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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

변명혜 박사 (ITS 교수)

우리 집 뒷마당에는 과일 나무 몇 그루가 있다. 이십 년 전 이사 올 때는 구아바 나무와 무화과 나무만 있었다. 작은 마당이지만 그 후로 나무 몇 그루를 더 심었다. 비료를 안주어서 그런지 무화과 나무는 예수님이 저주하신 성경의 무화과처럼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달린 후에는 말라서 떨어지곤 해서 베어 버렸다. 그러나 별로 돌보아 주지도 못하는 구아바 나무는 해마다 탐스러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몇 년 전에는 자몽을 사서 심었는데 뜻밖에 포멜로가 열렸다. 자몽보다 포멜로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주렁주렁 달린 포멜로를 따 먹는 재미가 심심찮게 크다. 십여 년 전에 심은 살구나무는 막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에 축하라도 하듯이 첫 열매 몇 개를 선보이더니 그 후로는 꽃만 피고 살구는 한두 개 열리다 말고 떨어진다. 그러나 가지는 쑥쑥 잘도 자라서 담을 넘어 옆집으로 마구 뻗쳐간다. 긴 전지 가위를 사서 옆 집으로 간 가지를 힘들게 자르다가 가위가 망가져버렸다. 올해도 잎이 무성해지기 전에 전지를 해주어야 할 텐데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잔디를 깎는 아저씨가 와서 부탁을 했다. 아저씨가 잘라낸 가지를 쓰레기통에 넣다 보니 꽃이 핀 가지들이 몇 개 있었다. 봄이 왔다고 잎이 나기 시작하고 꽃을 피운 것을 마구 자른 것이다. 잘린 나무 가지가 마치 “아야, 아야!”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꽃을 피운 가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수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꽃이 달린 가지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식탁 위에 꽂아 놓았다. 살구나무 가지에 달린 꽃 몇 송이는 자기로 만든 꽃병과 잘 어울렸다. 동양화에 나오는 그림처럼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며칠이 지나니 꽃들은 힘없이 떨어지고 이제는 파릇파릇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생명의 근원인 나무에서 떠나 물속에 담겨 있는데도 파랗게 돋아나는 잎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힘이 안스러우면서도 놀랍기 때문이다. 

 

꽃병에 꽂힌 채 싹이 트는 살구나무 가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언니가 영양소 흡수에 없어서는 안될 소장 전체를 잃어버리고 튜브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기 시작한 지도 이 년이 되었다. 정신도 맑고 식욕도 정상이지만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병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출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곳저곳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던 때는 이제 언니에게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기적 이외에는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언니는 생명을 붙들고 있다.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까? 정상 체중의 반밖에 안 되는 몸으로 버티어 내는 언니가 너무 안타깝다. 

 

오늘 아침은 봄비가 차분히 내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포멜로 나무에 향기가 나는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주인을 잘 못 만나 비료 한번 제대로 못 주어도 해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포멜로 나무를 바라보며 그 강한 생명의 힘이 언니에게도 임하기를 바래본다. 뿌리에서 절단된 가지에서도 싹을 틔우는 살구나무의 집요한 생명의 힘으로 몇 년 만이라도 더 버티어 주기를 기도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역경 속에서도 돋아나는 새싹처럼 우리가 생명을 입어 살아가는 것을 응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마음의 상처로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봄이 지닌 생명의 힘이 소망으로 다가오기를 기도한다. 사순절이 지나면 곧 부활절이 다가올 것이다. 죄로 인한 고통과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나 죽음 뒤에 감추어진 생명의 신비가 우리가 믿는 부활의 능력이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놀라운 능력이 가슴 깊이 감사로 다가온다. 

 linda.pyun@itsla.edu

04.05.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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