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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 1000년 - 어둠에 잠긴 구속역사의 현장 (40)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교회의 권위

 

중세교회는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오랜 세월동안 신앙의 영역은 물론 세속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교황이 있었다. 그들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회의 유일한 수장임으로 교회 안과 밖에 관계된 권한이 모두 교황에서 속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현재에도 로마가톨릭교회에서의 교황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중세 사회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세교회와 교황의 위치가 항상 견고하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Bonafacius, VIII 1236-1303)가 ‘거룩한 하나의 교회(Unam sanctam)'라는 칙서를 발표하였다. 교황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있다는 근거를 확인하는 내용을 담았다. 초대교회의 핍박을 종식하고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 실베스테르(Sylvester I, 314-335)에게 건네주었다고 알려진 ’콘스탄틴의 기진장(Donatio Constantini)'에 기초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속에 대한 교황의 우위를 증명하는 이 문서가 위조였다는 것이 15세기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 (Lorenzo Valla, 1407-1457)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동원하여 교황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교황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보니카키우스는 많은 도시와 제후들이 교황의 통치권에 반발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활동하던 인물이다. 그는 누가복음 22장에 나오는 두 개의 검에 대한 논의를 펼치면서 교황의 황제 및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한다. 현세의 검은 교회를 위하여 행사되며 영적인 검은 교회에 의해서 행사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세운 질서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곧 권한을 부여한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미 교회는 타락과 부패로 인하여 안과 밖으로 외면당하고 있었고, 교황과 세속 권력 사이의 무력 충돌까지 생겨나던 상황이었기에 하나의 칙령을 통하여 교황의 권위를 회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도리어 ‘거룩한 하나의 교회’ 칙령은 중세교회와 교황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자들에게 또 다른 비난거리가 되었다. 

 

교회의 타락 

 

‘신곡’으로 널리 알려진 단테 아리기에리(Danta Alighieri, 1265-1321)는 피렌체 출신의 유명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그 역시 교황권의 우위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는 ‘제정론’을 작성하여 교황의 논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는 오류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이 글에서 단테는 황제권과 교황권의 목적이 다른 것을 강조하였다. 교황은 영적인 일을 담당해야 하고, 황제는 현세적 삶의 행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테는 교회가 무력해진 이유가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교회의 타락이다. 교회가 타락하여 무력해진 것이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본 것이다.  

단테가 중세교회와 교황권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걸쳐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특히 철학과 정치, 그리고 역사에 능통하였다. 무엇보다 당파싸움이 심했던 피렌체에서 요직을 맡았던 정치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삶과 사상은 그 당시 이탈리아와 피렌체가 처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즉, 황제와 교황의 대립이 지속된 것이다. 나아가서 프랑스가 개입하여 더욱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1077년에 ‘카놋사의 굴욕’으로 교황의 권력이 확인된 뒤에도, 이탈리아에서 황제와 교황의 대립이 지속되었다. 

단테가 활동했던 피렌체의 경우 갈등과 대립의 양상이 더욱 뚜렷했다. 전통 귀족은 교황을, 상공업의 발달로 새롭게 형성된 시민층은 황제를 각각 의지한 것이다. 결국 황제파와 교황파가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1260년에 황제파가 승리하였지만, 1266년에 교황파가 다시 권력을 잡은 뒤 그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단테가 도시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고 방랑의 삶을 시작해야 했다. 

 

단테의 '신곡‘

 

단테는 1321년에 ‘신곡(La Divina Commedia)’을 발표했다. 널리 알려진 서양 고전의 정수이다. 그는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이라는 삼계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11음절 3연체 정형시로, 각 부분은 33곡으로 하고 서곡까지 총 10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한 자였지만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추방 후 가장 우울하고 고난 중에 집필한 것으로, 그가 의도하던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곡’에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 중 주인공은 바로 단테 자신이었다. 서두에 그가 설명한대로 그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신곡에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단테에게 중요한 2명이 있었다. 한 명은 로마의 건국신화를 쓴 베르길리우스, 다른 한명은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에 있는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아 길을 잃은 단테를 도와 지옥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단테가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 귀족 출신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10살 소년시절이었다. 그 후로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그 후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그런데 어느 날 베아트리체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 사건을 이후 그녀는 단테의 정신적 애인으로 끝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단테는 방황하는 자신에게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천국으로 초대한다는 커다란 구도 가운데, 살아있는 몸이지만 지옥과 연옥을 지나게 된다. 지옥은 모두 9개의 원으로 구성되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도로 되어 있다. 

1원은 림보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벌을 받고 있지도 않는 상태이다. 2원부터 7원까지는, 음란한 죄, 탐식의 죄, 재물과 관련된 죄, 분노의 죄, 영혼 불명 부정의 죄, 폭력의 죄를 지은 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8원에는 포주들, 아첨꾼들, 부패한 성직자들, 점쟁이들, 부정한 고위직들, 위선자들, 도둑들, 사기꾼들, 이간질하는 자들, 위폐범들이 형벌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 9원에는 가롯 유다 등 각종 배신자들이 형벌을 받고 있었으며 거기에 악마의 대장이 마귀가 있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지구의 반대편으로 나오면서 지옥편이 마무리된다. 

이제 두 사람은 연옥의 입구에 도착해 출입허가를 받았다. 연옥은 로마가톨릭의 교리로서, 천국에 갈 가능성이 없는 영혼들과 달리, 자신의 죄를 씻고 나면 천국에 갈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 여기에 있다. 고통을 받는 점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해결 장치로 소개된다. 이곳에서 교만, 질투, 분노, 타내, 인색, 탐욕, 애욕의 타락 등 7가지 죄악을 정화하는 것이다.   

결국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천국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10겹의 하늘로 묘사한다. 천국은 하나이다. 등급이 없다는 것이다. 1장소 월천에는 순결한 삶을 추구하던 영혼들, 2장소 수성천에는 큰 일을 했던 영혼들, 3장소 금성천에는 사랑으로 이름난 영혼들, 4장소 태양천에는 신학과 철학부분에 명성을 떨친 영혼들, 6장소 목성천에는 영혼들이 거대한 독수리 형상으로 뭉치고, 7장소 토성천에는 마음을 정결한 삶을 살았던 영혼들, 8장소 항성천에는 마리아와 사도의 영혼을 만나고, 신앙과 희망 그리소 사랑에 대해 질문을 통과하여 9장소인 원동천을 걸쳐, 결국 최고 높은 10장소인 정화천에 올라가게 된다. 거기서 천사들과 구원받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인 모습을 바라본다. 

 

큰 변화의 시작 

 

단테가 ‘신곡’을 통해 어떤 사상을 드러내려 하였을까? 지상의 삶을 통과하여 저편세계로 향하고 있다는 인식이 지닌 가치가 무엇이었을까? 

단테는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지옥 여행을 하면서 고향 피렌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죄목으로 형벌을 받고 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아픔을 직시하고 있었다. 당대와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교황청을 비판하는 내용이 지옥편 19곡에 잘 설명되어 있다. “당신은 금과 은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니, 우상숭배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들이 하나를 섬겼다면 당신들은 백을 섬겼으니!” 또한 부와 권력으로 타락한 교황의 모습이 연옥 32곡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세상은 결국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단테는 이 세상을 통과할 때 천국에 이른다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이것이 참된 소망이다. 단지 세상은 물론 심지어 교회가 소망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임무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단테가 지옥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신적 정의가 반드시 실현될 임을 시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테는 기독교적 사고를 지닌 자였지만, 구원을 위해 희랍의 세계관을 통합하여 보편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려하였다. 이것이 ‘신곡’의 치명적인 오류이다. 그는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인간의 양심과 자유의지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이 구원을 선사하다는 것이다. 이 사랑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다. 그는 사랑의 도덕적 특징을 부각시키며, 인간이 가진 사랑의 감정이 만민을 구원하는 도구임을 알려준다. 이 사랑은 율법과 인간의 격정을 초월하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자는 이미 구원받은 자답게 천국을 사는 듯한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교회를 마감과 새로운 휴머니즘의 시작을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복음을 중심한 기독교적 신앙에서 빠져나와,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중심으로 삶의 척도를 삼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나아가서 희랍 철학자들처럼 복음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않은 자도 삶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다원주의의 길을 활짝 열었다. 그러므로 말기 중세교회의 타락과 16세기 종교개혁 사이에 일어난 일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교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covenantcho@yahoo.com

 

07.2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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