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미국으로 오는 한인 이민자가 현격히 줄긴 했지만, 그 일반적인 그림은 늘 이랬다. 이민 가방을 밀고 끌며 미국의 각 공항에 내린 한인 이민자들. 기회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미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은 곧 맞닥뜨린 현실 앞에 이민자들은 흔들거린다. 언어, 제도, 재정, 문화, 신분 등 모두가 낮선 상황에서 앞으로 헤쳐나갈 일의 갑갑함을 누구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다. ‘한국에서는 그런대로 잘 나갔었는데’라고 넋두리 겸 말을 꺼내보아도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듯이 퉁명한 분위기 속에서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그들 대부분의 주머니에 간직해 놓은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교회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이다. 이민 생활에서 의지할 곳이란 교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이민 오기 전부터 귀 아프게 들었기 때문이다. 힘겨워하는 이민자들을 흔쾌히 맞아주는 것이 이민 교회 목회자요 사모님이다. 아이들 학교부터 시작해서 집, 차, 직장 등을 구하는 일에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다. 이민자들에게는 그런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종적 편견을 비롯하여 삶의 현장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기에 위로도 필요하고 절망에서 일으켜 줄 소망의 메시지도 갈망한다. 이민 교회 목회자들은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갈망을 채워준다.
이민 교회 목회자는 매우 독특하다. 누구나 지금 있는 자리에서 뼈를 묻어야 할 동기(動機)는 선명하지 않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전히 낯선 그 자리에 굳게 서 있게 할 뿐이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자녀들은 아빠 엄마는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고, 사모는 아픔과 상처에 쓰러지고, 자신도 심히 괴롭고 힘들어도 어디에 말할 곳도 없고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이민 교회 목회자. 다른 이민자들처럼 마음먹는다고 쉽게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토록 사모하는 하늘 본향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고, 겉은 화려하지만, 영적으로는 황폐한 미국 땅을 마지막 호흡 때까지 지킬 소명의 자리로 삼아 오늘도 살아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삼중(三重) 국적자(國籍者).
이민 교회 목회자들이 일구어낸 선교 지경(地境)의 넓이와 깊이는 보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다양화 세상에 한국 이민 교회 목회자만큼 최적화된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다. 타협할 수 없는 복음, 하늘에 이르는 기도, 세계 공용어인 영어, 그리고 창의적인 한국의 문화를 가지고 미국은 물론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에 이민 교회 목회자들은 첨병(尖兵)의 역할을 귀하게 하였고 또 더 멋지게 할 것이다.
이민 교회 목회자는 자기가 섬기는 회중을 부단히 흔들어 깨우고, 각기 속한 교단에서 그 교단에 주어진 비전을 향해 힘써 달려가고 있다. 그 대부분의 달음박질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 나라의 논리를 추구하는 교단이나 지도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각 교단의 여러 모임이나 총회를 통해 지도자들은 교회와 교단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을 다시 확인한다. 필자가 속한 교단도 다음 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총회로 모인다. 우리를 미국 땅에 심어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지난 시간 들을 돌아보는 가슴 저민 시간, 새로운 결단을 도모하는 가슴 뛰는 시간이 될 것이다.
05.1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