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통로 끝이 흔들리고 있다. ‘성도 최진실’ 이름이 흔들리다가 손바닥 보다 작은 바람에 밀려 촘촘히 사라졌다.
2008년 10월 2일 서초구 잠원동 자택 욕실에서 최진실 배우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 다음 해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주름진 기억을 타고 가수 휘성(43. 본명 최휘성)이 2025년 3월 10일 자택에서 숨소리가 사라졌다. 2023년 12월 27일, 영화 ‘기생충(2019)’에서 주연으로 열연했던 이선균(48세)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4년 11월 12일, 송재림(39세) 배우가 세상과 스스로 이별을 선택했다. 2025년 2월 16일, 영화 ‘아저씨’에서 아역으로 출연했던 김새론(25세) 젊은 배우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영원히 떠났다. 죽음에 대한 학습효과가 쓰나미로 몰려 오고 있다.
신앙의 길을 가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연예인들도 있다. 영화배우 이은주(2005년), 가수 유니(2007년), 탤런트 정다빈(2007년), 탤런트 안재환(2008년)이다. 목회자의 경우도 자살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밖으로 신앙인과 목회자의 자살이 드러나지 않을 뿐,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성경에도 자살한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사울 왕 (삼상 31:4-5)은 전쟁에서 패한 후 자결했으며, 아히도벨(삼하 17:23)은 압살롬의 반란을 도운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시므리(왕상 16:18)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한 후 궁전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유다(마 27:5)는 예수님을 배신한 후 목숨을 끊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한국교회 트렌드 2025' 조사 결과, 개신교인 1천 명에게 “지난 2주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응답자의 11%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울한 기분으로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한 응답자는 23%였다. 4명 가운데 1명은 자신의 정신 건강이 스스로 걱정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32.4%는 “교인 가운데 자신의 질환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교회가 해야 할 우선 순위가 돌출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로 2019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6명으로,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불행한 자화상 그림이다.
자살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다. 사방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 널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통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자살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스트레스, 유형무형의 압박, 대인관계문제, 경제적 어려움, 트라우마, 신체적 질병, 약물 알콜 중독,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문제(우울증, 불안장애), 자살할 이유가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다양성과 함께 덧붙여지고 있다.
자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단칼에 정의를 내린다.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결론으로 냉정하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출 20:13, 욥 1:21, 고전 6:19-20). 이와 같은 결론의 당위성은 역설적으로 구원에 대한 결론을 인간이 내리는 우를 범한다. 구원의 조건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자살의 이유와 원인으로 규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자살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보다 묘사를 다루고 있다. 죽음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성경 곳곳에 거미줄처럼 득하다(렘 29:11, 시 34;18, 마 11;28). 풍성하기에 우리 시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사망, 음침, 골짜기, 죽음과 바꿀 수 있는 단어의 나열이다. 돌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점이다. ‘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산산히 부서지고 찢겨 먼지처럼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래도(해가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극복하는 노력이 아니다. 인간이 노력하면 할수록 절망의 방법에 도달한다. 그 절망은 곧 죽음의 길이다. 그렇다면 이왕 생명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에게 걸어야 한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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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