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 된지 한 달이 지났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은 신선한 설렘과 기대감을 가져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을 때면 새로운 결심이나 계획을 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볼 때 아쉬웠던 부분들, 좀 더 잘하고 싶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계획을 하는 것이다. 새해 결심은 성경통독, 매일의 QT 등 신앙적인 영역부터 운동, 다이어트 등 건강을 위한 부분까지 무엇인가 삶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다양한 목록을 포함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삼일은 아니더라도 새해의 결심을 일년 동안 꾸준히 잘 실천해서 연말이 되었을 때 뿌듯한 자기 평가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굳게 결심했던 계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봄 학기 첫 수업시간에 각자 소개를 하는데 한 학생이 본인은 올해 성경을 세 번 통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쁜 일상에서 일년에 일독을 목표로 해도 시간내기가 도전이 되는데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성경을 세 번 통독하기로 결심하다니 선생 된 나보다 훨씬 나은 학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경통독 3회가 부담이 되거나 자랑이 되지 않고 잘 해내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새해 결심을 따로 안하고 있다. 12월 31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일기를 쓰며 결심이라기보다는 새해를 향한 소망을 적는 것이 전부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 같은 책이나 삶의 비전을 강조하는 분들의 말을 생각하면 새해를 맞는 나의 태도는 미래를 향한 계획이나 목표, 비전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한 새해의 결심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우리 교회의 예배 시작 때 드리는 찬양의 가사처럼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가 매일의 삶의 목표요, 내 인생의 목표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씀도 가까이 하게 되고 짧게라도 틈을 내어 동네 뒷산을 걷게 된다.
우리 집 문 앞에 화분 몇 개가 있다. 대다수는 옛 제자가 다른 주로 이사가면서 나에게 주고 간 것이다. 그 중에 고무나무를 비롯해서 제법 키가 큰 화초가 몇 개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최근에 보니 키 큰 화초들이 하나같이 햇볕이 드는 쪽을 향하여 기울고 있었다. 화초가 놓인 곳이 지붕에 가려서 간접적으로 볕이 드니까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으려고 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자라는 것이다. 해바라기를 하는 화초들을 보며 새해를 맞는 나의 결심이 있다면 “주 바라기”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매순간 주님을 바라기,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마음 중심을 변함없는 주님의 말씀에 두고 주님만 바라기를 소망한다.
문 앞에 있는 화초들과 달리 집 뒤 뜰에 있는 화초들은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자라고 있다. 굳이 햇볕을 향해 몸을 굽히지 않아도 따뜻한 햇빛이 골고루 닿기 때문이다. 문 앞에 있는 화초처럼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받기 위해 햇빛을 향해 몸을 뻗어야 하는 환경에 처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을 바랄 수밖에 없다. 온 몸을 기울여 햇빛을 사모하듯 더 간절하게 주님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를 더 깊은 영적인 자리로 인도한다. 새해를 맞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애쓰다 포기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에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을 향해 손을 뻗는 우리의 간절함이 아닐까?
“하나님,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오늘도 주님 앞에 무릎 끓고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새로움에는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따라온다. 그러나 올 한해도 앞서 가시고 뒤에서 두르시는 은혜로 우리를 지켜주실 하나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주님만 바라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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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2022