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그의 천재성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익히 잘 아는 사실이다. 35살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600개가 넘는 작곡을 저술했으며(작품의 공식목록 Köchel 626) 그의 모든 작품들의 완성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에 그의 음악 제작의 비범한 본질은 그의 깊은 신앙의 삶과 뗄 수 없는 것이었음을 후대 사람들은 평가한다.
그에 대한 일화들이 참 많이 있지만 하나만 소개하려고 한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781년 궁정이나 교회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 일이다. 당시 사회는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구체제에 맞서서 만민 평등주의와 개인주의적인 정신에 근거한 계몽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전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궁정의 군주들이 구시대적 잔재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 성직자들마저 교권남용과 타락을 접하게 된 그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비판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이런 것들이 그로 하여금 궁정과 교회 소속을 떠나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활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재정적으로 빈곤한 어두웠던 말년을 보내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어떤 시기에도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신앙 고백을 갖고 그의 음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려 했고 바로 그의 작품들이 그것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위스 출신의 개혁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모차르트를 추앙했다는 사실은 꽤나 잘 알려져 있다.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유를 느꼈고 모차르트가 누렸던 그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았다. 그의 고백인 “내가 천국에 가면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나 칼빈, 슐라이에르 마허보다 우선적으로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싶다”는 일화는 얼마나 모차르트에 대한 깊은 경의를 표현하고 있는가를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저명한 신학자 한스큉(Hans Küng, 1928-2021)도 모차르트를 칭송하며 “그의 음악은 바흐(Joha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과 같이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나 브루크너(Joseph Anton Bruckner, 1824-1896)의 음악처럼 인생의 고백을 담고 있지도 않지만 궁극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즉 신비에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고 이야기한다.
모짜르트. 그는 짧은 35세의 생을 살며 숱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모든 환경에서 그의 음악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본질을 놓치지 않았던 위대한 음악가였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에 있어 가장 중심에 두고 있던 하나의 사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12:28). 이 말씀은 저자 요한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난 이후 그리스도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으로 그리스도께서 예수께서 변함없는 한 가지를 초지일관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 바로 그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고 싶다. 노진준 목사는 “오늘날은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탈 진실 시대가 되어서 모든 것을 상대화시킴으로 개인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시대”라고 정의하는 말에 동의가 된다.
이러한 이론을 부추기는 요소들 가운데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하나의 철학적 입장에서 표현된 사조를 생각해본다. 이것은 난해한 표현들을 사용해서 현존하는 모든 미적, 사회적 가치를 부인하는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아방가르드(Avant-garde) 운동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에 의해 원래의 가치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사용하는 모든 그럴듯한 단어들이 사실은 아무 의미 없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혼란하고, 개인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애매해하거나 추상적이지 말아야 한다. 즉 복음의 절대성이 분명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사 죽임을 당하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확실한 진리를 가슴에 담고 이 복음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기초는 “그분이 오직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이 원초적 고백이 동기가 되면 바로 나의 삶에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고백이 당연할 것이다.
Soli Deo Gloria!
iyoon@wmu.edu
10.2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