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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윤리학(8)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I. 신약 크리스천들은 구약의 윤리적 명령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이 부분은 Wayne Grudem의 Christian Ethics 제 8장을 참조했다)

 

구약의 법은 오직 당시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신약 성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구약 성경은 정확 모오한 성경의 한 부분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여기에 말하는 “모든 성경은” 구약 성경이다. 구약 성경은 신약과 동등하게 우리의 삶의 규범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법을 신약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아니하다. 

 

A. 신약 크리스쳔들에게 적용되지 아니하는 구약의 법

 

1. 구약의 제사법은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히브리서 7-10장은 새로운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새로운 제사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영원한 제사로 드림), 그리고 새로운 성전 (하늘에 있는 성전)을 가르쳐준다. 구약의 육체적인 모형과 그림자들이 신약에서는 영적인 실체들로 대체되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에서 크리스천들은 찬송의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5) 그리고 로마서 12:1에서 크리스천들의 예배를 묘사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또한 빌립보 교회의 “연보”를 “향기로운 제물”이라 칭한다 (빌 4:18)

그리고 신약의 성전의 의미는 “성도의 모임인 교회”이며, “성도의 몸”이다(고전 3:16) 또한 벧전 2:5에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에게는 더 이상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필요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 9)

 

2.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구약의 할례의 법을 적용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논쟁의 주제가 바로 할례의 문제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할례가 필요 없음을 가르쳤다. 바울은 갈 5:2-4에서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그리고 바울은 갈 5:11 에서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가르쳤다.

할례문제 때문에 결국 예루살렘 공의(행 15장)가 소집되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 15:1).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모인 공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은 ‘이신 칭의’에 근거한 복음의 내용을 역설했다. 비록 바리새파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15:5)고 주장하였지만, 베드로는 교회를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령으로 복음을 믿게 하시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다 (행 15:8,9). 둘째,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율법적 제도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멍에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부당하다(행 15:10,11).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영적 의미가 존재한다. 골 2:11에서 바울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바울은 로마서에서 할례의 신약적인 마음의 변화임을 말한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강팍해 지지 아니하여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게 된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롬 2:29).

 

3. 신약의 크리스쳔들은 구약의 음식의 규례를 따를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눅 7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선언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4절,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20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도들이 불신자의 가정에서 함께 식사를 할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지침을 말한다. 고전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규정한 식생활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모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만났을 때에 음식의 문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당시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갈 2:12).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정결하지 못한 음식을 먹고 있었음이 틀림이 없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 2:12). 이 상황에 대해 바울을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갈 2:14).

바울은 골로새서 2:16-17에서 이렇게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3-5).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모세의 음식 규례를 따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행동이다 (막 7:18-21). 

 

4. 크리스천들은 구약의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지 말아야한다.

 

바울은 로마서 14:5에서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그리고 갈리디아서 4:10-11에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의 날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신약의 복음과 어긋난다고 했다.

구약의 날과 절기들은 신약에 오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속을 바라보았고,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 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바울은 “안식일”과 동일한 범위속에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리고 “날과 절기”를 포함시켰다. 이 모든 것은 구약의 날과 절기들이다. 이것들은 앞으로 실체가 올것을 바라보는 그림자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히브리서 4장은 구약의 안식의 개념이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심으로 주어지는 영적인 안식 (spiritual rest)을 길게 설명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9).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영적 안식에 들어갔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10).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4:11). 구약의 안식일은 앞으로 이루어질 영적인 안식을 바라보았다. 구약이 바라본 영적인 안식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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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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