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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주의는 경계하나 의도적 개방성을 가지라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선교사는 ‘영웅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무엇일까? 영웅을 사전적으로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무용(武勇)과 담력에도 빼어난 사람. 또는,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뛰어난 일을 이루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뛰어난 일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선교사는 영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처음부터 시도하기 때문이다. 선교지의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면 복음을 전하여 현지인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을 수용하며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작은 사람들이다. 크게 보이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우기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을 말한다면 더더욱 아니다. 특히 열매가 눈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지역에서 평생을 섬기고 있는 선교사들의 경우는 그렇다. 그렇다고 선교사들이 영웅의 대열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될 확률이 너무나 큰 일이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1980년 소천한 마더 테레사는 알바니아계인으로 오늘날 북마게도니아에서 태어났다. 살해를 당한 아버지로 인해 아이랜드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수녀가 되어 후에 선교사가 되어 인도 콜카타에 자리를 잡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녀가 수많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처음엔 가톨릭으로 개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경계를 하였지만 후에는 모두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가톨릭의 선교가 과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를 떠나서 한 종교인의 선행이 영웅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그녀는 종교인으로서 영웅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조금도 영웅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영웅주의는 자신이 마치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가진 것을 말한다. 영웅이 안되는 사람이 영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에게도 위험하고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는 주위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선교지에서 특히 위험한 사람은 하늘의 직통 계시를 받아 행동하는 것 같은 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열두 사도의 다음으로 선교지를 밟은 사람인양 행동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선교적 노력은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한다. 때론 다른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정죄를 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게 될 때에 잘못하면 이단시비에 걸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영웅주의의 시작은 처음 선교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나타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태도부터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 현존하는 모든 단체나 개인들은 잘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바탕에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현존하는 단체에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분명히 잘못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한 단체도 선교의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이나 단체나 지금까지 아무도 건드려보지 못한 곳이 있는지 찾아 나서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미전도 종족을 위해서 개척선교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루리라는 생각부터 잘못되는 길을 나서기 십상이다. 선교지와 사역의 선택은 긴 기독교 역사의 한 줄기에 점을 이어가는 것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굵은 선을 그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은 영웅주의를 낳게 한다. 

영웅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선교의 야성은 더욱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의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개방성을 가지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연스럽게 다가서서 묻혀 버리기 쉬운 타성을 경계해야 한다. 선교의 현장에 그냥 살아간다고 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있는 교회가 성장하고 활발하게 양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교회를 보고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한 교회에서 장년부가 잘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대학부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부를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가 잘 성장한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근처의 중국인들을 복음전파의 대상으로 삼고 삶을 통해서 또한 직접적인 복음전파를 통해서 의도적으로 다가서지 않고는 자연스러운 복음의 전파는 없다. 특별한 경우에 중국인이 한국교회를 찾아와서 복음을 듣거나 한국인을 만나서 기독인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아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찾아 나서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까지도 의도적인 만남이 아니고는 거의 기회가 없다. 이렇게 의도를 가지고 찾아 나서는 야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팬데믹의 어두운 골짜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전쟁의 포화 가운데 난민의 비참한 행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가장 어려운 환경 가운데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까지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너무나 큰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구호의 노력을 쉬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직접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없지만 남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며 돕고자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한 79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해서 대부분은 유럽 각국으로 흩어져서 머물고 있다. 폴란드에 150여만명이 머물고 있는데 이들이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겨울 옷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따뜻한 음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들을 위해 선교적 NGO인 글로벌호프는 다른 NGO 프로보노와  한국교회봉사단과 함께 제1호 호프밥차를 운영하기로 하고 12월부터 폴란드에 있는 난민들에게 따뜻한 라면과 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난민들과 함께 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많은 난민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흩어져 교회들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전쟁 전에 우리 선교사들은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성도들을 훈련시켰다. 그들이 이제는 난민 교회들을 통해서 유럽에 복음의 전초기지를 만들고 있어서 언젠가 유럽 각국을 복음화 하는 일이 흩어진 나그네들을 통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곳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제2,3호 호프밥차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누어지고 복음의 통로로 사용되는 일에 교회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되어지는 일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교회 주변의 타민족 구성을 살펴보고 그들을 위한 맞춤형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도의 삶이 의도적 복음전파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로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도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참여하여야 한다. 선교현장으로 직접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일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선교의 영웅주의는 아니지만 의도적인 개방성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는 것이다.

dr.yongcho@gmail.com

12.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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