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교회 공간에 놓인 긴장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이해하자

교회 개척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이었습니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 형성과 신앙 실천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 공간과 공동체는 때로 대립적인 요소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공간을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로 강조하고, 어떤 이들은 공동체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공간과 공동체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요소들입니다.

 

첫 예배 공간: 강요된 선택, 그러나 공동체를 믿음으로

 

우리 교회의 첫 예배 공간은 나주혁신도시 ○○아파트 704호였습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강요된 선택이었습니다. 재정이 충분했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고전 3:16, 엡 2:19-22).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집에 모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태권도 도장을 토요일과 주일에만 빌려서 모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요 4:24) 하시며, 특정한 공간이 아닌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셨으니까요. 주중 모임은 집에서 진행했습니다. 초대교회도 성전이 아니라 가정에 모이며(행 2:46) 공동체 중심의 신앙을 실천했으니까요. 이 모든 걸음을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이라는 믿음으로 걸었습니다.

 

공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

 

공동체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운다 해도, 공간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집에서 모일 때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가치를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설교자를 볼 때 예배당 안에 있는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고, 옆을 볼 때는 집 안에 있는 아늑함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공동체 중심’이라는 본질을 담아내는 장점이 있었고, 그것을 최대한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태권도장에서 첫 모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비좁은 집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마치 갇혀 있던 새가 풀려난 듯 자유롭게 뛰어다녔습니다. 급하게 바닥에 깔 큐브장판을 구입하고 책상과 의자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도장 입구부터 내부를 가릴 플래카드를 제작했습니다. 지난주 등록한 성도들이 토요일 저녁에 함께 공간을 세팅하고, 주일 예배 후에도 함께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마치 광야에서 장막을 세웠다 철거하던 이스라엘 백성 같았습니다. 놀랍게도 공간을 꾸미는 것을 통해 빠르게 소속감을 느끼면서 공동체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으로 치우친 역사

 

교회는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지만, 사람들이 형성되는 데에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관계를 위해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공간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본질을 담아내는 공간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좌로나 우로나 기우는 우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공간으로 치우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신앙의 본질이 왜곡될 위험이 있습니다. 공간이 주는 성스러움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렘 7:7). 공간 중심의 신앙은 특정한 장소와 형식이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의 개방성을 제한하고, 복음의 확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요 4:20-24, 행 7:48-50). 신앙이 특정 공간에 종속되면, 신자는 그 공간 밖에서 불구가 되어 버립니다. 공간이 선교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 선교의 역동성은 약해집니다.

 

공동체로 치우치는 경향

 

공간으로 치우친 경험은 공간을 무시하는 공동체로 치우치는 경향을 만듭니다. ‘예배당 교회’에 대한 반감은 ‘예배당 없는 교회’를 추구하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이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합니다(렘 7:4-7). 예수님은 웅장한 성전 건물을 보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4:1-2). 이런 말씀을 생각할 때에 공간과 관련된 파괴적인 시도를 공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직면한 영적인 계절에 따라 우리는 기계적 중립이 아닌 급진적인 시도를 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지 건물이 아니다” 하면서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신앙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예배 공간이 신자들의 몸과 감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체험하고 내면화하는 장소로 기능할 수 있음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하다’ 고 말하면서도,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장소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경험한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

 

태권도장에서 모임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방문자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독특한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며 함께하는 지체들도 있었고, 한 번 방문하고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공간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켰습니다. 교회의 본질인 공동체에 대한 믿음으로 걸을 수 있는 과정 중에도 “만약에 더 좋은 환경이었다면 저 분이 함께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런 환경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매주 세팅을 하고 거두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한편 소속감을 만들어 냈으나,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해서 장마와 태풍의 시즌이 다가오면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옥상에 설치해 둔 텐트가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한 교우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온도차는 공간에 치우친 교회에 대한 반동의 정도가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모바일 텐트교회가 너무 좋았어요. 우리도 전통적인 교회처럼 고정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네요.”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동체 하나만 보고 교회에 등록한 이들의 성향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후 교회가 성장함으로 상가 한 층 전체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을 임대해 시간을 두고 절반씩 나누어 공사를 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공동체를 긴장 속에서 이해하기

 

공간과 공동체를 긴장으로 보지 않을 때에 오해와 갈등이 발생합니다. “본질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공간에 대한 이슈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면, 그 말은 누군가에게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공간에 대해서 말하면 비본질적인 것인가?’ 긴장을 놓치면 공간과 관련된 건강한 논의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한 쪽은 공동체를 위해 공간을 수단으로 대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공간이 목적이 되어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신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생각은 공동체보다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좀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이 실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회중의 경제적 형편을 살피지 않는 ‘사랑 없는 마음’으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긴장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과 공동체 사이에 놓인 긴장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간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공간보다 신앙의 본질 곧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공간에 갇히지 않는 복음의 역동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무시는 결국 신앙의 본질을 지킨다기보다, 결국 비효율적인 실용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 교회 운영에서 단기적인 실용성을 추구하게 되고, 신앙 공동체의 장기적인 정체성이 약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건축이나 공간 활용을 단순히 ‘비용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공동체의 장기적인 방향성과 철학이 부재한 상태로 교회 운영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긴장 속에서 걸어가는 교회

 

30대 후반에 교회를 개척해서 젊은 회중들이 주축인 교회를 이뤘습니다. 회중이 가진 교회 공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품고,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붙잡고 온 것입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패와 시간이 쌓여야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회중 모두 온전한 균형을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공간을 꾸밀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견해와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간 때문에 자칫 공동체가 깨질 수 있는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것조차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고백은 회중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서로가 필요한 공동체입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공간에 대한 집착과 무시를 피하며, 열린 대화를 통해 건강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목사로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과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교회 안팎에 퍼져 있는 문화적 편향이 확증 편향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나와 회중은 좌충우돌하며 공간이 본질은 아니지만, 공동체가 형성되는 중요한 도구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교회는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나, 육체를 가진 공동체이기에 현실적인 필요 곧 편안함, 개방성, 접근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공간은 공동체의 형태와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가 공동체라는 본질을 붙잡고 주어진 공간을 감사하며 누리면 좋겠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공간도 과감하게 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완벽한 균형을 맞추려 하지 말고, 흔들림 속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을 주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by 박용주, TGC

02.22.2025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