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스트리밍 예배가 초래한 의도치 않은 결과 중 하나가 예배가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재구성되는 미묘한 변화이다. 사실 이건 대형 교회에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서 위대한 목사와 신학자들의 설교는 기록되었고 또 널리 배포되었다. 그런 관행은 어느 정도까지는 설교자에게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목사가 의도치 않은 사람들이 "엿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양떼를 위해 설교를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미디어 시대를 맞아서 라디오가 가장 먼저 나왔고, 다음으로 나온 텔레비전이 예배를 방송에 적합한 형태로 몰아갔다. 하지만 라이브 스트리밍과 소셜 미디어(특히 COVID-19 이후)가 결합되면서 교회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교회의 예배가 방송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러한 추세가 초래한 의도치 않은 부작용, 즉 누구나 우리 교회의 예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됨으로 생기는 교단에 가해지는 부담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또 다른 부작용이 있다. 이건 방송 품질이나 온라인 도달 범위에 관한 게 아니기에 쉽게 놓치는 부분이다. 다름 아니라 예배자에 대한 것이다.
예배와 자의식
얼마 전에 나는 감동적인 예배자를 찍기 위해서 열렬히 애를 쓰는 교회 사진작가를 패러디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았다. 그 작가는 교회의 소셜 미디어에 올릴, 예배 중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은 교인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 게시물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착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예배가 방송된다는 게 예배자에게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배 드리는 내 모습이 나중에 비디오나 온라인 사진에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또는 라이브 스트림을 위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카메라에 내가 잡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예배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닐까?
교인들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하는 낯선 사람들이 나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나의 예배가 달라지는 건 아닐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연기를 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말씀은 이런 유혹에 대해서 분명한 경고를 준다. 말씀은 입술과 마음이 동떨어진 예배에 관해서 경고한다. 누군가를 험담하는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우리는 관대함을 자랑하는 것에 관해서 또한 금식의 티를 내는 것에 관해서도 경고를 받는다. 예레미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기만적인 것이 마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속일 때처럼 그 기만성이 두드러질 때도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유혹이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고 싶어 하는 허영심이 아닐까? 그런데 실상은 문제가 그것보다 더 깊다면 어떨까? 만약에 나의 연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거라면, 그 위험은 과연 어떤 걸까? 항상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상상하면서 내가 예배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드러내는 상황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예배와 자기 인식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매혹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카메라가 눈에 띄지 않는 예배에 참석할 때에 자기의(self-righteousness)는 내가 고민하는 핵심 유혹이 아니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특별히 더 의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보기에 내가 상당히 의롭게 느껴지고, 내가 그걸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경배하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나 자신의 이미지를 좋아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좋아하는가? 정말로 하나님을 찬양해서 두 팔을 올리는가? 행여 나는 경배할 때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 팔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건 아닌가?
이것은 차원이 깊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렇다보니 봉사 사역이나 선교 여행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논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섬기는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는가? 행여 돌보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의 이미지를 즐기는 건 아닌가? 나는 내가 먹이는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자비로운 자아상을 사랑하는가?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게 정말로 전도하는 대상자의 영혼에 대한 걱정인가? 행여 내가 꽤 용감한 전도자라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하고 그 느낌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심지어 개인 경건의 시간에조차도 우리는 이런 자의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기에 지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강화하고 싶어서인가? 아침에 성경을 펴서 구절을 적는 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나는 원래 아침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는, 내가 즐기는 나의 이미지 때문인가? 정말로 하나님을 갈구해서 금식하는가, 아니면 금식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인가? 이것은 진지하게 영적 수행을 대하는 모두가 느끼는 도전이다. 젊은 개종자가 존 마크 코머가 쓴 ‘Practicing the Way’를 읽든, 또는 나이 든 그리스도인이 R. 켄트 휴즈가 쓴 ‘Disciplines of a Godly Man’를 다시 읽든 말이다. 영적 수행은 언제라도 자기 참조라는 루프에 빠질 수 있는 유혹이다.
결국 이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가 의롭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영적 근육을 보면서 감탄하도록 과시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단지 내가 약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예배에 참석하고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게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 성찰의 함정
이것은 영적 삶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함정 중 하나이다. 나 자신의 영성에 끝없이 매료되고, 헌신하는 나 자신을 보고 감탄하며, 우리는 공연자와 관객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인간의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내면지향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나 자신에게로 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선행을 떠벌려서도 안 되고, 카메라가 나를 향하는 순간에 맞춰서 두 손을 번쩍 드는 명백한 자기의라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없을 때에도 우리는 항상 오로지 내게만 초점을 맞춘 상상의 카메라 렌즈를 의식한다. 마음의 눈이라는 카메라는 하나님이 누구이고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가 아니라, 쉬지 않고 나 자신만을 비춘다.
문제는 이런 자의식과 자기중심 습관이 아예 감지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마치 거울로 가득한 방처럼 끝없이 스스로를 반사시킨다. 우리는 쉬지 않고 헌신하지만, 내면의 시선은 결코 나 자신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의 영혼은 결코 위로 솟구치지 못한다.
탈출구: 그분을 찾고 나를 잊기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자비를 갈망하는 길 외에 무슨 해결책이 가능한지 나는 모르겠다. 참된 예배의 목표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매료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위엄에 사로잡힘으로 자기 참조적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에도 눈이 멀었고 또한 자신에 의해서도 눈이 멀었다. 계속해서 내면만을 향하는 시선 때문에 그는 눈을 돌려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거울을 깨뜨리는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분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자신의 임재로 우리를 초대함으로 내가 나 자신을 잊도록 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찾을 수 있도록 먼저 나 자신을 잊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약속하신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찾으면, 반드시 찾을 것이라고(렘 29:13). 세상이 주는 영광의 숨은 이면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내가 여전히 자의식과 이기심에 묶여있어도, 그분은 우리의 진실하고 진지한 예배를 기뻐하신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그분을 보는 것이다. 나는 그분을 원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욕망을 키우고 허락한다고 확신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크린과 거울 너머로, 우리 자신을 넘어서 위를 향하도록, 바깥을 바라보도록 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의 시선이 그 시선이 합당한 유일한 분께로 향하도록 만들 수 있다.
by Trevin Wax, TGC
04.05.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