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선교로교회)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가장 싫어하셨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위선적인 태도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태도, 겉으로는 아주 의롭고 선한 척하면서도, 속은 완전히 썩어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늘 지적하시고 꾸짖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관습으로 볼 때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삭을 잘라 먹는 행위와 당시에 당연하게 여겼던 금식도 하지 않고 나병에 걸린 사람, 유출병에 걸린 사람들을 만지면 불결하고 부정한 사람이 됨을 알면서도 그 상처를 손수 만지셨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또 세리들과 죄인으로 취급되었던 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면서 교제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파격적인 행동을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통해 구약 시대와는 다르게 복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알리기 위함이고, 둘째는 당시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도리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적용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복음을 바르게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는지? 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종교지도자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몇 명이 예수님의 공동체를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를 방문한 그들의 눈에 제자 중 몇 사람이 음식을 먹는데 손을 씻지 않은 채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보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바람과 먼지가 많기에 고대로부터 식사하기 전에 꼭 손을 씻거나 목욕을 하는 것은 관례였습니다. 지금도 손으로 음식을 먹는 나라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은 위생상으로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으라는 것은 율법에 없었습니다. 율법에는 오직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가 제사 드리기 전에 손을 씻을 것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에스라의 율법운동의 결과로 해이해진 그들의 민족정신을 율법으로 공고히 하려고 이 제사장적 의식을 일반 백성들에게도 적용한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려면 음식을 먹기 전에 항상 손을 씻도록 권장한 것입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손 씻기 운동이었지만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정결한 사람인가 부정한 사람인가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된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온 종교지도자들은 제자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트집을 잡아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5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이 구약의 율법을 어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장로들이 전해준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이 말은 예수님을 화나게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가정을 포기했습니다. 어떤 이는 세상의 경력을 포기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많은 것을 희생하고 예수님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생활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종교지도자들이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라고 따지며 시비를 걸어온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따지는 자들을 향해 율법과 잘못된 관행을 예를 들며 비판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이사야 29장 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주전 8세기 이사야 선지자가 당대 유대 백성을 비판한 내용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적용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에게 이렇게 예언했다‘며 공격합니다. 예수님이 인용한 이사야 서에는 두 가지 위선적인 내용이 나오는데, 첫째로, 이 백성들이 마음은 하나님께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니 위선자이다. 둘째로, 이 백성들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가르치니 너희들이 위선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님에게 행할 도리를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율법에 이렇게 말씀했는데, 지금 너희들은 부모님을 봉양하기 싫어서 ‘고르반’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대답하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르반’이란 말은… 헬라어로 ‘바쳐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자기 재산을 하나님께 봉헌되었기 때문에 부모가 건드릴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 자기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도입니다. 분명 부모에게는 나쁜 일이지만,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나중에 헌금으로 돌아오니 유익하므로 자녀들이 잘못되었다고 꾸짖지 않으니 너희들이 위선자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는데 너희들이 전한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너희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제자들이 부정하다고 할 수 있느냐? 진짜 부정한 것은 마음이 더러운 너희들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로 보면 혁명적 선언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백성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요즘 말로 사이다 발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1-13절에 걸쳐서 정결법에 대한 논쟁을 하신 후, 14-23절에 걸쳐 참된 정결에 관한 비유와 해설을 하시는데, 당시 유대교에서 부정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외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부정은 손이나 옷에, 그릇에, 몸에 붙어 있는 무엇이며, 그것이 묻거나 접촉되면 부정이 전염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부정한 세계로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더러움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시자 제자들은 무리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18-23절에 걸쳐 말씀 하시는데 이 말씀에는 파격적인 내용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19절). 당시 이는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음식이 있고, 먹도록 허용하신 음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짐승 중에는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은 먹을 수 있고, 물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먹지 말라는 것을 먹는 사람은 부정하다고 취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지금도 이 음식에 대한 규례는 성도들에게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음식에 관한 규례들을 폐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며 하나도 더러운 것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시 너무 파격적이어서,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식만 남은 정결법을 배격하시고, 마음의 정결을 주장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21-23절에 걸쳐서 말씀하시는데 악한 생각으로 인해 나오는 악덕에 대한 목록을 12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사실 부정문제를 제기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손과 몸, 그리고 잔과 그릇은 깨끗하게 씻었는지 모르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은 썩어가는 시신과 뼈만 있는 회 칠한 무덤같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마지막 23절 말씀처럼,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23절).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손을 씻고 깨끗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딤후 2:20-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재질이 좋은 그릇이 아니고, 속이 깨끗한 그릇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바른 자세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율법주의의 잣대로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인과 종교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신앙인은 내면적인 믿음과 영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종교 생활을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참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진실한 믿음으로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는 믿음입니다. 외적인 의식이나 관습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고 말 뿐만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적용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 용서, 겸손, 정의 등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종교 단체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우선입니다. 날마다 기도와 묵상,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해야 하고… 신앙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위선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아니라, 겸손하고 이타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율법보다 은혜를 중시하여 끊임없는 신앙의 성장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종교인이 형식적 율법을 따르는 것에 머문다면,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중심에 두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늘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한 번 정해진 상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신앙을 늘 점검하고 더 깊은 믿음을 갖기 위해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신앙인은 단순한 종교적 습관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고, 사랑과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신앙인과 종교인에 대한 분별력을 갖고 참된 신앙인으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그래서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율법보다 은혜를 중시하여 끊임없는 자기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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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