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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우리에게 주거의 공간을 만들어주기에 필요한 존재이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을 가리어 주기도 하기에 없어서 안 되는 고마운 형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너’를 단절시키고 대화의 통로를 막아버리기에 불편한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고 지역과 지역을 나누기도하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교통을 막으니 때로는 없어져야 할 물건이다. 사람들끼리 마음의 벽을 쌓기에 진정한 대화가 상실되고 분리 혹은 대립, 그리고 분쟁의 원인이 된다. 특히 하나님과 사람과의 신령한 교통을 끊어버리는 신앙적 장벽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신앙적인 단절은 말씀의 상실, 은혜의 말살, 성령의 궁핍, 방황하는 영혼의 갈등을 낳는다. 신앙적인 장벽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로막아 나를 신앙적 기아로 만든다.

네 사람의 친구에 의해서 들것에 실려 온 한 뇌졸중 환자가 있었다. 친구들이 사람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고자 했으나 너무나 많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갈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통하는 통로를 상실한 채 밖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절망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이러한 절망을 극복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낸 후에 병든 친구를 달아 내렸다. 예수님과 병든 자와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에 성공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뇌졸중 환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기적이 일어났다. 뇌졸중 환자는 벌떡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단절을 경험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나와 너’ 사이의 장벽을 느낀다.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언제나 인간관계나 하나님 관계에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평면적인 사고나 수평적인 만남은 진정한 교제를 이루기에 불가능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실망한다. 그러나 수직적이고 입체적인 사고는 장벽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경험을 갖게 한다. 

옆으로의 좌우 방향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적인 기도의 시도는 모든 장벽을 극복하고 주님을 만나게 한다. 파격적으로 지붕을 뜯어낸 그들의 방법은 주님과 나를 수직적으로 만나게 하는 기도의 행위이다.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기도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나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일반적이고 편협한 이해의 수평적인 만남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입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의 수직적인 만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있는 모든 벽을 허물고 진정한 관계의 기쁨과 행복과 아름다움을 만끽하자.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막 2:4)

03.0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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