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르네상스예술은 중세말 고딕예술 비하하며 등장 한 시대 풍미
1520년대 매너리즘 등장, 자연주의 거부 예술가 인위성 강조
예술
예술은 감정과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개념을 설명하는 학문인 과학과 달리, 예술은 창작을 통해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예술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문학, 그리고 무용 작품을 통해 동 시대 사람들을 결합시킨다. 특정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은 개인들이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모두가,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그 안에 담겨있는 정신의 지배를 받게 된다.
중세의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의 정신과 신학이 예술적 감각에 뛰어난 자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중세시대 말인 12세기 후반에 북부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딕예술(Gothic Art)’이다. ‘고딕’이란 단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시기와 동기를 살펴보면 중세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딕 예술
중세예술을 ‘고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일이다. 그 동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차별화를 두기 위함이다. ‘고딕’의 어원은 중세 초기 로마제국의 영토로 이동하여 유럽을 정복한 게르만민족 중 하나인 고트에서 나온 것이다. ‘야만인’ 내지는 ‘야만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 사람들은 중세 고딕예술을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존하는 고딕예술 양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대의 교회건축은 시대를 초월하여 기독교 신앙인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웅장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이다. 2019년 4월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현재 재건 중인 이 건물은 1163년에 시작되어 2세기에 걸친 건설 후 1345년에 완성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특징 중 하나는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 glass)이다. 빛의 방향과 세기 등을 고려하여 제작되어 아름다운 채색 효과를 보임으로 신비와 경건미를 높이려했다. 또한 수직선이 강조된 첨탑도 고딕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영적으로 쇠퇴하던 시기에 멀리 떠난 존재하는 것 같았던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정신이 담겨져 있다. 그 열망이 신비주의적 태도와 초월 세계로 나아가려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고딕 건축은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였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교회 건물은 물론 수도원과 성, 마을 회관 심지어 주택도 이 양식을 사용하였다.
르네상스 예술-시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이 무슨 이유에서 고딕예술을 야만적이라고 조롱하며 비하하였을까? 자신들의 회화, 조각, 그리고 건축에 담긴 예술성과 그 가치가 월등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려 하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르네상스시대의 정신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르네상스정신이란 인간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능동적 자세였다. 그들에게 예술은 인간의 기술을 표출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이 기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붓의 터치나 돌을 깨뜨리고 쪼는 능숙함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고딕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르네상스 예술가는 그의 마음과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예술은 봉건적 신학에 바탕을 둔 중세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중시하였다. 고딕예술의 특징을 수직구조라고 한다면, 르네상스는 수평구조를 중시하였다. 수직구조라 함은 중세교회가 강조한 초월적 하나님과 그를 통한 내세에 대한 소망을 그 안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 특징은 고딕미술, 특히 성화 또는 모자이크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다른 점이 어떤 것일까?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거룩하고 권위에 찬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영원성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평구조를 중시한 르네상스예술은 무엇을 강조하였을까? 르네상스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오또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그림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산실이었던 플로렌스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고딕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시기에 활동하였다.
르네상스 예술-특징
지오또가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그의 기법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비탄(Lamentation)’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십자가에서 죽음 당한 그리스도가 마리아가 품에 안겨 있고 그 주위에 여인들과 사도들, 그리고 천사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는 눈을 감은 주검의 모습으로 하늘로 향하고 있다. 여인들이 그의 양손과 발을 붙잡고 있다. 고딕시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하늘이 아닌 이 세상에 속한 자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뒤쪽 배경도 한 몫을 한다. 파란 하늘에는 천사들이 땅을 향해 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산과 언덕 그리고 커다란 나무 하나를 그려 넣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가 강조되었다. 르네상스예술은 현재의 세계를 중시하던 고대로마와 그리스사회의 특징을 재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림에서 색다른 르네상스예술의 특징을 몇 가지 추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독특한 얼굴표정을 짓고 있다. 성경에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도 예술가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감정을 대신 묘사하려 한 것이다. 심지어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얼굴표정도 예사롭지 않다.
등장인물의 각도 역시 달라졌다. 고딕예술은 주로 얼굴을 정면으로 보였는데, 지오또는 좌측 또는 우측을 보이게 하거나 아예 얼굴을 가린 채 등만 보이도록 하였다. 서서히 사람의 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딕예술에는 그리스도 또는 마리아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키워 전체를 장악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면, 이제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사물에 대한 허구적 표현 대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르네상스 예술-명작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건축 모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예술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부를 누렸던 여러 개인과 가족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플로렌스에서 부와 정치적 세력을 누렸던 메디치 가문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지오또는 자신이 심취하였던 성 프란체스코를 주제로 28개의 프레스코(Fresco)화법의 그림을 남겼다. 참고로, 프레스코 미술이란 젖은 회반죽에 그림물감으로 채색하여 벽화를 그리는 화법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a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Adecula Sistine)에 그린 천장벽화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에 걸쳐 4년 동안 온갖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천장 밑에 받침대를 세워놓고 프레스코 화법을 사용하여 그린 그의 야심작이다.
성경의 전체 흐름을 염두에 두고 9가지 내용이 묘사되었다. 그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하나님의 손끝과 아담의 손끝이 맞닿는 것으로 유명한 ‘아담의 창조’이다. 이 작품에서 어떤 르네상스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직 중세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사상이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켈란젤로 개인의 관심사가 유감없이 표현되었다.
먼저 하나님을 긴 수염을 지닌 할아버지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하였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인에게 하나님은 초월적 영역에 있는 신비한 존재가 아니었다. 봉건적 신학에 바탕을 둔 중세사회로부터 커다란 관점의 전환이 생겨난 것이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온 몸을 보이며 왼손을 내밀고 있는 아담의 모습에서도 르네상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가 유명한 조각작품 ‘다윗(David)’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간적인 면을 접목시킨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와 조각가들은 정교한 인체를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르네상스예술인 가운데 해부학에 가장 큰 관심을 지녔던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이다. 그는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의대교수와 함께 해부학을 연구하며 700점의 섬세한 인체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미켈란젤로 역시 해부학을 연구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직접 보고 발견한 것을 시스티나 성당의 그린 천장벽화에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쇠퇴
르네상스예술은 중세 말기의 고딕예술을 비하하며 등장하여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과 원근법 등을 사용하여 자연스레 대상을 드러내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이것 자체가 르네상스시대의 정신이었다. 르네상스인은 무엇인가 주어진 것을 타파하고 무엇인가를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덕으로 삼았다. 예술 활동이 사회적 지위와 맞물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와 같이 건축물 한 곳에 고정되었던 예술작품이 템페라화법을 통해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템페라화법은 계란 노른자와 아교를 섞어 만든 안료를 나무판자에 칠하여 그림을 그리는 화법이다. 쉽게 휴대할 수 있고 개인 소장을 위해 매매도 가능할 뿐 아니라 예술 활동에 드는 비용도 절감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술가의 기교가 강조되었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작품에 주입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1520년대에 매너리즘(Nammerism)이 등장했다. 르네상스의 독특한 형식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예술가의 인위성 강조는 르네상스예술이 지녔던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형태였다. 각 예술가들의 자아의식을 표현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더욱 인간중심의 사고로 다가가는 발판이 되었다. ‘인간중심’의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와 교회가 씨름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고 견고하다.
covenantcho@yahoo.com
09/28/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