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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전쟁입니까?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평화를 선포하는데 왜 전쟁 용어를 쓰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을 선교사들에게 도전적으로 묻는 사람들이 있다. 선교를 보는 다양한 관점에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전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를 따르는 선한 세력과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세력과의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육의 전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며 개인의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크게는 세상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서로 다른 견해들은 복음주의적 선교관, 진보주의적 선교관, 오순절주의적 선교관으로 크게 나뉠 수 있는데 선교를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된다. 

진보주의적 선교관은 복음을 직접 전해서 개인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관심 보다는 사회정의, 빈곤해소, 환경개선, 사회구조의 변경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의 불평들을 해소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교의 중요한 영역이며 사회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종종 평화와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며 종교 간의 대화,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룹과 협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육과 사회사업 등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단적인 경우 해방신학과 같은 급진적인 투쟁으로 나선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신앙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여 선교가 개인구원과 신앙 중심에서 벗어날 우려가 큰 것이다. 또한 극단적으로 나간 사람들은 사회주의적으로 과도한 편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함으로써 신앙 전파와 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무시해버릴 우려가 큰 것이다. 또한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독특한 신앙을 상대화 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데 까지 나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극히 위험한 견해로써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기독교 자체에서 떠났거나 선교 활동과는 관계없이 벗어나 있어서 선교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편으로 오순절적 선교관은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여 영적인 은사와 치유와 기적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적전쟁을 수행하여야 함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 기도와 찬양은 선교활동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개인과 집단이 성령과 교제하고 성령의 인도하에 미션을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영적인 자유를 강조하고 미션 활동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초점을 성령중심에 놓음으로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많은 치유와 기적의 역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모든 일이 항상 이런 결과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관심은 때로 거짓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이단성을 가진 소수집단으로 전락해버린 과거 역사를 보여준다. 이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위한 교육적 방식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한다. 또한 성령의 도움과 은사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오히려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반해서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는 비판을 듣는다. 

그러나 오순절적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지 않고 선교의 돌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선교사들의 고백인 것을 숨길 수 없다. 수많은 희생적인 인간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없이 복음이 미전도종족에게 전해진 사례는 없다. 성령은 선교사들을 부르고 능력을 입히셔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시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전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음주의적 선교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항상 있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나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선교를 문화 침략으로 보고 지역 문화를 파괴하거나 희석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교는 종종 현지 신앙과 충돌을 일으키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서 사회적 불안정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서구식민주의와 함께 나갔던 일부 선교활동이 강요나 압박 등을 동반할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적인 선택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이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다문화주의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다른 신앙과 문화를 무시하거나 비방할 수 있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선교활동은 다양한 문화와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여 다른 문화와 신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를 가지며 오히려 다문화주의를 촉진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 증가하는 다문화환경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선교사들이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선교사들은 다른 신앙과 문화를 조사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상호 이해와 문화 간 관계를 깊게 할 수 있다. 선교활동을 통해서 종교적 다양성을 경험하는 개인들은 종종 다문화주의에 대한 높은 인식을 가지고 사회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즐기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특히 선교 활동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하는 노력을 한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여 선교활동을 개선하고 다문화주의를 더 많이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고 있다. 선교활동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복음주의적 선교관은 선교사와 모든 성도들이 선교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소수의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으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함께 가고 함께 동역함으로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성경적인 선교의 이해이다. 선교사와 교회는 복음의 전파가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는 말로 복음을 전파하며, 직접 전달하고 이해하도록 설명한다. 또한 성경을 모든 사람들의 가슴의 말로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으로 본을 받아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며 사랑과 배려를 나누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선교사와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온라인과 미디어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며 기독교 문학과 음악, 모든 예술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복음 전파의 모든 과정과 사람들에 대한 기도를 통해 영적 전쟁의 자원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강력한 무기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선교사는 교회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새로운 제자를 양성하고 교회를 세우거나 강화함으로써 교회의 성장을 도모한다. 현대의 선교 상황이 많은 지역에서 직접적으로 보이는 교회를 세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궁극적으로 믿는 무리가 함께 예배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은 모든 선교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복음 전파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예배 및 교육 활동으로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의 공동체를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기존 교회의 리더십을 지원하고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한다. 여기에는 아주 주의해 할 것이 있는데 선교사의 존재가 기존 교회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제외하고도 절실하게 필요할 때에만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사회봉사 및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교회의 목표와 가치를 사회에 전파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분명 상황에 따라 많은 제약이 있기도 하지만, 교회가 대 사회적 책임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선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분발하여야 할 영역이다. 직접적인 복음전파만이 유일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대사회적 책임을 무시한 극단적 견해의 영향이 기독교의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큰 몫을 감당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교회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할 필요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에서 오해하는 부분이 많이 있고, 의도적 교회 비난 세력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자성의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실재적으로 한국의 사회 봉사를 하는 비영리단체의 85%는 기독교에 바탕을 둔 단체들이다. 이런 사실들은 언론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나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은 한국사회에 알려진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겨져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교회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관심을 가지고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문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는 노력을 항상 경주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편한 상황을 즐기기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문화권과 함께 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선교사가 그 본을 보이고 교회가 그렇게 성장과 성숙해 가도록 안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선교사의 역할은 기도와 영적 지원자가 되는 일이다. 선교사는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영적인 든든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교회의 영성 패턴을 만들어 가야하고 성숙한 제자도의 모습이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선교사가 어떤 선교사로 기억될 것인지 중요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선교사는 교회의 비전과 전략 개발에 참여하며 경험을 통해 교회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선교사 만큼 그 민족과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그만큼 많은 경험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가 세운 교회가 그 나라와 민족에게 어떤 존재로 세워져야 할 지를 걱정하고 비전과 전략 개발을 위해 기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선교사들이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에 나간 영적 군사로써 그 삶을 살아갈 때 누가 전쟁을 말한다고 비난할 사람들이 있겠는가. 끊임없는 나와의 영적 전쟁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장에 나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전우들을 기억하며 함께 싸워 이기자. 오늘도 예수, 구원의 그 이름을 선포하며. Jesus, No Other Name!    

dr.yongcho@gmail.com

 

10.2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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