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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 제 8회 독후감 공모전 당선작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신 일” 우수상 한익승(미국 뉴저지 파라무스 참빛교

미국으로 이민온지 벌써 23년이 되어간다. 1999년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때만 해도 나는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에 있을 땐 가끔씩 성당을 다니거나 아버지를 따라 절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에 도착해서 우리 가족이 교회에 나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우리는 어느 한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고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신앙에 대해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무뚝뚝하셨던 우리 아버지는 교회생활에 특히 열심을 내셨다. 식당봉사도 하시고 특송도 하시고 심지어 집에서 가정예배를 인도하시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 근처에 있던 기독교 서점에서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테이프를 자주 사오시곤 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출퇴근 운전시간에 전부 들으신 테이프들은 우리 형제들에게 들으라고 권해주셨다. 그때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설교가 바로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였다. 테이프 박스에 들어있던 녹취본을 얼마나 많이 들쳐봤던지 금새 너덜너덜해져버린 기억이 난다.

이어령 선생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이재철 목사님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주최한 양화진 목요강좌를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이어령 선생님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지만 “지성과 영성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두 분이 나눈 대화를 보면서 그 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매주 한 주제를 놓고 두 분이 깊은 대화를 나누셨다. 자타가 공인하는 두 기독 지성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였기에 수준 높은 인문학 세미나를 청강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대담을 통해서 인문학과 신앙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해줄수 있음을 깨달았다. 영상이 업로드되는 날을 매주 손꼽아 기다렸다가 저녁 늦게까지 형제들과 같이 영상을 봤던 그 시간들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이어령 선생님의 다른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서 그분의 가족사를 배우게 되었고 따님의 오랜 기도에 의해서 선생님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같은 해 출간되어 기독교 서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내가 읽은 이어령 선생님의 첫번째 책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어령 선생님을 마음 속으로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소년같은 특유의 천진난만함,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진지하고 예리한 눈빛, 그리고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지식들은 과연 현대 르네상스인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학업과 취업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몇 달 전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삶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올해 두란노 출판사에서 출간된 “먹다 듣다 걷다”를 읽기로 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 주제 콘퍼런스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한국 교회 대사회적 섬김에 대한 평가와 한국 교회 미래를 위한 통찰”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제목대로 크게 3 부분으로 나뉜다.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할 일을 “먹다”, “듣다”, “걷다”라는 세 단어로 정리했다. 1부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 제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구약의 이삭 줍기의 예를 들면서 “먹다”의 참된 의미를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낸다. 저자는 말한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먹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누어 주신 빵인 그분의 몸과 포도주인 그분의 피를 먹으면, 그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그 생명의 빵을 주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82-83쪽)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로 물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개인의 신앙은 점점 더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인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마땅히 발휘해야 할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억압받고 억눌린 자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바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섬기셨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본질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육적인 필요를 당장 채우는데 관심을 쏟는다. 심지어 전도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지와 관련된 사역을 기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들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사회복지 기관이 아니다. 본말이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육적인 빵보다 진정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영적인 빵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생명을 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먹고 죽을 육적인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인 빵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2부에서 “먹다”는 곧 “듣다”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양식을 한 번 먹었다면, 그리고 그 맛을 알았다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먹다”가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여 그분과 하나되는 순간을 상징한다면, “듣다”는 인격의 변화와 신앙의 무르익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에베소서 4장 13절)” 이르는 단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저자는 여러 명화를 보여주면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을 보면서 읽으니 더욱 생생하게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마르다의 성향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얼마나 자주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에 찔림을 느꼈다. 

나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믿음을 혼동할 때가 많은 것 같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을 하나님 존재 자체를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에 얼마나 자주 빠지는지 모른다. 그것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기를 바란다. 성공적인 사역과 열매를 바라는 나머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경청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지금 당장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 그분인지 아님 나의 헛된 영광인지 말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지금 내가 커리어적으로 원하는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쓰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여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것 또한 내려놓기로 하였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항상 점검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예수님을 눈으로만 볼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귀로 들어야 진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분의 말씀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123쪽) 저자의 말대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대화는 신앙 성장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3부에서 저자는 걷는 것의 의미를 다시 숙고한다. 예수님의 “이타적인 걸음”은 곧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섬김의 행위였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걸으신 순례의 길이었다. 예수님이 걸으신 거리를 보니 깜짝 놀랐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계시는 동안 지구 한 바퀴 정도의 거리를 걸어 다니셨다고 한다. 그것은 십자가와 함께 곧 그 분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정말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웃들의 필요에 성실히 응답하시기 위해 그 먼 길을 홀로 묵묵히 걸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걷고 있을까. 흔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에 만보 이상 걷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건강의 유익과 같은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주로 걷는다. 하지만 걸음은 연결, 곧 만남을 전제로 했을 때 비로서 그 의미가 완성되는것 같다. 관심과 사랑을 품고 예수님이 나아가셨던 것처럼 걸음은 결국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한 수단이 되기 떄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 그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괜찮을거라고 자만했었는데 아내가 일터에서 감염자와 접촉하는 바람에 결국 온 가족이 앓게 되었다. 고열과 근육통 때문에 열흘이 넘게 집에서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다. 증상이 미미했던 초기에는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일도 하고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거의 2주동안 그렇게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입맛이 없어서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몸살이 심해서 밤마다 잠을 설쳤다. 책을 읽기는커녕 하루 종일 잡다한 영상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유롭게 밖에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격리 기간이 길어지자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도 아팠기 때문에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 집에 도와주러 올 수 없었다. 아픈 자들이 서로를 챙기는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우리 가족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가끔씩 문 앞까지 음식을 가져다 주신 어머님의 배려가 있었기에 그나마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팬데믹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우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었다. 질병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함께 먹고 듣고 걷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누군가가 함께 음식을 먹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줘서 신앙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 함께 먹고 듣고 걷는 행위는 어쩌면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섬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오랜만에 읽으니 다시 그분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듯해서 좋았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02.0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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