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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기자의 바이블 에세이 - 교만의 옷을 벗고

사람은 누구나 얼마간 높아지고 싶은 마음과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과 자기가 제일이라는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러한 감정이 평범하고 소박하게 표현된다면 별로 크게 문제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교양이 있고, 그런 감정이나 욕망을 자기 성장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본능적인 욕망에 자신이 지배당하거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사로잡혀 이른바 ‘교만’이라는 자리에 군림하여 앉게 되면 문제가 된다. 구조적 권력형의 교만과 심리적으로 남을 멸시하는 정신적 교만, 그리고 종교적 위선의 교만은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신을 결정적인 오만심의 노예로 만들고 만다. 

수리아의 대장군 나아만이 이러한 교만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센병 환자였다. 당시 세계 최강국의 군대 장관이라는 찬란한 유니폼 뒤에 숨겨진 그의 몸뚱이는 천형의 악질적인 병에 의해서 하루하루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화려한 대장군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교만으로 치장된 자신의 권위에 우쭐거리고 다녔으나, 밤에 집에 들어와 유니폼을 벗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에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이 그를 괴롭혔다. 수많은 낮과 밤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기로 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센병의 치유를 요청했다.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하인을 시켜 요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명령했다. 나아만은 몹시도 불쾌했다.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자신에게 문안하고 자신의 상처를 만져주며 간절히 기도라도 할 줄로 알았는데 이 무슨 푸대접이라는 말인가? 자기의 나라에 있는 다메섹 강과 바르셀 강은 요단강보다 얼마나 더 깊고 물이 깨끗하고 맑은 물이 흐르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위의 간청과 자기 한센병의 심각성 때문에 할 수 없이 요단강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교만’이라는 자리에 군림하여 앉게 되면 문제가 된다. 구조적 권력형의 교만과 심리적으로 남을 멸시하는 정신적 교만, 그리고 종교적 위선의 교만은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신을 결정적인 오만심의 노예로 만들고 만다.”

 

요단강은 “내려가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강으로, 팔레스타인 북쪽에 있는 갈릴리 바다에서 남쪽에 있는 사해에 이르기까지 약 96km 정도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있다. 물이 별로 깊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강이라기보다는 시내라 함이 좋을 것 같은 별로 볼일 없는 강이다. 나아만은 요단강 강가에 섰다. 나아만은 먼저 타고 온 말 위에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 대장군의 제복을 벗어야 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위엄을 자랑하는 장검의 띠를 풀어내려 놓아야 했다. 빛나는 별이 붙어 있는 모자를 벗고, 위풍당당한 군화를 벗어야 했다.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웃옷을 벗고, 금줄로 수놓은 바지도 벗어야 했다. 그리고 속옷도 모두 벗어야 했다. 드디어 나타난 것은 한센병으로 하얗게 썩어 문드러지고 파리하게 벌벌 떨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대장군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의 병든 몸을 가진 한 인간이 요단강 강가에 떨고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실제 모습이다. 아무리 잘 났다고 큰소리치고 떠들어도, 권력을 휘두르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지배해도, 학력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군림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강가에서 자기의 옷이 벗겨지면 초라한 모습밖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게 된다. 요단강 강가에 옷이 벗겨져 세워진 나아만의 모습은 누구의 모습인가?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오늘 나는 심각한 한센병을 앓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각종 죄악의 더러운 한센병에 걸려 있다면 요단강 물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잠가 목욕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만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떨리는 발로 요단강 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몸을 물에 잠겼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전한 말씀대로 꾸준히 일곱 번이나 몸을 잠기며 씻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자신의 몸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진 것을 발견했다. 새롭게 변화된 자신을 보고 그는 감탄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09.2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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