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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기자의 바이블에세이

방황하는 지성인

니고데모라고 이름하는 지성인이 밤늦은 시각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는 지금 나의 심금을 울린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계율과 규칙으로 율법주의자요, 모든 사람 앞에서 절대로 경건해야 하는 바리새인이요, 사회적으로 명예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만 하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요, 그리고 최고의 지성인답게 살아야 하는 권태로움의 굴레에 얽매여 있는 사람, 너무나도 많은 재산 때문에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한 가련한 인간이 탈출구를 찾지 못해서 고뇌하고 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 사람을 우리는 만난다. 이 사람은 참으로 정신적 공허함과 허탈감 가운데서 너무나 긴 시간을 방황했다. 이 사람은 영적 기갈을 느끼면서도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종교적인 경건과 엄격한 계율이, 사회적인 명예나 권세가 그리고 엄청난 재산과 심오한 지식이 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고 도리어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고뇌를 주었나 보다. 

니고데모는 오랜 방황과 갈등 가운데서 고민하다가 마침내 나사렛 예수님을 찾았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오기까지는 거듭되는 망설임과 주저 끝에 내린 대단한 결단이었다. 자신의 그 알량한 위신과 체면이 지금까지 그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심했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절박감이 그를 이 길로 내몬 것이다. 그는 밤중 시간을 택했다. 다른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체면치레의 누추한 겉옷을 벗어버리지 못한 니고데모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나를 발견한다. 체면과 위신이라는 낡은 옷이 얼마나 나를 감싸고,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나는 선한 삶의 내용과 그 열매의 유익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낡은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내가 정말 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수님께 나온 니고데모의 질문과 대답은 그에게 방황의 끝을 선고하는 순간이 되었다. 니고데모에게는 긍정과 의문이 있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긍정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3-4)

 

오늘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니고데모가 가지고 있는 ‘긍정’과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통치에 대해서 우리는 신앙적으로 날마다 긍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실제로 어긋난 삶의 모습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나는 왜 그렇게 말해야 했는가?’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해야 했는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정말 거듭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는가?’

나는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없는 사람.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력이 없는 사람. 자신에 대해서 울분과 분노를 못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의미한 인간이다. 이런 사람은 빈껍데기이고  쭉정이다. 이런 사람은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나온 사람에게 들려진 말로는 너무나도 엉뚱한 대답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정답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제의 해결이 곧 세상 나라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는 것을 나는 여기서 깨닫는다.

예수님은 인간 문제 해결의 방법을 이용하여 연역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귀납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셨다. 그렇다. 여럿으로서 산적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마스터 키로써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시하셨다. 그 간단한 열쇠는 십자가의 보혈이다. 그리고 물로 표현되는 성령이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나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참된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바른 자아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사람의 본뜻을 배울 수 있다. 이제 나는 방황을 그만 멈추고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여 거듭난 사람의 삶을 살도록 하자.

 

09.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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