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구원을 위한 연합기도모임을 매달 갖고 있는 NIM(North Korea Inland Mission, 대표 임현석 목사)이 지난 30일 저녁 시카고한인교회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했다. 또 지난달에 이어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을 파악하라”II 제목으로 김정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북한선교를 위한 기도제목
첫째, 심각한 수해를 입은 북한의 신의주 지역과 북한 전역에 국제 지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도움이 전달되어 위기를 이겨내도록.
둘째,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방문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쓰임 받도록.
셋째, 탈북자들을 은혜로 붙잡아주시고 북한선교와 세계선교의 일군으로 훈련되도록
넷째, 북한 지하교회와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해주시고, 한국과 해외한인교회들이 북한선교와 민족화해를 위해 헌신된 준비를 해나가도록 다섯째, 북한선교를 위한 일군들과 자원들이 준비되고 채워지도록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을 파악하라”II: 김정일
김정일은 북한의 현재 최고 통치자이며, 김일성 사후 15년 이상 북한체제의 절대적인 통치권자로 존재해 왔습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권력승계 과정부터 계산한다면 40년가량을 북한 체제와 사상과 사회전반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을 거의 20년 동안 겪어오면서도 붕괴되지 않는 기적(?)의 정권을 장악하고 다음 후계자에게 체제를 물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김일성보다 지금의 기형적인 북한과 더 많은 관련성을 가진 중심인물인 것입니다.
지난달에 설명 드렸던 김일성이 민족의 해방자, 지도자, 아버지, 그리고 신과 같은 자리에 올랐다면, 그의 아들 김정일은 아버지를 위해 만든 위대하고 초월적인 이미지를 통치의 기둥으로 삼고, 그 기둥 뒤에서 비밀스러운 이미지로 치밀하고 냉정하게 정권을 장악했던 인물입니다. 김정일은 많은 부분에서 아버지 김일성과 달랐습니다. 김일성이 인민들의 기초생활 보장과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이미지를 가졌다면, 김정일은 예술 문화를 통한 선전선동과 군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의 장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김정일은 20대 대학 시절 영화 부분에 개인적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가 정치 분야에 등장해서 첫 성공을 이룬 것이 예술 문화를 통한 선전선동이었습니다. 1964년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처 참사실 근무로 정치수업을 시작한 김정일은 1967년 9월, 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 지도과장이 되면서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 때 김정일은 한 달간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 회의를 통한 자아비판을 실시하면서, 두려워하는 당사자들을 한명도 처벌하지 않고 도리어 처우개선 등으로 충성을 받아냅니다. 이때 ‘속도전’ 개념을 만들어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에 만들어냈는데, 당시에 나온 영화가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의 북한 예술의 대작들입니다.
예술 문화는 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분야입니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도된 이미지를 잘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여부가 성공을 평가하는 잣대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난 이후 나왔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솔직하고 유머가 있는 사람’, ‘국제 감각이 있고 시사에 밝은 사람’ 등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외모적인 약점, 환경적 약점을 최대한 은폐하면서 주위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을 부각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적용되었습니다. 김일성 사후 ‘유훈통치’를 통해 북한 주민에 대한 김일성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3년 동안이나 공석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아버지를 위해 3년 상을 치르는 지극한 효자의 이미지까지 함께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1990년 중반 이후의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과 대량 아사의 책임을 피해가는 절묘한 정치적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김정일은 권력의 장악과 안정적 통치를 위해 특히 측근과 밀실통치를 통한 철저한 충성을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소수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밀실파티를 열고 많은 선물과 보상을 해주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을 어기는 모습이 보일 때는 무서운 징계를 내리는 당근과 채찍을 강도 높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 정권의 핵심인 매제 장성택이 권력을 남용하다가 철직되어 쫓겨났다가 몇 년만에 다시 복직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