 그 후에 전개된 사건들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가지게 된다. 구약과 신약 전체에 담긴 역사적 기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성경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친히 이 모든 것을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전달하셨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 자체가 지니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그 무엇’을 위해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공부하면 얻게 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역사 속에서 이를 실천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 미래에 약속하신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 포함되어 있다. 창조 이후 많은 민족과 나라가 등장하고 사라져갔다. 각 시대마다 독특한 문화와 삶의 방식들이 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들이 무척 많다. 이 모든 시대 역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움직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우리의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적 한계 안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고 결정하고 경영하여도, 그 걸음과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나이다”(렘10:23).
이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세속화의 극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속화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17세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등장한 계몽사상 이후, 지속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상식, 과학과 철학으로 더 나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진보적 사고가 아직도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중심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인간 중심의 사상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시대에 만연한 반 기독교적 정서도 결국 이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대를 말세라 할 수 있는가? 성경은 말세를 알리는 사건과 세상의 상태를 통해 그 징조를 알 수 있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전쟁, 지진, 식량 부족, 범죄, 자연 파괴, 부모에 대한 불순종, 비정함, 위선적 신앙,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짐, 감사하지 않음, 충성되지 못함, 중상, 자제력 상실, 사나움, 선을 버림, 배반, 고집, 교만, 말씀을 업신여김, 도덕적 타락...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설명한 듯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때라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징조는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이전보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말세가 2000년이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성경구절이 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재림을 예측하려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구원을 받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거룩한 고민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뜻은 자신이 정하신 시간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전도서 3장 1-11절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맡긴다는 의지와 행동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개인의 삶을 포함하여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상황을 이끄는 힘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 신앙인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잠16:20).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자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으셨지만, 즉각적으로 베다니로 달려가지 않으셨다. 이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신 후,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후에야 제자들과 함께 움직이셨다. 인간적인 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지체하심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면, 그가 정한 시간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한다. 이 세대를 가까이 접하면 소망보다 절망이 앞선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근거는, 그가 가장 적절한 시간에 그 뜻을 펼쳐 보이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시대를 본받지 말고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하는 목적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패한 인간은 이 세대의 달콤함이 주는 유혹 앞에 한없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실체를 발견할수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을 변화를 받아 분별력을 가져야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롬12:1-2).
하나님의 시간은 항상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 흘러가는 시간 안에 이 시대를 위해 내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오늘’에 언급하려 한다.
예수님은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히13:8). 이에 반하여 우리는 ‘오늘’이란 이 시대의 제한을 받으며 살아간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지나 믿음의 길을 마친 후에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원히 살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를 포함하여 창조 이후 모든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모두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한 목적지를 향해 믿음의 걸음을 걷는 성도들이라면 반드시 그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 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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