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자신을 평가하고 평가받는데 익숙해지라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거의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로부터 분기별, 연도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한다. 거기에는 재정과 사역보고가 중요한 부분이다. 선교단체가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과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는 것은 책무성 부분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의 정서는 평가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미국학교에서 한국사람이 써준 추천서를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들도 누가 추천서를 작성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나름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평가를 하기가 많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만큼 우리들의 문화에는 평가라는 말이 판단이나 비판으로 받아들여져서 정당한 평가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바른 평가는 우리 모두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필자가 한 단체의 대표를 맡아서 일년을 지나면서 모든 선교사들에게 요청한 것이 일반적인 재정과 사역 보고서와 함께 자체평가서를 작성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연례지도력회의에서 우리 단체를 위해서 평가단을 구성하여 선교사들을 돕자는 정책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지역리더들은 “평가”라는 단어를 결코 선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았고, 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말입니까? 선교사를 누가 평가하나요? 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결국 나의 제안은 채택되지 못하였다. 그 때만해도 오랜 동안 해외생활에서 평가(evaluation)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모두를 돕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사고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을 채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은 거리감이 더 커진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20여년이 지나가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평가가 자연스러워지고, 때로는 자발적인 선교사의 자기평가서를 읽어볼 기회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여기에 필리핀의 중부지역에서 캠퍼스처치사역을 하던 문권익 선교사가 2018년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선교전략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사역한 이바라는 작은 도시는 필리핀이 자랑하는 막사이사이 전대통령의 고향인데 잠발레스주의 주도이며 약 42,000명 정도의 인구에 5천명규모의 주립대학, 주교육청, 주청사, 관공서 밀집지역으로서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캠퍼스에서 한국어교수와 축구코치를 하면서 사역을 하였고, 필리핀의 학생선교단체와 연합하여 정규모임과 전도 집회 등을 하였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로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캠퍼스 주위에 교회를 세워(City on a hill Mission Church) 주일예배와 수요일 오후에 성경공부, 어린이 사역, 아침 기도회를 하고 있다. 이런 열매를 맺는 사역을 해온 그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몇 가지 과제를 말하고 있는데 다음세대 지도자를 세우는 일과 지역교회와의 사역적 연합을 하는 것 그리고 대학 졸업생들이 지역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선교적 도구로 재생산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몇 가지 반성할 점들을 발표하였다. 

“필리핀 사람이 필리핀 사람다운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필리핀 문화를 잘 알지 못하고 행해진 다양한 점들에서 문화적 반성을 말하고 있다. “나는 필리핀 선교사로 살아오면서 그들의 그 고유한 인격적 기질과 문화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느린 걸음걸이를 싫어했고 모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보는 게으름을 탓했으며 둘러대는 핑계는 모두 부도덕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거짓말로 보았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다 선교지의 문화와 정서 그리고 기후가 민족적 기질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부족함 때문인데 지금은 후회하고 반성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문선교사는 사역을 하면서 일어난 여러가지 가운데 사역적 반성으로 “설익은 열매 따먹기”라고 표현하며 “또 하나의 대표적인 과오는 너무 성급하게 현지인의 영적인 성숙을 기대하고 종용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의 신앙이 아직 영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과도한 사역적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였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검증할 수 있는 여건과 시간을 주지 못했다고 반성하였다. “많은 선교사들이 빨리 열매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인해 막 운전면허를 딴 현지인들을 고속도로로 내 모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실수라기 보다는 죄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는 실족하여 교회를 등진 사람들도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영적성장과 성숙을 기계적으로 유도하고 독려하기는 했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깊은 영적 통찰을 통하여 스스로 검증하고 확증하도록 충분히 돕지를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격적 반성으로 “연기가 멈춘 사랑의 굴뚝”이라는 표현으로 “너무도 많은 순간 현지인들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목적의 대상으로 대했다”고 말한다. “목적 지향적인 인간관계는 목적이 좌절되면 사라지는 관계인데 나는 많은 순간 현지인들을 내 사역의 목적으로만 대하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문 선교사는 ‘선교사-사랑=?’ 라는 공식에 진지하게 답을 생각할 때 그 답은 제로, nothing, 이라는 것을 깨닫고 현지인들을 사역과 목적이 이끄는 삶에 속아 현지인들을 깊은 사랑으로 대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문 선교사의 반성문을 통해 중요한 부분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문화적 반성의 부분은 우리들이 선교적인 삶을 살기위해 사전에 얼마나 잘 준비되고 훈련되어져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타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학교와 신학교를 나오고 문화적으로 탁월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초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타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기위한 교육을 더 받아야 하고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부분에서 디아스포라들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나의 문화 중심으로 생각하던 것을 다른 문화와 비교하며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를 먼저 경험하고 극복하는 것은 선교사로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디아스포라가 그런 장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타문화권에서 게토로만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들의 경우 오히려 반대 현상으로 나타날 수 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디아스포라교회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교인들을 타문화권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도록 타문화권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교제의 장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기적으로 타문화권 교회들과 교제하며, 합동예배를 드리고, 공동의 사역을 꿈꾸는 것도 선교적인 교회로 만들어져 가는 중요한 길이 될 것이다. 

 

“선교사 -사랑 = ?” “nothing” 

목적의 대상 아닌 사랑의 대상 

 

교회와 후원자들은 선교사들로부터 성급한 결과 보고를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언어훈련을 잘 받아야 할 시기에 조급한 후원 교회들의 성화에 못 이겨 현장의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면 장기적인 사역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선교단체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들은 2년 동안을 언어준비와 문화적응의 기간으로 기본적인 준비기간을 허락한다. 특히 개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이거나 독립적으로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들의 경우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장기적인 선교에 큰 해를 끼칠 우려가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현지인들이 잘 준비되지 못했으나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사역을 맡기거나 이양하였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폐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사역 이양의 문제는 또 다른 큰 주제가 되는 것으로 더 민감하게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문제점은 사역을 조기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믿지 못해 맡기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된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 가운데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 2:7b-8) 고 말하고 있다. 문선교사가 표현하였듯이 선교사에게서 현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뺀다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사랑이 없는 선교사역은 누군가를 위한 화려한 장식품은 될 지 몰라도 생명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평가되는 자신을 보며 겸손하게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dr.yongcho@gmail.com

10.29.2022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