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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변명혜 박사 (ITS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올해 첫 두 달은 옛 친구들과 예상하지 않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일월에는 대학교 친구 두 명이 한국에서 방문했다. 이제 은퇴도 했으니 놀러 오라는 내 말에 친구들이 먼 걸음을 했다. 공항 픽업부터 떠나는 날까지 열흘 넘게 풀 서비스를 하느라 몸은 조금 고단했으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함께 지내다 보니 친구들의 옛모습이 그대로 나와서 풋풋했던 대학 시절로 마음이 돌아갔다. 그 중 한 친구는 대학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다. 한국에 갈 때 자주 만났기 때문에 친구의 삶을 대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같이 지내며 들려준 친구의 지나간 삶은 생각보다 더 어려움이 컸었다. 그 아픔을 잘 이겨낸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다른 한 친구는 세례를 받은 불교 신자다. 토요일 밤에 “나는 내일 교회 가는데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에 선뜻 같이 가겠다고 했다. 목사님의 인사에 계속 합장으로 답례를 해서 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믿음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말보다 삶이 더 주님을 드러낼 것이라는 부담도 있었다. 두 친구 다 남편이 없어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환경이지만 언제 또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잘 해주고 싶었다. 친구들이 한국으로 떠나면서 남긴 “환대와 배려가 고마웠다”는 글이 감사와 기쁨으로 남았다. 

 

이월에는 고등학교 친구 둘과 일주일을 보냈다. 포틀랜드에 사는 친구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서였다. 남편이 떠나면 마음이 힘들 것 같다고 장례식 때 와서 좀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다른 한 친구는 장례식 참석 차 한국에서부터 왔다. 며칠 간 비가 오락가락하는 포틀랜드의 날씨는 친구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렸지만, 아침마다 걷는 습관대로 친구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싸늘한 아침 공기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동네를 걷자니 집집마다 수선화, 붓꽃, 튤립 등 구근류 꽃들이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파랗게 돋아난 잎들이 꽃망울을 매달은 채 다가오는 봄을 알리고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생각하게 하는 이름 모를 작은 풀 꽃들, 마치 투명한 유리 꽃처럼 반짝이는 빗방울을 가지 끝에 달고 있는 작은 나무들도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것이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 지역 바닷가에서 모텔을 경영하는 친구의 지인이 하루 와서 쉬고 가라고 우리를 초청했다. 슬픔을 나누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깜짝 선물이었다. 숙소 앞에 한 없이 펼쳐진 밤바다를 보고 있는데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샌드파이퍼라는 이름의 작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해변을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종종걸음을 걷듯이 포르르 포르르 원을 그리며 너무 귀여운 군무를 보여주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조용히 방을 나서서 바다로 나갔다. 아침에 걷는 바다는 어제 밤 바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 밀려오는 파도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과 모래 위에 새긴 글들을 다 지운 채 떠오르는 해와 함께 새 날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소중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서로의 모자람은 채워주고 싶고 서로의 다름도 곱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일 것이다. 어두운 밤 바닷가에서 군무를 연출한 샌드파이퍼처럼 우리도 그렇게 때로는 종종걸음을 치며 때로는 날아오르며 기쁨과 고난이 섞인 삶을 혼자가 아닌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또한 밀려오는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 가듯이 우리의 아픔과 상처, 후회와 자책도 씻어 주시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본다. 친구들의 삶에 찾아 온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밝은 봄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linda.pyun@itsla.edu

 

03.0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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