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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소망으로 코로나19 이겨낸다!

2020년 부활절...소망과 변화로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복음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만큼 우리 신앙고백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의 육체와 이 세상이 죄의 저주 아래 고통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구속하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분인지를 고백하는 시간이다. 특히 앞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쟁과 그로 인한 불신, 고립과 단절,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더 두렵기만 한 상황에서 맞는 부활절은 진정한 소망으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크리스천은 죽음 이후가 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분명한 소망이다. 크리스천은 ‘부활’이 약속된 사람이다.

바울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말한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아픔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그 어떤 고난도 죽음보다 크지 않다. 성도는 그 죽음도 이긴 부활이 약속된 사람이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산다. 비록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선다. 부활의 소망 가지고, 오늘을 승리로 만드는 사람이다.

죽음이후 더 분명하고 약속된 부활 소망 있어

주 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알고 믿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5-58).

하나님이 이 세상을 새롭게 빚으시고,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로 채우실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미래가 시작된다. 따라서 부활은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한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로마서 8장은 예수님의 부활과 다가올 새 창조의 연관성을 아주 분명히 이야기한다. 바울은 그 본문에서 고통에서 부활생명으로 옮겨가는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창조세계를 묘사했다. 예컨대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망의 고통이 아니라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통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기다리면서 신음한다. 

피조물의 신음은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영과 이어졌음을 뜻한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되는 것, 즉 우리의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도 신음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탄식으로 간구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성령의 기도는 우리가 부활한 그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 

피조물의 신음은 장차 다가올 부활을 통해 창조세계가 완성된다는 메시지가 섞여있다. 그러나 만일 이 피조물이 우리처럼 회복을 바라고 신음한다면, 놀랍게도 이 세상의 종말은 소멸이 아니라 구원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부르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조명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을 빌려 우리는 우리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신뢰하기 시작한 사도들과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자신들의 부활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삶의 자세가 변화됐다. 그리고 부활이 주는 능력을 삶 가운데 드러내는 사람들이 됐다. 핍박과 죽음조차 그들의 믿음을 돌이킬 수 없었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그래서 부활신앙은 고백이나 확신으로 전부가 아니라 고백한대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산 믿음이며, 매일 수천 명씩 감염으로 죽어가는 현재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이유다.

결국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그로 인한 불신, 고립과 단절,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더 두렵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교회는 여전히 신뢰의 대상인지, 고립과 단절, 혐오와 배제를 치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이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 답해야 한다. 

천연두가 로마를 강타할 때 초대교회는 거리에 방치된 시체들을 치우고 장례를 치러주면서 로마제국 내에서 대안 공동체가 됐다. 그러나 중세시대 로마가톨릭교회는 흑사병이 돌자 유대인 혐오와 마녀사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교황의 권위가 흔들리고 중세가 몰락하며 교회가 역사의 선택을 받게 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와 마주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초대교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신다!

<편집부>

04.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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