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낙타는 대단하다. 길도 보이지 않는 뜨거운 사막 길을 묵묵히 걷는다. 사막의 모래 폭풍이 몰려오거나 태양이 작열할 때도 얼굴을 돌리거나 몸을 수그리지 않는다. 언제나 앞을 응시하며 거침없이 걷는다. 무릎을 꿇을 때가 있는데 자신의 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짐을 싣고 내릴 때 주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섬김의 이유가 더 강하다. 낙타는 주인이 지어주는 어떤 짐도 마다하지 않다보니 언제나 그 등에 많은 짐을 지고 걷는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짐을 진 등이 굽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아플까. 무심코 보았을 때에는 낙타가 참 못나 보였는데 그 숭고한 자세를 생각하니 이처럼 아름답게 생긴 짐승이 어디 있겠나 싶은 것이다.
등이 굽은 어른들을 뵐 때 은근히 속상했다. 왜 등이 저렇게 되도록 놔두셨는지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이제야 어른들의 등이 굽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윤도 작가가 쓴 ‘어머니’라는 시를 읽고 나서이다.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老母)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山) 하나 들고 있다” 시인(詩人)은 시인(是認)했다. 어머니의 굽어진 등에는 세월의 무게뿐 아니라 자신의 몫이 있었다고. 그렇다. 어른들의 굽어진 등은 세월만이 만든 것도 아니요 어른들의 관리가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자녀들의 역할(?)이 컸다. 자녀들이 태어날 때부터 시집 장가 간 후에도 얹어 놓은 짐들이 부모님들의 등을 굽게 만든 것이다. 자녀들을 위해 참고 견딘 흔적이 그 굽은 등에 있었던 것이다. 자녀들의 짐을 지고 광야 같은 세상을 거침없이 헤쳐 나가신 부모님들, 그러고 보니 그들의 굽은 등은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내일은 어버이 주일이다. 그리고 Mother’s Day이다. 그들이 없이 어찌 오늘의 우리가 있겠는가. 자녀들은 그들의 사랑을 잘 헤아려드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집안 곳곳에 자녀나 손자손녀들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을 정도여도 부모님의 사진은 아예 없거나 찾기 힘든 구석에 놓여 있곤 한다. 한 미군 병사가 군함 갑판에서 웃옷을 벗었다가 그만 옷을 바다에 떨어뜨렸다. 그 병사는 바다로 뛰어내려 그 옷을 건졌고 자신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배에 올라오게 되었다. 군대에서 상관의 허락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하다니 그 벌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그 행동의 이유만큼은 지탄이 아니라 감동을 자아냈다. 그 옷에 홀어머니의 사진이 있어서 그것을 급히 건지려 했다는 것이 군법회의에서 그의 답변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이 땅에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화사한 오월에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살아계실 때 제대로 효도를 못한 회한(悔恨)까지 담은 그리움에 사무치는 이들도 많이 있으리라. 필자는 특히 그렇다. 물론 어려움 가운데도 효성스런 목회자가 대부분이시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에는 목회 길을 가는 것이 무슨 효도의 면죄부나 되는 것처럼 등이 굽어지실 정도로 평생 희생해 오신 부모님께 봉양(奉養) 대신 계속 기대기만 했으니 그렇다. 누군가 불렀던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가 필자에겐 크게 울림이 된다. 모든 것에 때가 있는 것처럼 효도에도 그 때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는 좋아하시던 것을 사드릴 돈이 없었고, 지금은 사드릴 수 있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05.1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