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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 (71)

교회와 국가
이윤석 목사

라)모반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대통령을 ‘나랏님’이라고 부른다. 그런 개념은 무지와 맹목적에서 나온 단어이다. 분명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장할 권리가 있다. 국가나 왕이나 황제나 총독이나 어떤 독재자나 다른 어느 누구라도 폭군적이 되면 그들은 그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3장 2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그것은 명시된 헌법을 파기하고 있는 것이다. 

악을 제지하고 선을 장려하는 것이 국가나 정부의 임무이다. 국가 존재 이유와 그 기능은 고요하고 평온하고 질서 있는 삶을 유지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그처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정하여 준 것으로 상전 노릇을 하지 말고 종이 되어야 한다. 국가가 상전이 되고 폭군이 되는 순간 국가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국가 자체가 벌을 받아야 한다. 

그 형벌의 형태는 정부가 전복되고, 예비 된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혁명이나, 독재자를 쫓아내는 모반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3:1-7의 교훈에 따라 존재하는 예비 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보편적인 원리들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회생활, 경제생활, 정치생활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영적이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중립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으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국가와 그리스도인의 관계의 다른 관점들

 

1)전통적 관점

전통적인 관점은 항상 현상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 관점은 기독교 신앙이 언제나 특권자들 편에 있다고 믿어왔다. 이것은 주후 325년 로마황제 콘스탄틴이 로마제국을 기독교회 속으로 끌어 들이려 결심했던 것으로 그 이후 교회는 왕들과 황제들과 군왕들의 친구가 되어왔고 백작과 공작과 귀족들의 친구였다. 그 결과 귀족정치(Aristocracy)의 경향을 가져왔다. 지금도 영국이나 미국의 많은 훌륭한 기독교인들 중에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흑인들은 종이 되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관점이다. 그 이유는 흑인들은 함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명기 20장 11절을 근거로 함의 후손들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남북전쟁 때 남군들은 이것을 위해서 싸운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가 따랐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흑인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1960년대까지도 그런 생각이 많았다. 심지어 19세기에 알렉산더(C, F. Alexander)가 쓴 찬송시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부자는 성안에 있고 가난한 사람은 그 부자의 문 앞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높고 낮은 사람을 만드사 그들의 신분을 정해주셨네“ 그는 사람의 지배층의 구조까지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는 것을 믿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잘못된 해석이 끼치는 폐해가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정부이며, 위에 있는 권세이고, 또한 권세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형태의 정부를 지정하거나 세우지는 않으셨다.

 

국가가 폭군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 불순종하는 것 법과 질서로 통제 필요성 알아...양심으로 법 지켜야

 

2)전통적 관점과 반대되는 극단적인 사상

가)무정부 상태

전통적인 관점과 다른 극단은 무정부적인 생각, 곧 제멋대로 날뛰는 식의 민주주의 사상이다. 영국의 시민전쟁(1642-46, 48-52년 사이 잉글랜드의 찰스 1세와 의회와 분쟁으로 일어난 전쟁) 시에 청교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그 군대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제 5왕조 사람들(Fifth Monarchy Men)이라 일컫는 사람들은 자유를 획득하여 일종의 무정부상태를 옹호하고 다녔다. 

물론 그들은 잘못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국가에 복종해야 하고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선하고 화평을 쫓는 시민이어야 하며 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시민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더 좋은 특혜를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한 사실이 전부다. 

나)하나님의 진노와 양심에 따른 그리스도인

로마서 13장 5절은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법을 지키는 중요한 동기가 형벌의 위협 때문이기에, 그들은 많은 경우에 형벌을 받기 이전 선까지 가까이 간다. 예외는 있지만 그들은 “진노를 인하여”, 곧 진노가 두려워서, 그 두려움 때문에 굴복하며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진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진정한 필요성을 아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만이 죄가 진실로 무엇인지 알고 죄가 각 사람 삶 속에서 어떤 세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 죄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단적인 한계와 범위를 안다.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그 표증들과 결과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다른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항상 법과 질서 편에 있어야 한다. 

인본주의자(humanist)들은 인간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죄를 통제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강력한 법들이 생기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법과 질서로 분명하게 통제할 필요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생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런 조건들을 마련하고 계심을 안다. 만일에 지나친 자유와 민주적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갑자기 모든 법을 폐지해 버리고 경찰력과 법과 질서를 지키려는 의도를 약화시킨다면 국가가 어떻게 되겠는가? 

예를 들어 우리는 당장 공항 검색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 이런 것들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작은 제한들이 없다면 누가 비행기를 타겠는가? 그러므로 국가가 합법적으로 법과 통제를 이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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