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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본문: 시편 1:1-6

ë³µ 있는 삶ì´ëž€ 무엇입니까? 우리는 ë³µ 있는 ì‚¶ì„ ì—¬ëŸ¬ 가지로 ì •ì˜í•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시편 1:3ì€ ë³µëœ ì‚¶ì„ ì´ë ‡ê²Œ ì •ì˜í•©ë‹ˆë‹¤: “그는 ì‹œëƒ‡ê°€ì— ì‹¬ì€ ë‚˜ë¬´ê°€ ì² ì„ ë”°ë¼ ì—´ë§¤ë¥¼ 맺으며 ê·¸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ì¼ì´ 다 형통하리로다.” ì´ ë§ì”€ì— 따르면 ë³µëœ ì‚¶ì€ ì‹œëƒ‡ê°€ì— ì‹¬ì–´ì§„ 나무와 같습니다. 여기서 시내란 사막과 ê°™ì€ ì²™ë°•í•œ ë•…ì— ìžˆëŠ” 수로를 뜻합니다. 사막과 ê°™ì€ ì²™ë°•í•œ ë•…ì—ì„œ ì‚¬ëžŒë“¤ì´ ë†ì‚¬ë¥¼ 짓고 ì‹¶ì„ ë•Œ, ê·¸ë“¤ì€ ê·¸ 땅으로 수로를 만들고 ê·¸ 수로를 통해 ê³„ì† ë¬¼ì„ ê°€ì ¸ì™€ì•¼ 합니다. 그러므로 “ì‹œëƒ‡ê°€ì— ì‹¬ì€ ë‚˜ë¬´”란 주변 ì¡°ê±´ì´ë‚˜ í˜•íŽ¸ì´ ì²™ë°•í•˜ê³  어렵지만, 수로를 통해 ê³„ì† ê³µê¸‰ë°›ëŠ” 물 ë•Œë¬¸ì— ìžë¼ê³  열매를 ë§ºì„ ìˆ˜ê°€ 있는 나무입니다. 복있는 ì‚¶ì€ ì–´ë ¤ì›€ì´ë‚˜ ê³ ë‚œì´ ì—†ëŠ” ì‚¶ì„ ì˜ë¯¸í•˜ì§€ 않습니다. ì‚¬ë§‰ê°™ì´ ì–´ë ¤ìš´ 형편 ì†ì—ì„œë„ ì£¼ë‹˜ê»˜ì„œ 주시는 용기와 힘과 지혜와 필요한 ìžì›ë“¤ì„ 공급받아 승리하는 ì‚¶ì„ ì˜ë¯¸í•©ë‹ˆë‹¤. “너í¬ê°€ 세ìƒì—ì„œ í™˜ë‚œì„ ë§Œë‚˜ë‚˜ ë‹´ëŒ€í•˜ë¼ ë‚´ê°€ 세ìƒì„ ì´ê¸°ì—ˆë…¸ë¼”(ìš” 16:33) 하시는 ì˜ˆìˆ˜ë‹˜ì˜ ì•½ì†ì´ 삶 ì†ì— ì´ë£¨ì–´ì§€ëŠ” ê²ƒì´ ë³µìžˆëŠ” 삶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ì´ëŸ¬í•œ ë³µì„ ë°›ê³  ì‚´ 수 있습니까? 

우리가 피해야 í•  ê²ƒë“¤ì´ ìžˆìŠµë‹ˆë‹¤.

 

1. ì•…ì¸ë“¤ì˜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여기서 “악츔ì´ë¼ëŠ” 용어는 단순히 ì•…í•œ ì¼ì„ 행하는 ìžë¥¼ ì˜ë¯¸í•˜ëŠ” ê²ƒì´ ì•„ë‹ˆë¼ “경건하지 ì•Šì€ ìž”ë¥¼ ì˜ë¯¸í•©ë‹ˆë‹¤. í•˜ë‚˜ë‹˜ì„ ì˜ì§€í•˜ì§€ ì•Šê³  ì¸ê°„ì˜ íž˜ê³¼ ì§€í˜œì— ì˜ì¡´í•˜ì—¬ 사는 ì‚¬ëžŒë“¤ì„ “악츔ì´ë¼ê³  하는 것입니다. “ê¾€”는 ê·¸ë“¤ì˜ ì‚¶ì˜ ë°©ì‹ì´ë‚˜ ì¡°ì–¸ì„ ì˜ë¯¸í•©ë‹ˆë‹¤. í•˜ë‚˜ë‹˜ì„ ì˜ì§€í•˜ëŠ” ë²•ì„ ëª¨ë¥´ëŠ” ì‚¬ëžŒë“¤ì˜ ì‚¶ì˜ ë°©ì‹ì´ë‚˜ ì¡°ì–¸ì„ ë”°ë¥´ëŠ” ê²ƒì„ í”¼í•˜ë¼ëŠ” 것입니다. 믿지 않는 ìžë“¤ì˜ ì‚¶ì˜ ë°©ì‹ê³¼ ì¡°ì–¸ë„ í•„ìš”í•œ ê²½ìš°ë“¤ì´ ë¬¼ë¡  있습니다. 그러나 심ê°í•œ 질병, 결혼 ìƒí™œì˜ 위기, ì •ì‹ ì , ì˜ì  방황, 죽ìŒì˜ 문제 ê°™ì€ ìš°ë¦¬ ì‚¶ì˜ ë¿Œë¦¬ë¥¼ 송ë‘리째 í”들 수 있는 í™˜ë‚œì´ ë‹¥ì³¤ì„ ë•Œ 믿지 않는 ì‚¬ëžŒë“¤ì˜ ì¡°ì–¸ì—는 힘과 ì§€í˜œì˜ í•œê³„ê°€ 있습니다. ê·¸ë“¤ì˜ ì‚¶ì˜ ë°©ì‹ê³¼ ì¡°ì–¸ì„ ë”°ë¥´ë©´ 우리는 ë¬¼ì´ ê³µê¸‰ë˜ì§€ 않는 ì‚¬ë§‰ì— ì„œ 있는 ë‚˜ë¬´ê°™ì´ ë˜ëŠ” 것입니다. 

 

2. 죄ì¸ë“¤ì˜ ê¸¸ì— ì„œì§€ 아니하며

 

여기서 "죄ì¸"ì´ë¼ëŠ” 단어는 ì‚´ì¸ìž, ë„ë‘‘, 사기꾼 ë“±ì˜ ë²”ì£„ìžë¥¼ ì˜ë¯¸í•˜ì§€ 않습니다. ì´ ë‹¨ì–´ëŠ” 하나님께서 ê·¸ì˜ ì‚¶ì— ì£¼ì‹  목ì ì„ 놓친 ì‚¬ëžŒì„ ì˜ë¯¸í•©ë‹ˆë‹¤. 하나님께서 모든 ì‚¬ëžŒì˜ ì‚¶ì„ ìœ„í•´ 주신 목ì ì€ ì‚¶ì„ í†µí•´ ê·¸ë¶„ì„ ì˜í™”롭게 하는 것입니다. ì‚¬ëžŒì´ í•˜ë‚˜ë‹˜ê»˜ ì˜ê´‘ì„ ëŒë¦¬ì§€ ì•Šê³  산다면, ê·¸ ì‚¬ëžŒì´ ë¬´ì—‡ì„ í•˜ê³  성취하든 ê·¸ì˜ ì‚¶ì€ ê·¼ë³¸ 목ì ì„ 빗나가고 í—›ë˜ì´ ëë‚  것입니다. ë°”ìš¸ì´ ë¡œë§ˆì„œ 1:21-23ì—ì„œ 그런 ì‚¬ëžŒì˜ ì‚¶ì— ëŒ€í•´ ì´ë ‡ê²Œ ì¦ê±°í•©ë‹ˆë‹¤: “í•˜ë‚˜ë‹˜ì„ ì•Œë˜ í•˜ë‚˜ë‹˜ì„ ì˜í™”ë¡­ê²Œë„ ì•„ë‹ˆí•˜ë©° ê°ì‚¬í•˜ì§€ë„ 아니하고 오히려 ê·¸ ìƒê°ì´ í—ˆë§í•˜ì—¬ì§€ë©° 미련한 마ìŒì´ ì–´ë‘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어리ì„게 ë˜ì–´ ì©ì–´ì§€ì§€ 아니하는 í•˜ë‚˜ë‹˜ì˜ ì˜ê´‘ì„ ì©ì–´ì§ˆ 사람과 새와 ì§ìŠ¹ê³¼ 기어 다니는 ë™ë¬¼ ëª¨ì–‘ì˜ ìš°ìƒìœ¼ë¡œ 바꾸었ëŠë‹ˆë¼.” ë§Žì€ ì‚¬ëžŒë“¤ì´ ìžê¸° ì†Œê²¬ì— ë”°ë¼ ì¢‹ì€ ëª©ì ì„ ê°–ê³  ì‚´ê³  있습니다. 그러나 ê·¸ë“¤ì˜ ëª©ì ì´ 무엇ì´ë“  í•˜ë‚˜ë‹˜ì„ ì˜í™”롭게 하지 않는 것ì´ë¼ë©´, ê·¸ë“¤ì€ ê²°êµ­ 다른 ê²ƒì„ ì˜í™”롭게 하게 ë©ë‹ˆë‹¤. ê·¸ 결과는 무엇입니까? ê·¸ë“¤ì˜ ì‚¶ì€ ê²°êµ­ 부ë„ë•ê³¼ 부패로 ëë‚  것입니다(롬 1:24-32). 그러므로 ì‚¶ì˜ ëª©ì ì´ í•˜ë‚˜ë‹˜ì˜ ì˜ê´‘ì„ êµ¬í•˜ëŠ” ê²ƒì— ìžˆì§€ 않는 ì‚¬ëžŒë“¤ì˜ ì‚¶ì˜ ë°©ì‹ì€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오만한 ìžë“¤ì˜ ìžë¦¬ì—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오만한 ìžë“¤”ì´ëž€ 공개ì ìœ¼ë¡œ í•˜ë‚˜ë‹˜ì˜ ì¡´ìž¬ë¥¼ 부ì¸í•˜ê³  하나님 ë§ì”€ì˜ 절대ì ì¸ 진리를 부ì¸í•˜ëŠ” ì‚¬ëžŒë“¤ì„ ëœ»í•©ë‹ˆë‹¤. 그리고 ê·¸ë“¤ì€ í•˜ë‚˜ë‹˜ì˜ ì¡´ìž¬ë¥¼ 믿고 하나님 ë§ì”€ì˜ ì§„ë¦¬ì— ë”°ë¼ ì‚¬ëŠ” ì‚¬ëžŒë“¤ì„ ì¡°ë¡±í•˜ëŠ” ìžë“¤ì„ 뜻합니다. 그들 중ì—는 ì´ ì„¸ìƒì˜ ê°€ì¹˜ì— ë”°ë¼ ë¶€ìž, 권력ìž, 성공한 ì‚¬ëžŒì´ ìžˆì„ ìˆ˜ 있습니다. 그런 ì‚¶ì„ í†µí•´ 마치 í•˜ë‚˜ë‹˜ì´ ì—†ë‹¤ëŠ” ê²ƒì„ ì¦ëª…하고 í•˜ë‚˜ë‹˜ì´ ìžˆë‹¤ê³  í•˜ì—¬ë„ í•˜ë‚˜ë‹˜ë³´ë‹¤ë„ ìžê¸°ë“¤ì´ ë” ìœ„ëŒ€í•œ 것처럼 행세합니다. 우리는 그런 ì‚¬ëžŒë“¤ì˜ íž˜ê³¼ ì„±ê³µì— ì˜í–¥ì„ ë°›ì„ ìˆ˜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ê·¸ë“¤ì˜ ì‚¶ì´ ìœ¡ì‹ ê³¼ ì´ ì„¸ìƒì—ì„œ 얻고 ì´ë£° 수 있는 ê²ƒë§Œì„ ìœ„í•´ 사는 ì‚¶ì˜ ë°©ì‹ì„ 피해야 합니다. ì¸ìƒì€ ì˜ì ì¸ 존재입니다. ê·¸ë“¤ì€ ì˜ì´ 죽어있는 존재들입니다. ì´ ì„¸ìƒì—ì„œ 아무리 ë§Žì€ ê²ƒì„ ì„±ì·¨í•˜ê³  누리고 산다고 할지ë¼ë„ ê·¸ë“¤ì˜ ì˜í˜¼ì€ 곤고하고 심령ì—는 í‰ì•ˆì´ 없는 것입니다. ë˜í•œ ìžì‹ ì˜ 힘과 ìžì›, 노력, 지혜로 í•´ê²°í•  수 없는 í™˜ë‚œì„ ë‹¹í–ˆì„ ë•Œ ê·¸ë“¤ì˜ ì‚¶ì€ í•˜ë£¨ì•„ì¹¨ì— ë¬´ë„ˆì§€ê²Œ ë©ë‹ˆë‹¤. 마치 ë°”ëžŒì— ë‚ ì•„ê°€ëŠ” 가벼운 겨처럼 ë˜ëŠ” 것입니다. 시편 39:6ì€ ê·¸ëŸ¬í•œ 사람들ì—게 ì´ë ‡ê²Œ 경고합니다. “진실로 ê° ì‚¬ëžŒì€ ê·¸ë¦¼ìž ê°™ì´ ë‹¤ë‹ˆê³  í—›ëœ ì¼ë¡œ 소란하며 ìž¬ë¬¼ì„ ìŒ“ìœ¼ë‚˜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ì´ë‹¤.” ì–´ë–¤ ìƒí™© ì†ì—ì„œë„ ë³µëœ ì‚¶ì„ ì‚´ê¸° 위해서는 ì´ëŸ° ìžë“¤ì˜ ì‚¶ì˜ ê¸¸ì„ í”¼í•´ì•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í•  ê²ƒë“¤ì´ ìžˆìŠµë‹ˆë‹¤.

 

1. ì˜¤ì§ ì—¬í˜¸ì™€ì˜ ìœ¨ë²•ì„ ì¦ê±°ì›Œí•˜ì—¬

 

복있는 ì‚¶ì„ ì‚´ë ¤ë©´ í•˜ë‚˜ë‹˜ì˜ ë§ì”€ì„ ì¦ê±°ì›Œí•´ì•¼ 합니다. 어떻게 í•˜ë‚˜ë‹˜ì˜ ë§ì”€ì€ ì¦ê±°ì›Œ í•  수 있습니까? í•˜ë‚˜ë‹˜ì˜ ë§ì”€ì„ í•˜ëŠ˜ì— ê³„ì‹  우리 아버지께서 ë³´ë‚´ì‹  ì‚¬ëž‘ì˜ íŽ¸ì§€ë¡œ 여기면 ì¦ê±°ì›Œ í•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ë°›ì€ íŽ¸ì§€ë¥¼ ì½ëŠ” ê²ƒì„ ì‹«ì–´í•˜ëŠ” ì‚¬ëžŒì„ ë³¸ ì ì´ 있습니까? 그런 편지ë¼ë©´ 누구나 기ì¨ìœ¼ë¡œ í¥ë¶„ë˜ì–´ ì½ì„ 것입니다. 시편 기ìžëŠ” í•˜ë‚˜ë‹˜ì˜ ë§ì”€ì„ í•˜ë‚˜ë‹˜ì˜ ì‚¬ëž‘ì´ ë‹´ê¸´ 것으로 대하는 기ì¨ì„ ì´ë ‡ê²Œ 고백합니다: “ì£¼ì˜ ë§ì”€ì˜ ë§›ì´ ë‚´ê²Œ ì–´ì°Œ 그리 단지요 ë‚´ ìž…ì— ê¿€ë³´ë‹¤ ë” ë‹¤ë‹ˆì´ë‹¤”(ì‹œ 119:103). 한때 ì Šì€ ì•„ê°€ì”¨ê°€ ì±… í•œ ê¶Œì„ ì§‘ì–´ 들고 ì½ê¸°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ê·¸ ì±…ì´ ë„ˆë¬´ 지루하고 어려워 조금 ì½ë‹¤ê°€ 치워 ë‘었습니다. ë‚˜ì¤‘ì— ê·¸ë…€ëŠ” í•œ 남ìžë¥¼ 만나 ë°ì´íŠ¸í•˜ê¸° 시작했고 그를 매우 사랑하게 ë˜ì—ˆìŠµë‹ˆë‹¤. ê·¸ëŸ°ë° ê·¸ 남ìžê°€ 그녀가 한때 ì½ë‹¤ê°€ 그만ë‘ê³  치워 ë‘” ê·¸ ì±…ì„ ì“´ 사람ì´ì—ˆìŠµë‹ˆë‹¤. ê·¸ ì—¬ìžëŠ” ê·¸ ì±…ì„ ë‹¤ì‹œ ì½ê¸° 시작하였으며 처ìŒë¶€í„° ë까지 다 ì½ì—ˆìŠµë‹ˆë‹¤. ì°¨ì´ì ì€ 무엇ì´ì—ˆìŠµë‹ˆê¹Œ? 그녀가 ì±…ì˜ ì €ìžë¥¼ 알고 ì‚¬ëž‘í–ˆì„ ë•Œ 그가 ì“´ ì±…ì„ ê¸°ì¨ìœ¼ë¡œ 다 ì½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ì„±ê²½ì´ ë‹¹ì‹ ì„ í–¥í•œ 하나님 ì‚¬ëž‘ì˜ íŽ¸ì§€ìž„ì„ ëŠ˜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ê·¸ë¶„ì´ ì“°ì‹  ì±…ì¸ ì„±ê²½ì„ ì–µì§€ë¡œ, ì˜ë¬´ê°ì´ ì•„ë‹ˆë¼ ê¸°ì¨ìœ¼ë¡œ 그리고 간절한 마ìŒìœ¼ë¡œ ì½ê³  묵ìƒí•˜ê³  따르게 ë  ê²ƒìž…ë‹ˆë‹¤. 요한 1ì„œ 5:3ì€ ì´ë ‡ê²Œ ë§í•©ë‹ˆë‹¤. “í•˜ë‚˜ë‹˜ì„ ì‚¬ëž‘í•˜ëŠ” ê²ƒì€ ì´ê²ƒì´ë‹ˆ 우리가 ê·¸ì˜ ê³„ëª…ë“¤ì„ ì§€í‚¤ëŠ” 것ì´ë¼ ê·¸ì˜ ê³„ëª…ë“¤ì€ ë¬´ê±°ìš´ ê²ƒì´ ì•„ë‹ˆë¡œë‹¤.” ë§ì”€ì„ 기ì¨ìœ¼ë¡œ ì½ê³  묵ìƒí•˜ê³  따르는 ê²ƒì„ í†µí•´ 주님께서는 ì‚¶ì— í•„ìš”í•œ 모든 지혜와 능력과 ìžì›ì„ 늘 í’성하게 부어주십니다. ì´ëŸ¬í•œ ì‚¶ì´ ë³µëœ ê²ƒìž…ë‹ˆë‹¤. 

 

2. ì—¬í˜¸ì™€ì˜ ìœ¨ë²•ì„ ì£¼ì•¼ë¡œ 묵ìƒí•˜ëŠ” ë„다 

 

여기서 “묵샔ì´ë¼ëŠ” 단어는 ë¹„ìœ ì  ë‹¨ì–´ìž…ë‹ˆë‹¤. ê·¸ê²ƒì€ ì†Œê°€ 먹ì´ë¥¼ ë˜ìƒˆê¹€ì§ˆí•˜ëŠ” ê²ƒì„ ë¬˜ì‚¬í•©ë‹ˆë‹¤. 소는 ìŒì‹ì„ ë¨¹ì„ ë•Œ í•œ 번 씹는 것으로 ë내지 않습니다. 소는 í’€ì´ ì•„ì¹¨ ì´ìŠ¬ë¡œ ì‹ ì„ í•  ë•Œ 씹어 먹습니다. ê·¸ 후 í•œë‚®ì— ë”워지면 나무 그늘 ì•„ëž˜ì— ëˆ„ì›Œ 첫 번째 씹어 넘긴 ìŒì‹ë¬¼ì„ 입으로 꺼내 와서 다시 씹어 넘ê¹ë‹ˆë‹¤. ì´ì²˜ëŸ¼ ë§ì”€ì„ 묵ìƒí•œë‹¤ëŠ” ê²ƒì€ ë§ì”€ì´ 완전히 ìš°ë¦¬ì˜ ì‹¬ë ¹ì— ë‹¿ì„ ë•Œê¹Œì§€ 묵ìƒì„ 반복ì ìœ¼ë¡œ 계ì†í•œë‹¤ëŠ” 것입니다. ë§¤ì¼ í•˜ë‚˜ë‹˜ì˜ ë§ì”€ì„ ì½ê³  묵ìƒí•  ì‹œê°„ì„ ë§ˆë ¨í•˜ì‹­ì‹œì˜¤. 너무 바빠서 ë§ì”€ì„ ì½ì„ 수 없는 ë‚ ì´ ìžˆë‹¤ë©´ ë‹¤ìŒ ë‚  다시 ì‹œë„하십시오. ë§ì”€ì„ 묵ìƒí•˜ëŠ” ê°€ìš´ë° ê·¸ ë§ì”€ì„ ë‹¹ì‹ ì˜ ì‹¤ì œ ì‚¶ì˜ ìƒí™©ì— 지ì†ì ìœ¼ë¡œ 연결하십시오. ë‹¹ì‹ ì˜ ìƒê°, ê²°ì •, í–‰ë™ì—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ì¸ë„하시고 권면하시는지 구체ì ìœ¼ë¡œ 연결하십시오. 

그리고 ë” ë‚˜ì•„ê°€ 다른 ì‚¬ëžŒë“¤ì˜ ì‚¶ê³¼ ì´ ì„¸ìƒì—ì„œ ì¼ì–´ë‚˜ëŠ” 모든 ì¼ë“¤ê³¼ ì‚¬ê±´ë“¤ì— ëŒ€í•´ì„œë„ ë§ì”€ì„ 통해 ë°”ë¼ë³´ê³  ì´í•´í•˜ê³  대처하십시오. ë˜í•œ 다른 ì‹ ìžë“¤ê³¼ ë§ì”€ 묵ìƒì„ 나누십시오. 다른 ì‹ ìžë“¤ê³¼ 묵ìƒí•œ ë§ì”€ì„ 나누면 ë§ì”€ì´ ë” í’성하게 ì€í˜œê°€ ë©ë‹ˆë‹¤. ìŒì‹ì„ í˜¼ìž ë¨¹ì„ ë•Œë³´ë‹¤ 다른 사람들과 함께 ë¨¹ì„ ë•Œ ë” í’성하고 맛있게 먹게 ë˜ëŠ” 것과 ê°™ì€ ì´ì¹˜ìž…니다. 그리고 혹 혼ìžì„œ 묵ìƒí•˜ë©´ì„œ ë§ì”€ì„ 주관ì ìœ¼ë¡œ 잘못 í•´ì„하고 ì´í•´í•œ ê²ƒë“¤ì„ ë°œê²¬í•˜ê³  ë°”ë¡œìž¡ì„ ìˆ˜ê°€ 있게 ë˜ëŠ”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ë§ì”€ì„ 예수님과 연결하십시오. ì‹ ‧구약 성경 66ê¶Œì˜ ëª¨ë“  ë§ì”€ì˜ í•µì‹¬ì€ ì˜ˆìˆ˜ 그리스ë„ì´ì‹­ë‹ˆë‹¤(ìš” 5:39). ì˜ˆìˆ˜ë‹˜ì€ í•˜ë‚˜ë‹˜ì˜ ë§ì”€ì´ ìœ¡ì‹ ì´ ë˜ì–´ì˜¤ì…”ì„œ 모든 ë§ì”€ì„ ì´ë¡ ìœ¼ë¡œì„œë§Œ ì•„ë‹ˆë¼ ì‹¤ì œ 삶으로 나타내시고 완성하셨습니다(ìš” 1:1-18). ë˜í•œ ì˜ˆìˆ˜ë‹˜ì€ ì¶©ë§Œí•œ ì€í˜œì™€ 진리로 우리가 ë§ì”€ëŒ€ë¡œ ì‚´ê³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ì˜ê´‘ ëŒë¦¬ëŠ” ì‚¶ì„ ì‚´ë„ë¡ í•´ì£¼ì‹­ë‹ˆë‹¤(ìš” 15:1-14). 그러므로 ì–´ë–¤ ë§ì”€ì„ 묵ìƒí•˜ë“ ì§€ ê·¸ ë§ì”€ì„ 예수님과 ì˜ˆìˆ˜ë‹˜ì˜ ë³µìŒì— ì—°ê²°í•´ì„œ 묵ìƒí•˜ê³ , ê²°ë¡ ì„ ë‚´ë¦¬ê³ , 마ìŒì— 새기고 따르십시오. ì´ë ‡ê²Œ ë§ì”€ì„ 묵ìƒí•˜ë©´ì„œ ì‚´ë©´ 삶ì—ì„œ 환난과 ì ˆë§ì ì¸ ìƒí™©ì´ 닥친다고 할지ë¼ë„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ë„를 통해 주시는 모든 축복, 마ìŒì˜ í‰ì•ˆ, 기ì¨, 용기, 소ë§, 지혜, ì¸ë‚´ ë“±ì„ ë‹¹ì‹ ì˜ ì‚¶ì— ë„˜ì¹˜ê²Œ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ë¬¼ì§ˆì˜ ê³µê¸‰, ì¸ê°„ê´€ê³„ì˜ íšŒë³µê³¼ 기ì¨ë„ 주실 것입니다. ì´ëŸ¬í•œ ì‚¶ì„ ì‚´ë•Œ “복있는 사람”ì´ ë˜ëŠ” 것입니다. 

esfcross@yahoo.com

 

12.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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