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장로교회)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 한 사모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사로 “사모님 고생이 많으시지요”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사모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제가 결혼 전에 아버님께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고통의 세계’이니 누구나 인생 살며 고생 안 할 수 없는데, 문제는 고생이 아니라 그 고생을 누구랑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남편 만나서 함께 목회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이 잘해주고 보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힘이 너무 들어서 ‘결혼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뒤돌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감당케 하셔서 잘 살고 잘 감당하고 있다고 회고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리안나 허핑턴(Arianna Huffington)이라는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어려움과 그 상황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고생에 대한 생각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는 어려움과 고생을 통해서 더욱 자신을 발견한다는 말에는 공감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누구나 힘들고 고생스런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사모이기 때문에 혹은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고생을 남보다 더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한 생각을 좀더 확실하게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 좀더 살만해지지 않을까요? 성경은 시작부터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시고, 홀로 임이 보시기에 좋지 못하여 여자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창 1:27)
인생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기본적인 사실만 잊지 않고 살아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함께할 수 있는 조력자까지 만들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 인지요. 물론 여기서 조력자는 반드시 여자(아내)란 의미는 아닙니다. 남자(남편)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기 때문이라”(시 119:7)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고난 속에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듯 “어려운 위기나 고난을 격어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단히 독선적이고 교만한 생각입니다.
결국은 고난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홀로 설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대하는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은 “나를 위해 자기 목숨도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좋은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요15:13-15). 그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해 주실 동행자이기도 하십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고난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울고불고 한탄하면서 절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누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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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