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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윤리학(11)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축복(祝福)이 빌 축(祝)에 복 복(福)이 합쳐진 단어다. 다시 말해 복을 빈다는 의미가 된다. 문제는 이 단어를 하나님과 연관을 시키는 데 있다. 

오늘 차를 운전하면서 기독교 방송을 들었다. 목사님이 방송에 출연하여 상담인들에게 기도를 해주는 프로를 듣는데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단어가 반복되어 사용이 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시오.' 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라는 말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축복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단어를 누구에게 적용시키느냐는 분명 생각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언제나 성부 하나님이시다. 만약 성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면 기도의 끝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신이 최소한 기독교에는 없어야만 한다. 신 중의 신이 바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축복을 살펴보자. ‘하나님 우리를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어떤 존재에게 복을 빌어주십시오 하는 뜻이 된다. 축(祝)이 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복을 빌어주십시오 하는 기도라면 과연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복을 빌 그 어떤 존재는 다시 없는 까닭이다. 

뭐 그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따지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민 14:28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말(단어)을 들으시는 그대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행하시겠다고는 기록되지 않았다. 

찬송가 94장 중에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를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을 어떻게 것이라고 표현하느냐가 발단이었다. 그래서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로 개사를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그렇다면 분이라는 인격(사람)을 지칭하는 분은 없다지만 다른 어떤 것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해석의 여부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결국은 다시 처음것으로 되돌려진 듯하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시니 우리가 무어라 한다고 해도 우리가 하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여 굳이 축(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그 오해의 소지 또는 불충의 소지가 있는 그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나님 우리에게 복을 주십시오 한다고 하여 의미가 퇴색되거나 진정성이 결여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삼키려하는 대적에 대해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 인해 결과가 천지차이로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축 자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 이다. 축 자를 굳이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어떤 신(존재)을 인정하게 만드는 사탄의 전략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단어를 놓고 이전에도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왜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지는 참으로 이해부득이다. 무엇보다 축복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목사들이다. 제일 많이 기도하니까 복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백 번 양보를 한다 해도 이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에 토를 달고 이유를 댈 이유가 전혀 없다. 고치면 된다. 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의 소지도 사탄의 시험 거리도 없어진다. 왜 그 단어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것인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있고 바늘 도둑이 쇠 도둑이 된다는 말도 있다. 죄는 그 도가 더해질수록 면역력을 키워 감각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고 넘겨 점점 더 하나님을 경(輕)히 여기는 습관으로 불거진다면 이는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그 신령과 진정이 단어 하나로 갈릴 수도 있다는 것을 성도는 주의해야만 한다. 나는 축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목사도 축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 우리를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도 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복을 빌어 주십시오 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들으시는 ‘성부 하나님께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분명 틀리다. 틀리는 것은 다른 것이 분명 아니다.

hanmackim@hanmail.net    

02.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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