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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봄이다. 뒤 뜰 작은 화단의 흙을 고르다 보니 무슨 꽃인지도 모르는 구근에서 싹이 돋아난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작년에 화분에 담겼던 꽃이 진 후에 구근을 땅에 심은 것에서 싹이 튼 것 같았다. 별 기대 없이 심었었는데 싹이 나오다니 반가웠다. 일단은 싹이 난 구근을 조심스레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며칠 후에 꽃대가 쑥 올라온 것은 히아신스였다. 여리고 작은 히아신스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생각했다. 히아신스 꽃이 진 며칠 후에는 죽은 것 같았던 포도나무에 새 잎이 돋았다. 몇 년 전 뒤 뜰에 심은 포도나무에는 두 해 정도 포도가 열렸다. 여름을 향해 가면서 아주 작은 포도알들이 점점 영글어 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재작년부터 잎만 무성하게 담을 타고 뻗쳐가고 포도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그런대로 가을이 되면 담장에 붙은 포도 잎들이 운치가 있어서 놔두었는데 지난 겨울 한국에서 다니러 오신 형부가 포도나무 가지를 싹둑싹둑 다 전지하셨다. 밑 둥만 남겨 놓고 썰렁하게 서 있는 나무는 볼 품도 없을 뿐더러 전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포도나무를 아예 베어버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 포도나무에 새 잎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 여리게 올라온 잎을 보며 반가운 인사말을 건넨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나무에 새로 돋아나는 잎들과 들꽃들을 보면서 부활을 생각한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믿음의 길로 나아오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기독교의 진리가 있다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주님의 부활, 그리고 우리의 부활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이해는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것에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통해 실물교육을 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용히 땅속에 묻혀 있던 씨앗들이 봄이 오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고 겨우내 마른 잎을 다 떨군 채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들에 연녹색 여린 새잎들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부활을 설명하면서 씨앗이 썩어서 형태가 다른 식물로 새롭게 자라나는 자연 현상을 비유로 들었다. 죽은 자의 부활은 땅에 묻힌 씨가 죽은 것 같으나 죽은 씨앗에서 형태가 다른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죽은 것 같이 보이는 현상 뒤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계신다. 땅에 속한 몸이 있듯이 하늘에 속한 몸이 있다. 그래서 봄이 올 때마다 믿지 않는 친척들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단순한 부활의 진리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가치관을 형성한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 건너편의 삶, 우리 주님이 마련하신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본다면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이 훨씬 더 진지해질 것이다. 우리의 썩어질 육신의 몸을 벗고 하나님께서 새로 입혀 주실 알 수 없는 신비한 형체의 몸을 입을 그 날이 있을 것을 알고 고대하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부활절이 다가온다. 며칠 전 집으로 초대한 손님들이 사 온 화분에 담긴 꽃들이 집 안으로 봄을 불러들였다. 프리지아, 튤립, 이름 모르는 작은 꽃… 각각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활짝 핀 꽃들이 시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년 봄에 땅을 뚫고 얼굴을 내밀 새싹을 기대하며 꽃이 진 구근들을 뒤 뜰 한 켠에 정성껏 심을 것이다. 아주 단순한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 안에 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lpyun@apu.edu

03.3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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