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경에서 빗나간 청교도 시대 개관과 현재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사람들이 신약의 가르침의 통제를 받는 것을 멈추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중세에 카톨릭교회라고 하는 가공스러운 폭군이 생겨났다. 로마교회가 안전하게 자기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면 여전히 지금도 그 일을 행하고 있다. 만일 교회와 국가의 연합에 관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그런 권세를 준다면, 결과는 또 중세 로마카톨릭과 같은 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청교도가 시작되는 영국의 역사가 그렇다. 헨리 8세는 진정한 프로테스탄트가 되지 못하고 결국 로마가톨릭 교도로 있다가 죽었다. 그가 시도했던 변화는 자신을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최고 통치자로 세우려는 것이었다. 크래머(Crammer) 같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마저도 그 일에 협조하려고 하였다. 어느 시점에까지 헨리 8세의 통치의 좋은 점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는 존 후퍼 감독(Bishop John Hooper of Gloucester)같은 프로테스탄트들과 몇 사람들을 동시에 핍박했다.
에드워즈 6세의 통치 기간 중에는 훨씬 더 나아졌다. 이 국가교회의 원리를 채용했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그것이 놀랍다고 생각했으며, 그 모든 것이 제 길을 잘 찾아서 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불행한 일은 에드워드 6세가 매우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카톨릭 교도였던 메리 여왕(Queen Mary)이 등극하게 되었고, 그녀는 프로테스탄트에게 등을 돌리면서 교회에 속한 일들을 주장할 최상의 권위를 가졌는데, 그녀는 그런 권리를 왕에게 넘긴 자들이 너희 자신들이라고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메리 여왕은 자신의 힘을 다해 헨리 8세가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의 묵인 하에 빼앗아 자신에게 돌렸던 바로 그 권세들을 거머쥐려 하였다. 그래서 그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무서운 핍박과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크래머나 다른 지도자들은 그 특별한 요점에 있어서 메리 여왕을 대항하는 어떤 논증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그 오류는 결코 고쳐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가 등극할 때만 해도 이 논점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그 엘리자베스 1세를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들은 존중을 받았지만 그들이 패퇴 당하였고 그들 중 어떤 지도자들은 몹시 연약함을 드러내 보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신약이 그어준 분명한 구분선을 지켜야만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는 교회를 폭군적으로 강압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으며, 제임스 1세는 더 나아갔으며, 찰스 1세는 그보다 훨씬 더 악독하게 나아갔다. 그 일이 의회와 왕당파 사이의 전쟁을 통해 끝이 났고 찰스 1세가 참수 당하는 일로 결말을 맺었다.
역사는 실제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로마카톨릭주의 아래서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 아래서도 정확히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유교회(Free Church) 원리와 성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일 교회와 국가 사이를 구분하기가 힘들어지고 애매모호하게 된다면 반드시 복음과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되는 방향으로 결말이 항상 나오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은 복음의 순결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맺게 될 것이다.
자유교회 사람들도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혼란을 겪는 동일한 실수에 빠져들었다. 16세기의 비국교도들, 자유교회 사람들도 동일한 오류에 빠져 넘어졌다. 그들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원리는 정확히 똑같다.
예를 들어 제분소나 공장을 소유한 공장 소유자나 경영자들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집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공장에서 엿새 동안 하던 일을 교회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층은 기독교와 자본주의, 현상유지를 고집한 보수주의와 기독교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회가 우리를 못살게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왜냐하면 단순히 교회들이 신약의 순결성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세속적인 구분이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왕이나 재벌이나 백만장자나 경영자나 그 누구이든지 간에, 또 그가 어떤 권력을 쥐고 있든지 간에, 기독교회 영역 속에 그 사고방식과 입장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허락하는 순간에 복음 설교는 희석되게 된다. 교회사에서 자주 그것이 희석되어져서 때로는 교회가 보수적인 부호층을 옹호하고 지지해주고 강화시켜 주기위해 존재하며, 보통 사람들을 무시하고 특권층을 비호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일들에 섞이면 교회의 복음이 희석되고 복음 설교의 순결성이 손상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두 가지 것이 혼합되면 반드시 외식을 산출하기 마련이다. 어떤 지역이나 교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게 되면 외식자들을 내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수세기에 걸쳐 저주거리로 존재하였다. 교회와 순결성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어떤 특별한 특권층 부모나 그 자녀이거나 세상에서 차지하는 지위 때문에 그 사람을 교회로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면 외식자들 외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로마카톨릭주의에서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안에도 남아있다. 사람들은 한 전문직의 멤버나 지방의 지주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어떤 탁월한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제 현대에 국가 교회라는 개념이 많은 나라에서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교단들과 교파들이 아주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파가 둘 이상이 생기면 국가 교회는 자동적으로 해체된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교단에 속하게 되면 그것이 잘못된다 할지라도 피상적으로는 하나의 국가 교회의 정당성을 지원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여러 분파가 생기게 되고 여러 교단과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면 국가 교회는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은 견뎌내지 못하고 해체된다. 왜 이 교단이 아니라 저 교단이 국가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선배들이 이 문제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복종하지 못하고, 대신에 그 이전의 선배로부터 물려받았던 어떤 전통을 이행하는 일을 해왔던 결과로 우리가 이런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성경적 가르침을 지키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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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