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글자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소름이 돋을 만큼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이었다. ‘시인은 손바닥에 한 알의 씨앗을 올려놓고 새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있다. 그 책의 내용은 시인의 상상 이상으로 비약하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전혀 소재로 삼거나 그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내용들이었으나 역사라는 팩트에 기댄 덧붙임과 해석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갔다.
총칼이라는 무력 대결의 승패는 말 그대로 힘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글 또는 언어로 대변되는 문화는 다르다. 사람들의 뼈에 새겨지고 혼이 지배되기도 한다. 그래서 펜이 총보다 더 강하다고 말하나 보다.
중국은 지금도 무력을 과시하는 다른 한 편에서 문화 찬탈의 공세도 늦추지 않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거나 그들 안으로 편입하려 혈안이 될 정도다. 중국의 56개 민족 중 조선족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백 년 안팎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복과 김치뿐만 아니라 아리랑마저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땅의 경계가 아니라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중국의 것이라는 논리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글인 한자(漢字)다. 중국의 글인 한자를 빌려 쓰고(?) 있는 모든 곳,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도 포함이 된다. 그러니 한국이나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다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본 책은 그 허구를 지적하며 한자가 과연 중국의 것이냐고 되묻고 있다.
평화(平和)의 본질은 힘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용할 때 이뤄진다. 강한 힘으로 약한 자를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불만과 불평이 억울함으로 표출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닌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낫을 빌려오지 못했다. 거절당한 것이다. 얼마 후 이웃집이 낫을 빌리러 왔다. 아들은 낫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으나 아버지는 빌려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웃이 그랬으니 나도 그러는 것은 복수(復讐)며 미운 마음으로 빌려주는 것은 증오(憎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마음으로 빌려주는 것은 긍휼(矜恤)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1서 4:16)
세상이 온통 뒤숭숭하다. 여기저기 전쟁의 소문이 커져가고 그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이제 글로벌화 되어 있다. 객체가 아니라 연합이기 때문에 한곳의 영향을 모두가 받게 되는 구조로 얽혀있다. 단일 민족, 단일 국가라는 정체성과 가치관이 무색해져 가고 앞으로 이는 더 심화될 것이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징기스칸은 무력 즉,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었다.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무모하게 끝이 났다. 중국은 지금 힘과 문화로 세계를 주도하려 한다. 오대양 육대주에 중국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사람이 가면 문화도 따라간다. 언젠가 중국인들이 살면서 뿌린 문화로 인해 세계가 중국화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는 야심찬 시도도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도(道)는 지배하거나 지배를 받는 길로만 치닫는다. 공자(孔子)는 군자의 가치를 충(忠), 효(孝), 예(禮)에 두었다. 그런데 그런 가치는 필경 신분의 높낮이를 구분하게 만든다. 인간 차별이 불가피한 가치다.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없다.
세계가 하나 되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하늘의 뜻인 까닭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용서와 이해와 타협도 사랑 안에서는 가능하다. 다름을 틀림이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유행한 노래가 있다. 손에 손잡고다. 셈과 함과 야벳이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사랑!
이 사랑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통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하나다. 이 사랑만이 갈등과 반목과 차별을 녹여서 세상이 바라는 평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덮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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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