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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회 신앙도서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 임지영 집사 (얼바인 주교회)

흔히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넓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머물수록 그 크고 완전하신 사랑을 담아내기에 나의 말과 글이 얼마나 초라하고 빈약한 지를 자주 느끼곤 한다. 이렇듯 인간 존재로서의 한계 때문에 그 분의 사랑을 다 헤아릴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우리지만, 일생 중에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부딪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일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분이 계신 그 곳,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끌어갔던 순간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다. 위대한 창조주시며 구원자이신 그 분께서 ‘의지’를 가지시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때의 감동은 그 분의 사랑 앞에 무릎 꿇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 순간은 분명 과거의 사건이지만 이후로 신앙의 여정 가운데 곤고하거나 지칠 때마다 들여다보는 일기장 속의 추억처럼,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호흡이 된다. 당시에는 뿌연 거울처럼 희미했던 그 구원 사건의 의미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해석되어지고 그 깨달음이 입술로 고백되어지는 순간마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 말이다. 이처럼 거듭남의 체험은 일회적이지만 날마다 삶 속에서 경험되어지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내가 이전에는 잃어버린 자였으나 당신이 마침내 나를 찾아내셨군요. 내가 무지와 이기심으로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허비하며 그것들이 마침내 바닥날 때까지 질주하는 모습을 보시며 참 많이도 안타까워하셨을 테지요.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게 시선을 향한 채 나의 등이 아닌 얼굴을 마주 볼 날을 고대 하셨을 테지요. 눈앞의 안개가 걷히고 당신을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당신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껏 잃어버린 존재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지요.”

저자는 책 서두에 둘째 아들의 범주를 ‘기독교를 잘 모르거나 혹은 한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던 사람들’ 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첫째 아들의 범주를 ‘종교 생활은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신자들’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이제껏 이 성경 본문을 접할 때마다 깊이 있게 고민하거나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첫째 아들과 둘째아들의 구분이 단편적으로 오히려 쉽게 다가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 가지 범주의구분이 애매모호하고 헛갈리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답답한 마음으로 수년 전에 기록해 두었던 설교 노트를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내신앙의 여정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를 따라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한 교회에 다니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20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시기 동안 나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 공동체에 속했던‘첫째 아들’이었다. 적어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붕괴가 일어나기시작하면서 나의 죄인 됨을 한 순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구하게 되었던 그 순간 나의 정체성은 ‘둘째 아들’이었다. 

성경 본문 속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공통점은 둘 다 ‘잃어버린 자’ 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양쪽 모두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이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해서도 모르는 존재이다. 한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린 자임을 알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집 나간 아들은 심한 방황 끝에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고, 집에 있는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하나님 편에서는 내가 ‘잃어버린 자’이지만 인간 편에서 보면 내가 ‘가장 중요한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 된다. 내가 ‘잃어버린 그 하나’는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그 분의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탕부 하나님께서는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분의 생명, 모든 만물을 대하는 그분의 성품, 그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능력을 내안에 채우기를 원하신다. 신분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신다. 그렇게 그분은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구원의 여정으로 이끄신다. ‘죄와 구원’, ‘죽음과 부활’, ‘십자가의 도’ 라는 추상 명사가 ‘나의 감정과 생각을 허무시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새롭게 세우신다.’ 는 구체적 동사로 바뀌기까지 그분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말씀과 환경과 사람을 통해서..

나는 한 번도 하나님을 먼저 찾은 적이 없다. 그 분이 먼저 나를 찾아오셨다. 2008년, 유난히도 힘겨웠던 내 인생최대의 위기의 순간들을 이토록 덤덤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성취와 행위에서 찾으려고 했던 20여 년간의 무수한 시도들이 처참히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으며, 내 잣대로 주변 사람들을 저울질 하며 때로는 시기와 질투로, 때로는 무시와 경멸로 내 마음과 입술을 더럽히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빠져 삶을 냉소적으로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영과 영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혹자는 이것을 거울 효과라고 한다. 나에게는 그들이 영적인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과부와 고아들이다. 우월감과 비교 의식, 적대심은 우리 영혼을 망가뜨린다. 자신이 행한 선행이 칭찬이나 실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혼란과 분노는 불만족과 불행의 삶의 연속으로 이끈다. 도덕적 행위 가운데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그 결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인간적인 편에서 희생을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나의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황을 예측하고 감내하는 것까지 말할 수 있겠다. ‘본대로 경험대로 행동한다.’는 당연한 원리.. 그래서 하나님의 희생을 경험한 만큼 이 땅의 수많은 동생들에게 희생할 수 있다. 그것이 희생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들과의 영적인 연결 고리를 통해 한 성령 안에서 얻게 되는 은혜는 덤으로 주어진다. 주는 자가 복 되도다. 이쯤 되면 내가 준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그들이 준 것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저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충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할 때, 그분의 사랑에만 집중한 나머지 죄의 심각성을 놓치기 쉽다. 때문에 ‘마냥 방종한 삶에 빠진’ 둘째 아들과 ‘자신의 열심과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첫째 아들의 삶을 살아간다. 두 가지 시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지에 붙어 있지 않고 스스로 열매 맺으려는’ 인간의 어리석고 오만한 시도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종종 본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일과 그 일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보이지 않는 곳, 즉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연단하심을 통해 완성해 가신다. 

때때로 신앙의 여정 가운데 공허함과 메마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 분의 온유하지만 각성을 촉구하는 분명한음성이 울려 퍼진다. ‘너의 믿음을 시험해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흔 아홉을 가지고도, 정작 가장 중요한 그 하나, ‘진리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황폐한지를 알고 있기에, 그럴 때마다 ‘주님, 어디 계시죠.’ 나직이 그분을 부르며 그분의 충만한 사랑이 내 온 몸과 마음에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잠히 기다린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깨달아지며 비교 의식이 사라진다. '불편한 편의점2' 라는 책에서 ‘비교는 암, 걱정은 독’ 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데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한 성도들의 삶이 그보다 나음은 당연하다. 

초고를 쓰고 꽤 오랜 시간 미뤄두었던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원고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괴로워하는 작가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경험한 것 같다. 이 쫓기듯 조마조마한 마음이 순간순간 삶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바쁜 일상 가운데 ‘내년으로 미룰까?’하는 나태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처음 도전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글 그대로 제출해도 괜찮다.’고 용기를 주시는 것 같아 겨우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이 '탕부 하나님' 이라는 책을 만나 또 다른 무수한 생각과 경험들이 생겨났다. 그냥 두었으면 머릿속에 맴돌다 흩날리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던 소중한 깨달음의 조각구름 들을 글에 담는 과정 중에 하나 둘씩 정리되어가는 즐거움을 선물해주신 저자 팀 켈러 목사님과 미주 복음 방송,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 측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04.2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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