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오래 전 일이다. 시간을 내서 며칠 간 조용한 곳으로 기도를 하러 갔다. 그 곳에서 만난 어느 사모님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했다. 그 분은 내가 신학교 교수인 것을 알고 계셨다. “신학교에서 가르친다면서 기도가 부족하구나”라는 사모님의 꾸짖는 기도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도 그 분의 말처럼 내가 기도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있다. 과연 어느 크리스천이 “나는 충분히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모님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그 말이 나에게는 가르치는 자로서 부끄러운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는 교훈으로 남은 것 같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여러 역할이 기대된다.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넣어 주어야 하고,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삶을 바람직하게 형성해주어야 한다. 교육이라는 단어의 어원적인 의미는 학생들을 그들이 현재에 있는 자리에서 더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즉 교육에 있어서의 목표는 배움을 통한 변화이다. 그 변화는 지식의 고양일 수도 있고 기술의 습득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 교육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배움을 통한 삶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나 기독교 학교 등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반 교육자보다 더 큰 부담이 있다. 배우는 사람이 삶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려면 가르치는 자부터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의 삶에 미치는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생각해 볼 때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들 중에 특별히 생각나는 교수님이 있다. 박사과정 때 지도 교수님 이었던 분이다. 미국에 와서 십 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나에게 어린 세 자녀를 키우며 영어로 공부하는 박사과정이 만만치 않았지만 교수님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 연구로 바쁜 중에도 연구실 문을 두드리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셨고 방을 나오기 전에는 늘 기도해 주셨다. 또한 제자를 동료로 생각하는 교수님의 겸손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했다.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하게 일정한 주제에 대하여 학습할 때 항상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고 본인도 학생들의 의견을 통해서 함께 배운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졸업 이후에도 한 번씩 찾아 뵐 때면 나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쓰셔서 황송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신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니 전임교수로 가르친 지 어느새 이십 년이 넘었다. 알게 모르게 나의 지도 교수님이었던 분이 나의 모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에 꼼꼼하게 코멘트를 하는 것도 교수님이 하시던 대로 따라 하는 것이고 약속 없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일지라도 반갑게 맞아 얘기를 나누고 기도를 해주고 보내는 것도 교수님께 배운 것이다. 감사한 것은 가르치는 자로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지식의 전달보다는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향한 관심이 커지는 것이다. 사십 대 초반에 강의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박사학위를 갓 받은 교수들이 그러하듯 강의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학생들과 삶을 나누었던 기억은 많지 않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든다고 하듯이 가르치는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이제야 서서히 철이 드는가 싶다. 행정 일을 하느라 학술 논문 하나 쓰는 것도 겨우 시간을 내어야 했던 교수 생활이지만 제자들의 마음에는 힘들 때 생각나는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 배우는 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학문의 내용보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신뢰의 관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한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교회에 사역자가 필요하니까 좋은 학생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목사님, 안녕하세요?”라는 내 인사에 “교수님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구요…” 로 시작하는 제자의 부탁을 들으며 “말을 참 예쁘게 하네”라고 생각하며 가르치는 자로서의 작은 기쁨을 누린 짧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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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